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시지 그림정원
평소 ‘풍토가 예술의 전부’라 했듯, 그가 태어난 서홍동 한편에 주민들에 의해 ‘변시지 그림공원’이 탄생했다. 잘 다듬지 않은 자연석에 새긴 ‘변시지 그림정원’을 확인하고 안을 들여다보면, 정낭도 걸치지 않은 정주먹 너머에 변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형상화 해놓았다.
주변 울타리 안으로는 그의 대표작의 하나라 할 만한 ‘이어도’를 비롯한 서너 작품을 현무암을 깎아 검은 색으로 새겨 놓았다. 황토빛이 아니라도 충분히 어울린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까마귀를 여기저기에 배치해 놓았다.
‘파란 바닷물이 출렁일 때면/ 이어도는 어떤 곳일지/ 늘 궁금하였다.//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이 폭풍이 되고/ 그 세찬 폭풍 속을/ 지팡이를 짚고/ 쓰러질듯 절룩이며/ 이어도를 건너오는 사내가 있다.// 죽어서 갈 수 있다는 이어도를/ 온통 황토 빛인 하늘과 바다를/ 등 뒤에 거느리고/ 이어도를 건너오는/구부정한 한 사내가 있다.
아아, 폭풍의 화가 변시지/ 강렬한 폭풍 속에 내던져진/ 존재의 고독을 한없이 사랑한 사내/ 세상의 모든 바람들이 뚫고 지나갈/ 바람의 통로를 화폭에 그려낸다.// 세찬 폭풍, 쓰러질 것 같은 소나무, 외로운 사내, 흔들리는 쪽배, 여윈 말,/ 황토 빛 하늘과 바다, 양파뿌리 같은 태양 그리고 다리가 하나인 까마귀,/ 또 절룩이는 까마귀, 까마귀…
사내는 까마귀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까옥, 까옥”/ 까마귀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눈을 감으면/ 기다림과 적막 그리고 평화// 온통 그리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 이어도에서// 손 흔드는/ 아아, 폭풍의 화가 변시지// 오늘은 서귀포에서/ 불멸의 점 하나 내리찍는다.’ -문상금 시 ‘폭풍의 화가 변시지’ 모두
□ 우성 변시지 화백
돌에 새긴 화백의 소개 글을 보면, ‘폭풍의 화가, 제주의 혼으로 불리는 화가 변시지는 1926년 5월 29일 이곳 서홍동에서 순수하고 정직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다.’로 시작된다. 그리고 여섯 살(1931년)에 부친을 따라 도일해 23세(1948) 때 일본 최고의 화단인 ‘광풍회(光風會)’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정회원이 되었다고 썼다.
31세(1957년)에 서울대학 초빙으로 영구 귀국하여 창덕궁 후원을 중심으로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세밀하게 그렸다. 1975년부터는 제주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가족과 떨어져 제주에 홀로 정착하게 되었다. 제주에 살면서는 그간의 화풍을 버리고 ‘고독․그리움․기다림 등 제주민의 삶의 정서를 향토애의 진한 내면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공원 밖에는 3주기 때 세운 변 화백을 추모하는 독특한 작품이 있다. ‘영원의 빛’이라는 한호의 작품으로 제주의 예술과 풍토를 세계에 알리고, 제주의 품에 영원히 잠든 선생을 위해 건립한 했다고 한다. 이는 변 화백의 대표작 중 ‘이어도’를 뉴미디어 기법으로 재해석하고 그 속에 제주문화예술의 미래상을 빛으로 표현했단다. 특히, 뱃머리를 이상향 이어도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대한민국 최남단 영원한 희망을 담은 것이다.
□ 홍로현청 터
이어진 현청로를 걸어 동쪽으로 걸었다. 곳곳에 우거진 나무들이 역사 깊은 고장임을 느끼게 한다. 걷다가 커다란 울타리 그림에서 발을 멈추고 보니, ‘서홍 8경’이다. 제1경 ‘하논’부터 ‘솜반천’, ‘흙담솔 군락지’, ‘온주감귤 시원지’, ‘녹나무’, ‘지장샘’, ‘먼나무’를 거쳐 제8경 ‘들렁모루’까지 다채롭다.
서홍동의 옛 이름은 지금의 동홍동과 합쳐 ‘홍로(烘爐)’이다. 그 이름을 글자로 풀이하면 ‘이 지역 형세가 화로의 형국’임으로 풍수상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홍로현(烘爐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홍로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서홍동 150번지 일대 속칭 ‘대궐터’로 추정하고 있다. 거기에 기와편과 주춧돌이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건물지로 보고 있다.
그 현청 터를 찾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평범한 시골 골목길 안에는 절 포교당이 자리 잡았고, 돌아 나오면서 봐도 그 대궐 터는 명확하게 나와 있진 않다. 역사적인 기록으로만 보면 홍로현을 비롯한 15개의 현이 충렬왕 26년에 촌에서 현으로 개편하였다고 하나 구체적인 기록들은 보이지 않는다.
□ 지장샘 설화
지금 지장샘은 새롭게 단장이 되어 있다. 앞에다 큰 바위를 단 위에 세워 ‘지장천(智藏泉)’이라 새기고 아래로 전설을 새겨 넣었다. 샘이 솟는 곳에는 네 개의 기둥을 세워 기와지붕을 올리고, 옆에는 사연을 만화로 그려놓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고려 예종 연간 송나라에서는 탐라에 인재가 태어난다는 풍문이 떠돌아 송나라 조정에서는 압승지술이 능한 호종단을 시켜 십삼 혈을 모두 끊고 오라고 명하였다. 호종단이 홍로에 닿기 전 어느 날,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 점심그릇인 행기에 물을 가득히 담아 소 길마 속에 감추면서 “만일 누가 와서 이 물을 찾으면 모른다고 해 주시오.” 하고 사라졌다.
잠시 후 호종단이 나타나 농부에게 물었으나 모른다고 했다. 호종단은 주변을 헤매면서 물을 찾았으나 못 찾아 탄식하며 술서를 찢어버리고 돌아갔다. 농부는 백발노인이 시킨 대로 감춰두었던 물을 갖다 부으니, 거기서 맑은 물이 흘러 나왔다 한다. 그래서 물을 지혜롭게 감춰졌다고 하여 지장샘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세간에 떠돈다. 전에는 샘물 아래쪽으로 미나리 밭이 있었으나, 지금은 물길을 살리고 잘 정리하여 쉼터를 만들었다. <계속> *뉴제주일보 연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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