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숲길
서홍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추억의 숲길’ 출발점에 세운 안내판을 보면 ‘선조들의 멋과 추억의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렇지만 요즘처럼 사는데 여유가 있어 건강을 위해 자연을 즐기며 숲길을 걸었던 선조들을 생각할 수는 없고, 화전을 일구거나 목축 또는 약초를 캐며 살았던 사람들이 ㅅ라았던 조그만 산촌이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 길은 입구가 요즘 한창 붐이 일기 시작한 ‘서귀포 치유의 숲’과 이웃하고 있어, 토평에서 출발, 오일장과 동문로터리, 중앙로터리를 경유, 남주고에서 산록남로(1115)를 거쳐 치유의 숲에 이르는 625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하루 네 차례밖에 없다.
코스는 한라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 마을이 있던 곳을 지나 ‘편백쉼터’에서 삼나무길 서쪽으로 한라산 둘레길(동백길)을 걸어 1km지점에서 돌아오는 코스다. 2012년에 조성된 길로 총 11km, 걷는 속도에 따라 3〜4시간이 소요된다.
□ 출발점 주변의 겨울딸기
정문에서부터 계단을 따라 숲으로 접어든다. 전에 없던 쉼터가 오른쪽에 마련되어 있어 일행을 기다리다 같이 가면 좋겠다. 쉬는 동안 분위기를 다잡으라고 시(詩)도 3편이나 마련해 놓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삼나무 편백나무의/ 신령스러운 기운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아픔과 고난의 시대를 지나 자유(自由)가 있고/ 희망(希望)의 있는/ 치유(治癒)의 시대를 향하여/ 걷고 걷는다’는 문상금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옆에 마련되어 있는 대나무 지팡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길섶 곳곳에 겨울딸기가 짙푸르게 어우러져 보기가 좋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제 꽃봉오리가 조금씩 여물기 시작했다. 상록 덩굴성 반관목인 겨울딸기는 제주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대만에 분포하는데, 겨울에 따먹는 산딸기라 겨울딸기라 하는 것이다. 30년 전만해도 주로 각시바위 주변과 같은 서귀포 중산간 오름에서 많이 보이더니, 지금은 서귀포시는 물론 온 섬으로 퍼졌고, 추자도까지 건너갔다.
숲은 서귀포 중산간지대가 그렇듯이 소나무가 듬성듬성 남아 있고, 상록교목과 잡목이 섞인다. 참식나무, 생달나무, 새덕이는 물론 동백나무, 조록나무, 사스레피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붉가시나무와 삼나무도 섞였다
□ 연자방앗간은 방앗돌만 남아
연자매를 제주에서는 ‘ᄆᆞᆯ방에’라고 하는데, 주로 밭벼나 보리, 조 따위를 찧거나 가루로 만들 때 사용하며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다. 보통은 말이나 소를 사용하여 끌도록 해서 방앗돌을 굴린다. 제주에서는 훑어 타작해온 보리를 넣고 물을 부으면서 돌려 보리쌀로 만들거나, 조코고리(조이삭)을 넣고 조를 털어낸 뒤 조를 좁쌀로 만드는 일을 많이 했다.
찧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동네마다 비용을 모아 각기 방앗돌을 마련하고 돌을 굴려다 방아를 메워 같이 참여한 사람들끼리 사용했다. 그래서 동네마다 연자방앗간을 운영하다가 정미소가 생겨난 뒤에는 그 기능을 잃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비가 올 때 소나 말을 가두어두거나 그냥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방앗간이 없거나 시간이 없을 때는 식구끼리 남방아를 찧거나 맷돌(ᄀᆞ레)을 돌려 해결했다.
4․3때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이 마을은 지금의 어느 곳을 개간해서 곡식을 그렇게 많이 수확했는지 모르지만, 연자방앗간까지 갖출 정도면 꽤 많은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 연자방아 돌리던 내력
주변에는 집터인 듯한 곳들도 있고 밭담 돌담들도 쌓아져 있다. 그 한켠 ‘연자골’이란 이름으로 조그만 초가집이나 오두막, 낟가리 등이 그려진 그림엔 말 몇 마리가 한가하게 놀고, 통시엔 새끼돼지도 한 자리 산다.
안내판에는 ‘맨 처음 애월읍 출신 김해 김씨가 1900년경에 정착하였고, 이후 1940년경 제주시 봉개동에서 진주 강씨가 연자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는 네 가구 정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주민들은 화전을 일구어 마, 고구마, 조, 산디(밭벼)를 심어 그 곡식을 수확해서 생활을 했고 목축과 사냥도 같이 했다.’ 유적으로는 집터, 통시, 말방아, 계단밭, 목축지, 사농바치 터 등이 확인된다. 1948년 4․3사건이 일어나기 전 당시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하여 아랫마을로 내려오게 되었고, 이후 서귀포 여러 곳으로 흩어지면서 마을은 사라졌다. 그 주변에 세운 3편의 시판(詩板) 중 한편,
‘ᄆᆞᆯ방에 앞에서 눈 감아 봅주./ 그냥 눈을 감주./ 서 있지 말고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앉거나 기대거나 가장 편한 자세로 눈감아 봅주.// 저기 ᄆᆞᆯ방에가 돌아간다. ᄆᆞᆯ방에가 돌아간다./ 지장샘 물소리, 대궐터 호령소리 세월 건너 올라온다./ 올라온다. 올라온다. ᄆᆞᆯ방에가 돌아간다. 돌아간다.// 200년 전 사람들 모두 나와 ᄆᆞᆯ방애를 끌어온다.’ - 양영길 ‘ᄆᆞᆯ방에 앞에서’ 부분.
□ 조그만 집터
집터라고 이름 붙인 돌무더기를 바라보면 높이가 한길 정도되는 벽만 남아 있다. 안내판엔 ‘네모 형태의 구들방, 고팡(곡물창고), 정지(부엌), 굴묵(난방), 땔감 보관소, 물팡으로 구성된 형태로 산속에서 먹을 것과 땔감을 얻고 다양한 임산물 채취와 조, 보리 등을 재배하고 사냥으로 고기를 얻으며, 여러 가구가 부락을 이루어 농경 및 목축생활을 하였다.’
한쪽으로만 터놓은 입구를 따라 들어간 곳에 움집에서 볼 수 있는 불터가 있고, 돌로만 되어 있는 작은 규모가 아무래도 임시 거처로 보인다. 우리가 세계여행 프로그램을 볼 때 티베트 같은 곳 깊은 산중에 텐트 같은 걸 쳐서 생활하는 모습 같다. 대단위로 추수하여 방아에서 빻은 곡식물 처리를 생각하면 어딘가 허술해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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