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제주 조천 북촌마을 4․3길(1)

김창집 2020. 3. 27. 22:51

 

□ 다크 투어리즘과 4․3길

 

   근래 들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이는 ‘전쟁이나 학살처럼 비극적인 역사현장 또는 대규모 재난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을 일컫는다. 과거 제주 여행은 아름답고 독특한 경관이나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 찾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요즘 뜻있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 너머에 숨어 있는 제주 최대의 비극 4․3의 현장을 찾아 이를 바로 이해하고 평화의 참뜻을 깨닫기도 한다.

 

  이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화해와 상생으로 4․3을 해결해온 제주인의 노력을 알리는 한편,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과 아름다운 제주도와 4․3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안덕 동광마을, 남원 의귀마을, 조천 북촌마을, 한림 금악마을, 표선 가시마을, 오라동 등 6개 마을에 차례로 4․3길을 열었다.

 

  이번에 돌아볼 북촌마을 4․3길은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시작, 주변 일대를 돌아본 다음, 서우봉의 일제진지동굴과 몬주기알, 등명대를 거쳐 북촌포구, 낸시빌레, 꿩동산, 포제단, 마당궤, 당팟과 정지퐁낭 기념비 등을 거치는 6km 코스로 걷는 데만 약 2시간이 소요된다.

 

 

□ 위령비에 새긴 아픔

 

  기념관에 들어가기에 앞서 너븐숭이 북쪽에 자리한 위령비로 갔다. ‘제주4․3희생자 북촌리 원혼 위령비’가 앞에 세로로 서 있고, 뒤쪽으로 ‘제주4․3희생자 북촌 영위’라 해서 6단으로 길게 436위의 명단을 새겼다. 먼저 묵념을 올리고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위령비 뒷면에는 ‘4․3조상님들이시어/ 인간의 목숨/ 그 창창한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한 순간에 빼앗긴 채/ 너무도 작은 시간을 살다간/ 슬픈 영혼 영신님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생명의 빛으로 되살아나/ 마침내 역사가 되신 영혼 영신님네/ 그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 주소서.’라고 새겼다.

 

  명단을 새긴 비 뒷면에는 북촌리 사건을 ‘순이 삼촌’이라는 소설로 형상화해서 진실 규명의 물꼬를 텄던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새로운 빛으로 되살아나소서’라는 글을 새겼다. ‘…포악무도한 세력의 사나운 총구 앞에서/ 436명의 무죄한 촌맹이/ 한날한시에 쓰러져 가던 그 날/ 불타는 마을이 충천하는 붉은 화광과 벼락 치는 총성 속에/ 낭자한 통곡과 비명들이 하늘을 찌르던/ 그날을/ 뉘라서 잊을 것인가! (중략) // 이제 우리는 무자년의 그 참사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여기에 돌을 세운다./ 용서하지만 잊지 않기 위하여/ 영구불망의 돌을 세운다.(하략)’

 

 

□ 북촌리의 비극

 

  북촌리는 왜 이런 비극의 마을이 되었을까?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그 역사를 더듬어 본다. 북촌리는 조천읍 맨 끝에 위치한 해변마을로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운동가를 많이 배출시켰고, 해방 후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조직이 활성화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1947년 3․1사건 이후 크고 작은 일이 벌어졌고, 1949년 1월 17일 너븐숭이 인근에서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에 숨지자, 군인들은 무작정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에 모아 인근에서 3백여 명을 집단 학살시키는 등 4․3사건의 최대 피해마을로 꼽힌다. 그야말로 국제법상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대표적 사례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 너븐숭이 4․3기념관

 

  기념관 개요를 보면,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를 넘어 이제 북촌리는 진실과 화해, 평화와 상생의 새 역사로 나아가고 있다. 정부는 이곳 너븐숭이 일대에 국비 약 15억 8천만 원을 들여 위령비, 기념관, 순이 삼촌비, 관람로 시설 등을 마련하여 후세 교육장으로 활용하게 하였다.’고 썼다.

 

  기념관은 전시관, 탐구관, 묵상의 방, 영상실, 사무실 등으로 구성되었다. 묵상의 방은 ‘평화와 상생의 꽃으로 피어나소서...’라는 구절과 함께 희생자 명단이 석 줄로 기다랗게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 나무에 묶인 사람들의 조각판을 세워 놓았다.

 

  전시관에는 북촌리의 진상규명 운동, 현기영의 ‘순이 삼촌’,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주민 대학살의 진상을 발단․전개․대학살․증언․이어지는 학살․증언․결말 식으로 전시했다. 나오면서 결말로 적어놓은 ‘후손이 끊긴 집안이 적지 않아 한 때 무남촌(無男村)으로 불리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과 금기를 강요당한 왜곡의 역사가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내용이 너무 참혹해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먹었다.

 

 

□ 너븐숭이 애기무덤

 

  너븐숭이 애기무덤이 있는 곳은 조그만 빌레(넓게 펼쳐진 암반지대) 언덕이다. 옛날 농사를 짓지 못하는 이런 공터에는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돌고 나면 조그맣게 돌을 두르고 가시로 덮어놓은 무덤이 하나둘 생겨났다. 너븐숭이라는 이 언덕에는 크고 작은 소나무가 불규칙하게 자라고 있는데, 이런 애기무덤이 20기정도 있다. 그 중 4․3때 학살당한 어린애 무덤이 반이나 된다고 했다.

 

  무덤 입구에 양영길 시인이 짓고 황요범 선생이 글씨를 쓴 시비의 시구(詩句)가 애처롭다. ‘아직 눈도 떠보지 못한 아기들일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어머니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 사람이 죽으면/ 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눈에는/ 너무 낯선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목이 메인다// 누가 이 주검을 위해/ 한 줌 흙조차 허락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무덤 옆 나무 그루터기에 동전 몇 닢을 올려놓았고, 누군가는 무덤 위에 작은 토끼 인형을 올려놓았다. 솔잎 수북이 쌓인 무덤 옆의 수선화는 벌써 졌다. <계속>

 

 *이 글은  '제주일보' 2020년 3월 10일자 '김창집의 길 이야기'에 연재되었던 글로, 4.3에 관한 내용이어서 앞으로  4월을 앞두고 전체 4차례에 걸쳐 옮겨 실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