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세 여류시인의 시와 아카시아

김창집 2015. 5. 13. 09:51

 

 

5월 중순,

아카시아 향기가 흐른다.

 

길을 걷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기를 따라 가본다.

 

어릴 적

모래밭 위에 지은 학교 둘레에 심어놓은

커다란 아카시아나무에서 풍기던

그 향기 따라 동심에 젖는다.

 

그 그늘에서 같이 노래 부르던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 오월의 아카시아 - 정영자

 

아카시아 향이

몸을 흔든다.

5월이 속절없이 가고 있는데

이런 일

저런 일에

허망함이 쌓인다.

 

산다는 것

그리고

더불어 마주한다는 것

 

쉽지 않은 세상사에

한 매듭을 넘기며

자유를 산다.

 

바람이 불었다.

흩어지는 것이

어찌 아카시아 향 뿐이겠는가

 

믿음도 사랑도

무너진다는 이 세월,

영락없이 깨어지는 사람들의 약속,

 

사람아

5월이 가고 있는데

우리들의 약속된 시간 속에

꽃은 피지 않았던가

아낌없이 아카시아 향은

나그네의 피로를 쏘고 휘도는데,

 

강물처럼

구름처럼

옛날을 함께 사는 날이네

오늘은  

 

 

 

♧ 아카시아를 위한 노래 - 목필균

 

가자. 이젠 기다림도 소용없어

만개한 오월이 너를 끌고

더 길어질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걸

 

쪼로록 쌍으로 줄지어 펴진 잎새 사이

총총히 하얀 꽃 숭어리 흐드러져도

떠날 사람 다 떠난 텅 빈 시골길

네 향기 분분한들 누가 알까

 

가자. 눈먼 그리움도 소용없어

우거진 초록이 너를 안고

더 슬퍼질 추억 속으로 들어갈 걸

 

잉잉대는 꿀벌 날갯짓 바쁜 꽃잎 사이

까르르 웃어대는 하얀 향기 흐드러져도

잊을 건다 잊은 텅 빈 산길에

네 마음 젖었다고 누가 알까

 

 

 

♧ 아카시아 향기 바람에 날리고 - (宵火)고은영

 

물밀듯 가슴에 차오른 계절의 향연

그러므로 너는 열린 가슴

함박 웃는 미소 머금어 아름다운

오만하지 않은 겸손한 순결이다

 

네 몸에 두른 하이얀 면사포에

창백한 손길로 써 내려가는 편지마다

사랑은 향기로 머물다 가는 아픈 사연일까

오로지 꽃피워도 열매 없는 고독한 연가일까

 

때가 되면 일어서는 흐드러진 네 고백은

눈부신 얼굴에 감추인 향기로 피는

너의 이면에 가장 절실한

혹은 또 다른 지독한 슬픔일까

 

천지를 진동하는

내어 주고 너를 비우는 말 줄임표

그것은 언제나 생색 않는 소박한 사랑이다

표나지 않는 위대한 사랑이다

 

벌들이 침노해도

용서로 키우는 공존의 법칙이다

세상을 향한 고귀한 애틋함이다

푸른 창공에 흔들리는 순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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