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파관문의 건물 모습
* 사스레나무와 가문비나무의 어울림
△ 2011년 6월 25일 토요일 쾌청(快晴)
왜 하필 6.25한국전쟁 발발 61주년 되는 날 백두산 종주 일정을 잡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실은 날씨가 매우 맑다는 것뿐. 더욱이 제주의 장마를 뚫고 온 터라 통쾌하기까지 하다. 하지(夏至)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백야(白夜)로 너무 일찍 날이 밝았기 때문에 그런 줄도 모르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벌떡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하고, 갑자기 인구가 불어났다는 백두산의 관문 도시 백산(白山)의 장백산가일호텔을 뒤로 했다.
어제 장춘(長春)에서 출발하여 일제 때 조성했다는 장춘정월담 국가삼림공원경구와 장춘세계조각공원을 일별하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만주벌판, 밭마다 거르지 않고 심어놓은 옥수수를 바라보며 긴 시간을 달려온 버스도 하루를 쉬어서 그런지 신나게 달린다. 백두산이 가까워지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얼마 안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스레나무와 수중공주라는 자작나무(白樺)가 나타나고 나리를 비롯한 야생화들이 차창을 스치며 달아난다.
어느새 차는 창바이산(長白山)풍경구 서파관문에 도착해서 현지 가이드가 표를 사는 동안 25명의 오름해설사 3기 가족들은 도시락을 하나씩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기다린다. 이곳은 1980년 3월에 유네스코 국제생물권보호지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보통 차는 갈 수 없고, 가스로 움직이는 중형버스로 45분 정도 더 달려 계단 앞에 이르러야 한다. 8시에 운행 시작하는 차에 빨리 올라야 약 15km의 긴 등반로를 좀 더 이른 시간에 주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무가 드물어지고 멀리 백두산의 모습이
* 서파능선으로 가는 1,236개의 계단을 오르는 모습
△ 창바이산풍경구 서파산문을 지나
드디어 세 번째로 출발하는 차에 옮겨 타고 자리를 잡았다. 2년 전에 통과했던 지역이라 어느덧 눈에 익은 나무들이 인사를 한다. 차내 방송을 들으며 눈을 창문 너머로 돌려 바뀌는 풍경을 주시한다. 방송은 이곳이 중국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하나같이 동북공정이 끼어든다. 백두산(白頭山)이란 말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창바이산(長白山) 선전에 바쁘고 역대 이름 있는 황제가 이곳에 왔던 사실(史實)을 열거하기 바쁘다. 어디에 그런 기록들이 있었던가? 일찍이 만주에서 일어나 중국을 통일한 청태조 누르하치에 관련된 기록이라면 몰라도….
창밖은 이곳 1700m~2000m 고지에 펼쳐지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울려 자라는 삼림이 눈을 시원히 씻어준다. 허구헌날 컴에서 혹사해온 눈이 호강을 누리는 판이다. 차내 방송은 소나무와 사스레나무가 한데 얼려 자라는 특이한 환경을 설명하고 있으나, 소나무는 침엽수 정도로 알아들어야 한다. 주 침엽수는 잎갈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고 활엽수는 사스레나무나 자작나무다. 정말 서로 잘 어울려 자라고 있다.
어느덧 수림이 적어지고 아직도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백두산이 언뜻언뜻 보인다. 고도 2000m 수목한계선을 벗어나는 중이다. 초원엔 넉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박새가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다. 구불구불 더 오르자 이번에는 노란만병초가 만개하여 우리를 맞는다. 녹다 남은 눈밭을 제외하고는 주변이 온통 노랗다. 이런 신성한 곳까지 와서도 어서 빨리 저것을 카메라에 담았으면 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속인이다.
* 백두산 기슭에 한창 피고 있는 노란만병초
* 서파능선에서 천지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등산객들
△ 들썩이는 5호 경계비 주변
국경수비대 막사가 있는 주차장에서 내려 이제는 더 이상 화장실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화장실에 가보니, 소변기는 없고 대변기 두 곳뿐이라 줄을 서 한참 기다린다. 용케 볼 일을 보고는 옆에 있는 노란만병초만 보고 다가서는데, 군인도 아닌 것 같은데 둘이서 가로막는다. 그래 백두산 전체에 쫙 퍼져 있을 거니, 조급해 하지 말자고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와서 서파 능선으로 출발한다.
5호 경계비가 있는 능선까지는 약 900m이고, 누가 세었는지 그 계단수는 1,236개라 했다. 중국 어느 산을 가도 볼 수 있는 가마꾼들이 곳곳에 대기해 일부 손님과 7만원, 8만원하며 흥정을 하고 있다. 2년 전과 달리 돌계단 말고 한쪽에 더 느슨해 보이는 나무 계단이 따로 놓여 있어 모두 그곳으로 몰린다. 계단수가 많아 지레 어렵게 여기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진짜 슬리퍼 같이 생긴 신발을 신고 오르는 이도 있다.
어느덧 능선이다. 사실 중국과 북한의 경계 표시인 5호 경계비는 더 남쪽에 있고, 그곳에서 이곳까지는 임대 형식으로 빌려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야 새로 세운 상징적인 5호 경계비에는 사진 찍으려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능선에 다가서 보니, 안개 조금도 없이 확 트인 천지가 나타난다. 산 위로 흰구름이 조금 떠 있어 더 없이 좋은 날씨에 곳곳에서 탄성이 터진다. 그것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북새통을 이루었다. 조금 흠이라면 천지에 녹다 남은 얼음과 주변에 흩어진 색 바랜 눈이 거슬린다.
* 서파능선에서 바라본 천지에는 아직도 얼음이
△ 2,459m 마천우(봉)을 넘어서
들썩이는 인파 속에서 개별 기념사진과 전체 기념사진을 찍은 일행은 다시 모여 인원파악을 하고, 산행 기점으로 들어선다. 2,459m 마천우를 올라야 하는데, 능선으로는 바위가 가팔아서 우회하도록 되어 있다. 중국인 산악 가이드를 앞세우고 앞으로 번호를 하고 출발했는데, 뒤에 다시 중국인 산악 가이드가 따르게 되어 있다. 중간쯤에서 첫 번째 눈더미를 건너는데, 한쪽 손에 카메라를 들고 쉽게 생각하며 넘다가 한 5m쯤 미끄러졌다. 모두들 걱정을 했는데, 바지 엉덩이가 조금 찢어지고 손등에 찰과상 정도로 끝났다.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출발하라는 교훈으로 삼자면서 눈을 건너 오르고 보니, 능선 아래로 다시 천지가 웅장하게 드러난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천지 풍경이 새롭고, 옆으로 돌아서 다시 천지가 나타나면 그 모습이 달라져 있다. 이제는 눈으로 느끼기 보다는 머리로, 가슴으로 느끼려 애쓴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서 백두산은 민족과 국가의 발상지이며, 모두가 우러르는 성산(聖山)이 아니던가?
고조선(古朝鮮) 이래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발해(渤海)가 백두산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백두산 주변의 숙신족, 읍루족, 말갈족, 여진족, 만주족 등도 그들 민족의 성산으로 숭앙하여 역사와 전설을 남겼다. 풍수지리에서는 지세(地勢)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백두산은 기(氣)가 결집된 머리에 해당하며, 낭림-태백-소백산맥을 거치면서 그 기가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이룬다. 백두산에 간다고 말했을 때, 그 기(氣)를 많이 받아오라던 얘기가 새삼 떠오른다.
* 서파능선에서 바라보는 마천봉, 바로 못가기 때문에 왼쪽으로 돌아넘어야 한다.
* 멀리 계단을 통해 서파능선에 오르는 등산객을 바라보며 오르는 길
△ 2,662m 청석봉을 오르며
마천우를 넘어서서 2,662m 청석봉으로 향한다. 청석봉은 천지 서쪽에 자리해 있으면서 서북으로 백운봉과 1,270m 떨어져 있다. 여기서부터는 천지(天池) 외벽 능선을 따라 오른다. 먼저 올라간 등반객들이 콩알만 해 보이고 위험스럽게 느껴졌으나 실제로 산길만 따라 걸으면 큰 위험은 없다. 정말 이 봉우리는 거대한 산의 정상인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상에 올라 우리가 출발한 곳을 바라보니, 나지막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복작대며 사진 찍는 모습이 너무 작게 보인다.
1992년 처음 북파산문(北坡山門)을 통하여 짚차에서 내려 10분 만에 천문봉 정상에 이르러 한 10여분 동안 천지를 바라보았을 때의 감동은 너무 진해서 오랫동안 간직했었고, 2년전에 다시 서파관문을 통해 보고 간 뒤에는 백두산을 다 본 것처럼 떠든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넓고 다른 모습의 백두산의 진면목이 숨겨져 있는 줄도 모르고 떠든 것이 너무 부끄럽다. 360도의 각도에서 바라본 백두산과 천지의 모습이 다 다른데, 두 지점에서 본 것 가지고 너스레를 떤 것 같아 미안하다.
이번 산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최근 들어 설왕설래 하는 백두산 폭발 소식에 고무되었고, 산행 시간이 길어 야생화와의 화려한 만남을 기대하면서 마침 나의 스케줄에 맞게 일정이 되어 있어 신청하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예정되어 있는 약 15km의 산행길은 백두산 천지의 둘레 4분의 1의 거리이며, 90도 각도에서 관찰하는 길이 될 것임에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그 속살과 자연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리라. (계속)
* 마천봉 오르는 길
* 능선에서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만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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