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서귀포항
‘미항(美港)’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름다운 항구’다. 우리가 흔히 나폴리(이탈리아),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 시드니(오스트레일리아)를 세계 3대 미항이라 하지만, 서귀포항도 규모만 좀 작지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숲을 포함하는 주변 경치나 새섬으로 두른 안온함, 또 천지연폭포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인해 수심이 쉽게 낮아지지 않고, 바로 태평양을 향해 열린 점 등이 그렇다.
여객선터미널을 둘러보고 나오다가 오랜만에 수족관에 잠겨 있는 ‘ᄌᆞᆫ다니’ 무리를 만났다. ‘ᄌᆞᆫ다니’는 ‘잔소리’를 뜻하는 제주어이기도 하지만 ‘두툽상어’ 또는 ‘개상어’라 부르는 물고기다. 상어 종류 중 제일 작으면서 육질은 쫄깃하다. 이보다 조금 더 크고 술꾼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비께’는 ‘수염상어류’에 속하는데, 10여 년 전 세화 오일시장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뒤론 보지 못했다. 그 옛날 ‘모도리’라 하여 제주도민의 사랑을 받던 ‘돌묵상어’도 절종되었는지, 이젠 속담 속에서나 만나게 되었으니….
□ 솔동산 문화의 거리
‘이중섭 산책로’란 부제가 붙은 솔동산 문화의 거리는 솔동산로를 중심으로 이중섭거리에서 자구리해안과 서귀포항을 연결, 주변에 조형물이나 벽화를 설치하고 벤치를 놓은 곳이다. 서귀진성으로 올라가는 곳에는 오뚝이처럼 만든 할머니 조형물 옆에 ‘할망당의 유래’를 적어놓고, ‘돌을 얹어 소원을 비는 곳’으로 했으나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곳곳에 재미있는 제주어 글을 써넣기도 하고, 선인들의 옛 풍속을 그리기도 했다. 그 중 강문신 시인의 ‘농장 할망’이 재미있었지만, 그의 시비(詩碑)에서 발길이 멈춘다. 석산 강창화 선생의 글씨로 새겼다.
‘신묘년 새 아침을 서귀포가 길을 낸다/ 적설량 첫 발자국 새연교 넘어갈 때/ 함박눈 바다 한 가운데 태왁 하나 떠 있었네// 이런 날 이 날씨에 어쩌자고 물에 드셨나/ 아들놈 등록금을 못 채우신 조바심인가/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물에도 풀리지 않는// 새해맞이 며칠간은 푹 쉬려 했었는데/ 그 생각 그마저도 참으로 죄스러운/ 먼 세월 역류로 이는 저 난바다 …우리 어멍’ -강문신 ‘함박눈 테왁’ 전문
□ 서귀진지(西歸鎭址)
서귀진지는 2000년 11월 1일자로 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서귀진이 있던 터다. 당시 제주에는 방어시설로 3성 9진이 있었는데, 그 중 이곳에는 서귀포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던 곳이다. 1493년(세종 21)에 처음으로 한승순(韓承舜) 목사에 의해 천지연 상류 홍로천변에 성을 쌓았는데, 1589년(선조 22)부터 1592년(선조 25)까지 이옥(李沃) 목사가 이곳으로 옮겨 쌓았다 한다.
특별한 사항은 당시에 ‘정방연(正房淵)에서 이곳까지 수로를 파서 물을 끌어들여 사용했으며, 남은 물은 주변에 논농사를 짓도록 하였다.’고 ‘탐라지초본(1842)’에 나와 있다. 2010년 발굴조사를 하면서 수로와 우물 유구 일부가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남천록(1873)’에는 이곳 성의 규모가 나와 있는데, 성은 높이 2.8m로 둘레 233m를 쌓았고, 동서에 두 개의 정문, 객사, 무기고, 군관청, 창고 등 11동의 건물이 있었다. 그 모습은 ‘탐라순력도(1702)’ ‘서귀조점(西歸操點)’에도 잘 나와 있다. 영주12경의 ‘서진노성(西鎭老星)’은 이곳에서 노인성을 보는 광경이다.
□ 이중섭 거리
이중섭 거주지를 가기 위해 올레길을 따라 들어가니 하귤나무 아래 말쑥한 신사가 앉아 있다. 김범수 작가의 ‘이중섭의 꿈’이라는 작품이다. 전쟁 피난 중 꾀죄죄한 모습일 것이란 생각과 달리 꽤나 말쑥하게 보여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어지는 골목길과 그에 어우러진 꽃, 그리고 나타나는 아담한 초가집…. 연출이 단출하고 아름답다.
오늘의 올레길, 또한 서귀포를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건 아무래도 이중섭거리 덕분은 아닐까? 초가집 입구에 ‘이곳은 화가 이중섭과 가족이 거주하던 곳인데, 아내 이남덕(李南德)과 장남 태현, 차남 태성과 함께 1951년 1월부터 그 해 12월까지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라고 썼다. 아무리 천재 화가라 하지만 1년 동안 머물었던 집이 서귀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이 되었으니, 이를 기획하고 실천에 옮긴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 매일올레시장
매일올레시장에 들어서면서, 왜 먹거리를 내세운 하영올레가 2코스 끝자리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눈과 귀가 즐거웠으니, 마침내 입이 즐거워야 할 차례가 아닌가. 다른 두 개 코스도 다 걷고 나면 도착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또 시장끼가 돌 무렵이라 제주말로 ‘주우릇’하게 마련이다.
이번 취재에서는 관광객들의 미각을 붙잡을 만한 먹거리들을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제주의 맛을 대표하는 것은 흑돼지인가 보다. 이 고기를 활용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이를 테면 이 고기에 문어나 딱새우를 곁들인 만두 종류, 고사리와 전복, 고추잡채를 곁들인 말이류, 소라와 야채를 같이 꿴 꼬치류, 오징어 등으로 무장한 전류, 고기를 다져넣은 떡갈비나 볶은밥류, 강정류, 김치말이 등 메뉴 개발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제주가 본향인 오메기떡의 재료도 다양해졌고, 한라봉을 활용한 음식도 많다. 또 현장에서 친지들에게 제주 특산물을 보낼 수 있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서귀포의 싱싱한 채소나 식재료를 찾아 시장보기도 가능하다. 필자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할머니들이 캐어온 꿩마농(달래)과 돌미나리를 마수걸이로 샀던 기억이 새롭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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