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쫄븐 갑마장길(1)

김창집 2022. 11. 4. 00:08

*공원경내에 있는 말 모형

 

제주 목축문화의 본고장, 가시리

 

 

  가시리는 표선면 서북부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오름까지 합쳐 90m~570m의 고도에 위치해 있으면서, 면적은 10로 표선면 전체 면적의 41.4%를 차지할 정도로 넓다. 전통적으로 야초지가 많아 예부터 목축업이 활발하였다.

 

  마을 안내판을 들여다보면, ‘가시리는 중산간 지대이고 분지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말을 길러냈던 산마장(녹산장)이 설치될 정도로 목축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곳이라 했다. ‘갑마장(甲馬場)’은 우수한 말들만을 따로 길러 조정에 진상했던 마장으로 현재 마을 공동목장이 그 터다. 그래서 제주의 목축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유적들도 남아 있는데, 그 중에는 잣성의 원형이 많이 보존돼 있을 뿐만 아니라 테우리들의 쉼터인 목감막터와 급수통, 목도 등이 남아 있다.

 

 

*쫄븐 감마장길 약도

 

갑마장길과 쫄븐 갑마장길

 

  조선시대 제주에는 국영목장인 10소장을 제외하고 헌마공신으로 알려진 김만일과 그 후손들이 운영하던 산마장(山馬場)이 있었는데, 이는 침장(針場, 조천읍 교래리 바농오름 일대)과 상장(上場, 산굼부리 일대), 녹산장(鹿山場, 표선면 가시리 소록산과 남원읍 수망리 물영아리 사이)이다.

 

  그 중 녹산장은 대부분 지금의 가시리 지역으로 갑마장(甲馬場) 터를 중심으로 조랑말체험공원을 만들고, 갑마장과 마을을 잇는 길을 연결해 20125월에 갑마장길을 열었다. 갑마장길은 방문자센터를 축으로 당목천 따라비오름 잣성 대록산 가시천 행기머체 조랑말박물관 서성로 안좌동 한씨방묘 등을 도는 코스로 20km5~6시간이 소요된다.

 

  쫄븐 갑마장길은 갑마장길이 너무 길어 버겁거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반으로 줄여 핵심 코스만 돌도록 한 축소형 갑마장길인데, 201211월에 개장했다. 조랑말체험공원에서 출발, 바로 옆에 있는 행기머체를 거쳐 가시천변을 따라 따라비오름에 오른 뒤, 잣성과 국궁장을 거쳐 큰사슴이오름(대록산)에 갔다가 내려와 유채꽃 프라자에서 꽃머체를 거치는 10km 코스로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헹기머체

 

행기머체

 

 

  출발점에서 나오다 보면 동산도 바위도 아닌 게 우뚝 솟아 있는데, 바로 행기머체. 안내판의 설명에 따르면 높이 7m, 직경 18m의 암석으로 현무암질 용암이라 했다. ‘제주어 사전(제주특별자치도, 2009년 개정증보판)’을 보면, ‘머체는 보통 머세라 하며 표준어 서덜에 해당되는 말로 돌이 엉기정기 쌓이고 잡목이 우거진 곳이라 했다. ‘행기놋그릇에 담긴 물행기물에서 차용했다.

 

  자세히 바라보면 해설에 딱 맞게 돌 위에 잡목과 풀이 우거졌다. 올라가 보면 물은 고여 있지 않고 바위틈을 의지해 제법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커다란 조록나무를 비롯해 동백나무, 팽나무, 때죽나무, 팥배나무, 후박나무, 사스레피나무, 생달나무 등등 매우 다양하다. 북쪽으로 힘들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다.

 

  이는 원래 오름(화산)의 내부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로 노출된 것으로 지하용암돔이라고 부르는 크립토돔(Cryptodom)’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거니와 국내에서도 유일한 분포지이며, 동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100m 정도 거리에 있는 꽃머체와 더불어 제주 탄생의 지질학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곳이다.

 

 

*가시천변을 따라 난 길

 

가시천변을 따라

 

 

  헹기머체에서 나와 녹산로를 건너면 가시리 종합 안내판이 있고, 그 옆 입구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 가시천변으로 진입하게 된다. ‘가시천(加時川)’이라고 해 봐야 이곳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조그만 하천이다. 지도에는 가시리 마을 진입로 세거리에서 성읍으로 빠지는 중산간동로(1136)의 제2가시교로부터 나온다.

 

  가시천의 시작점은 가시리 산53번지선이며, 마을을 지나 제1가시교를 건너온 안좌천과 합쳐 세화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유로연장 20.19km에 유역면적은 36.12로 제법 넓은 지역에 영향을 끼치는 하천이다.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하천이지만 태풍 불 때마다 하천의 범람하여 피해를 입힌다는 소식이 자주 들리는 곳이다.

 

  가시천변을 따라 걷는 길은 약 1.8km로 잡목림이 울창하게 그늘을 만들어 제법 운치가 있다. 서귀포시 하천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커다란 구실잣밤나무들이 하천에 늘어서고, 가끔씩 커다란 굴참나무와 굴피나무가 보이는가 하면, 곳에 따라 조록나무, 사스레피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참식나무 같은 상록수와 때죽나무, 비목나무, 사람주나무, 예덕나무 같은 낙엽수가 어울려 자란다. 밖으로는 곳곳에 삼나무 심은 곳, 소나무가 모여 있는 곳이 있고 바닥에는 자금우가 많이 자란다.

 

 

*넓은 무밭

 

넓은 무밭, 시세가 좋아야 할 텐데

 

  가시천변이 끝나는 곳에 왼쪽으로 트인 곳이 있어 잠시 멈춰 들여다보니, 엄청난 넓이의 무밭이다. 그 뒤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멀리 한라산엔 하얗게 눈이 쌓였다. 무는 잘 자라 어느 한쪽 허술한 곳이 없다. 어렸을 때 선친께서 너무 많은 무를 심어 팔지 못한 나머지 무말랭이를 만든다고 밤새워 썰어 널고, 거둬 들이고 하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주는 따뜻한 지역이어서 땅이 얼지 않기 때문에 월동무로 12월에 출하를 시작하면 이듬해 6월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지금은 전국 무 생산량의 30% 안팎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생산량이 너무 많으면 가격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폐기해야 하는 게 흠이다. 어디 무뿐이랴? 제주에서 생산되고 있는 원예작물이 다 그런 것을. 땀 흘려 지은 무 농사, 올해는 좋은 시세로 출하되기를 기원해본다. <계속>

 
 

*대록산(큰사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