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아카시아 향기가 흐른다.
길을 걷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기를 따라 가본다.
어릴 적
모래밭 위에 지은 학교 둘레에 심어놓은
커다란 아카시아나무에서 풍기던
그 향기 따라 동심에 젖는다.
그 그늘에서 같이 노래 부르던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 오월의 아카시아 - 정영자
아카시아 향이
몸을 흔든다.
5월이 속절없이 가고 있는데
이런 일
저런 일에
허망함이 쌓인다.
산다는 것
그리고
더불어 마주한다는 것
쉽지 않은 세상사에
한 매듭을 넘기며
자유를 산다.
바람이 불었다.
흩어지는 것이
어찌 아카시아 향 뿐이겠는가
믿음도 사랑도
무너진다는 이 세월,
영락없이 깨어지는 사람들의 약속,
사람아
5월이 가고 있는데
우리들의 약속된 시간 속에
꽃은 피지 않았던가
아낌없이 아카시아 향은
나그네의 피로를 쏘고 휘도는데,
강물처럼
구름처럼
옛날을 함께 사는 날이네
오늘은
♧ 아카시아를 위한 노래 - 목필균
가자. 이젠 기다림도 소용없어
만개한 오월이 너를 끌고
더 길어질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걸
쪼로록 쌍으로 줄지어 펴진 잎새 사이
총총히 하얀 꽃 숭어리 흐드러져도
떠날 사람 다 떠난 텅 빈 시골길
네 향기 분분한들 누가 알까
가자. 눈먼 그리움도 소용없어
우거진 초록이 너를 안고
더 슬퍼질 추억 속으로 들어갈 걸
잉잉대는 꿀벌 날갯짓 바쁜 꽃잎 사이
까르르 웃어대는 하얀 향기 흐드러져도
잊을 건다 잊은 텅 빈 산길에
네 마음 젖었다고 누가 알까
♧ 아카시아 향기 바람에 날리고 - (宵火)고은영
물밀듯 가슴에 차오른 계절의 향연
그러므로 너는 열린 가슴
함박 웃는 미소 머금어 아름다운
오만하지 않은 겸손한 순결이다
네 몸에 두른 하이얀 면사포에
창백한 손길로 써 내려가는 편지마다
사랑은 향기로 머물다 가는 아픈 사연일까
오로지 꽃피워도 열매 없는 고독한 연가일까
때가 되면 일어서는 흐드러진 네 고백은
눈부신 얼굴에 감추인 향기로 피는
너의 이면에 가장 절실한
혹은 또 다른 지독한 슬픔일까
천지를 진동하는
내어 주고 너를 비우는 말 줄임표
그것은 언제나 생색 않는 소박한 사랑이다
표나지 않는 위대한 사랑이다
벌들이 침노해도
용서로 키우는 공존의 법칙이다
세상을 향한 고귀한 애틋함이다
푸른 창공에 흔들리는 순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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