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인 자연순환 방식인 ‘통시’
집터 주변에 ‘통시(뒷간)’라 하여 돌로 쌓은 대여섯 평 정도의 터가 남아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농업 위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사람의 배설물은 한데 모아 썩혀서 거름으로 사용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그런데 제주도는 비교적 따뜻한 남쪽에 위치해 있어 배설물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재활용해서 돼지까지 기르는 방식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돗통시’는 돼지우리와 뒷간의 개념을 포함하는 형태다.
서홍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통시는 제주만의 독특한 주거문화의 요소 중의 하나인데, 대개 마당에서는 직접 보이지 않도록 전통가옥의 한 쪽 옆을 돌아가 있었다.’면서 ‘변을 보는 곳은 자연에서 두 단에서 세단 정도 높게 두 개의 긴 돌을 놓고, 흙담돌을 지붕 없이 쌓았다. 바닥은 마당보다 낮게 파서 배설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였으며, 수시로 보릿짚 등을 깔아주었다. 통시는 돼지우리이기 때문에 음식물 찌꺼기까지 처리하여 농사에 사용되는 최상의 유기질 퇴비인 돗걸름 생산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갖기도 하였다.’라고 하여, 자연 순환의 개념으로 ‘음식 → 똥 → 거름 → 음식’으로 순환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고 강조했다.
□ 남오미자와 흑오미자
마을 터에서 벗어나 다시 숲길로 접어드는 곳에서 우연히 남오미자 꽃을 보았다. 지금 제주의 오름과 숲, 그리고 밭 울타리 같은 곳에는 남오미자가 많이 퍼져 있다. 그러나 꽃은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 드러나지 않기에 쉽게 볼 수 없다.
원래 몸에 그렇게 좋다는 오미자(五味子)는 제주특산으로 대부분 흑오미자였다. ‘탐라순력도’로 잘 알려져 있는 이형상 목사는 ‘본도의 오미자가 세간에서 절미(絶味)로 알려져 있으니, 마땅히 임금님이 드셔야 한다.’고 숙종께 오미자 다섯 말(斗)을 올리면서 명년부터 진헌(進獻)하겠다고 했다가 ‘사사로이 무엇을 바치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라 하여, 무안당한 일도 있다. (숙종실록 29년 5월 갑자)
지금은 남오미자나 흑오미자가 같은 용도로 쓰이지만, 본래 흑오미자는 오미자과 오미자목에 속하고, 남오미자는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에 속하는 상록덩굴식물로 많이 다르다. 열매도 남오미자는 둥글고 큰 덩어리로 빨갛게 익지만, 흑오미자는 머루처럼 길게 매달려 검게 익는다. 지금 경북 문경시 같은 곳에서는 오미자를 재배해 농가 소득을 많이 올리고 있다.
흑오미자는 제주의 해발 600〜1,400m의 숲속에서 자생한다고 했으나, 과거 약용으로 많이 채취해버려서인지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대신 남오미자는 점점 늘어가는 실정이다. 농업기술원 원종장 같은 곳에서 좋은 종자들을 번식시켜 심게 한다면 감귤 대체작물의 하나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 사농바치터
냇가를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면, 길이 종종 물길로 변해 거칠게 패이거나 나무뿌리가 드러나 운신이 불편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도 계절에 따라 제주의 특산인 제주무엽란이나 사철란이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제주무엽란은 상록수림의 음지에서 썩은 식물체에 기생하여 자라는 무엽성 부생종이다.
‘사농바치’는 ‘사냥꾼’의 제주어이다. 사농바치 터는 생각보다 아주 작은 움막이었는데, 돌담만 둥글게 남았다. 몇 사람 웅크려 자기에도 너무 좁아 보인다. 과거 교통이 안 좋았던 시절 해안과 멀리 떨어진 촐밭을 나들 때 집에서 오가는 3〜4시간을 아끼기 위해 임시로 지었던 촐막보다도 작다.
□ 편백 쉼터
곳곳에 세워놓은 ‘추억의 숲길’ 약도에는 사농바치터에 북쪽으로 300m 가면 갈래길이 나오고, 거기에서 동쪽으로 100m 간 곳에서 거문오름으로 난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생략해 버렸다. 송전 철탑으로 이어진 그 길을 가면 나무가 우거지고 쉴 만한 곳이 없어 생략해 버린 것 같다.
갈래길에서 북쪽으로 700m 걸으면 한라산 둘레길인 ‘동백길’ 제4구간과 만난다. 출발지점인 무오법정사에서 7.3km, 돈네코 탐방로까지 4km 남은 지점이다. 편백 쉼터는 그곳에서 동쪽 100m 거리에 있다. ‘편백 쉼터’에는 수령 50년쯤 되어 보이는 편백나무가 600여 그루 자라고 있어, 그 그늘에 비치해 놓은 평상들은 더운 날 인기가 높다.
편백나무는 일본의 대표적 수종 가운데 하나로, 목질이 좋고 향이 뛰어나 여러 곳에 쓰인다. 근래에 편백에 함유된 피톤치드가 아토피 치료에 효과가 입증되면서 주택이나 생활도구에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그 숲은 휴양림으로 각광 받고 있다. 편백은 침엽수에 속하지만 비교적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는데, 우리나라에도 규모는 작지만 삼남지방에 그 숲이 제법 분포되어 있어 치유의 숲으로 인기가 높다.
□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은 편백 쉼터에서 서쪽으로 동백길을 1km 걸어 남쪽으로 돌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곳곳에 삼나무가 심어져 있다. 원래 한라산둘레길은 해발 600〜800m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일제강점기 병참로(일명 : 하치마키도로)와 임도(林道), 표고버섯재배 운송로 등을 이용해 만든 길이다.
과거 목장으로 이용되었던 지대는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지 오래다. 해방 후 식목 장려로 삼나무나 편백 묘목을 심은 곳은 심은 그대로 자랐고, 이 두 수종은 이제 용도에서 그 차이가 뚜렷하다. 이를 거울삼아 앞으로 나무를 심는다면 미래를 내다보면서 필요한 수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 주로 새들에 의해 퍼진 나무들 중 과육 속에 딱딱한 씨껍질이 있는 참식나무, 녹나무, 새덕이, 이나무, 후박나무 등이 많이 퍼져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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