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수목원에선 붉은병꽃이
다 말라버렸었지만
지난 일요일 넘어가다 본
제주시청의 병꽃은
이렇게 싱싱하다.
5월의 들판은
찔레꽃으로 난분분한데
보리 익어가는 냄새에
봄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헛되이 보낸 것 같은
이 봄에 나도 한 일이 있구나.
인도와 국내 몇 곳을 돌아본 일
이제
6월 완도행을 기다려본다.
♧ 병꽃나무 - 김승기
오랜 시간
많은 것을 채우기만 했지
하늘까지 채우고도 늘 굶주린다 했지
하늘에 매달린 항아리
무거워서 거꾸러진 병 주둥이
무엇 할까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그래 그렇지
세상은 채우는 것이 아니야
있는 대로 어우러지는 거지
허공을 풀어 놓는다
항아리를 비우는 작업을 한다
♧ 오월의 풍경화 - 박종영
싱싱한 웃음 넘치는 푸른 바람이다
저거 한 줌 마음에 가두면
복사꽃 설레는 가슴이 움틀 것이고,
흥겨운 시간은 낯익은 길로 돌아와
욱신욱신 등 두들겨 실오라기
빗살처럼 벗겨지는 오월의 길위에
봄 물결 터지는 소리 정겹게 들리고,
누구의 먼 길을 위해 꽃들은
저리 붉게 타오를까?
산들바람에 비질하는 여린 속잎
그사이 우수수 흩어지는 봄꽃의 먼지들,
오월은 샛노란 빛의 길을 따라
피곤한 하루가 풋사랑의 꿈결로 잠기는데,
새벽 기운으로 살아 아장아장 돋아나는
키 작은 들꽃,
하늘가 아득하게 한 장 그림으로 치장하는
오월의 풍경화처럼,
그 옛날 고향 냇가에서
참방대던 알몸들이 하냥 그립다.
♧ 일기 4 - 권복례
광릉수목원에서 본
흰병꽃나무
꽃잎을 밟으며 하산을 하는 내 앞으로
고북 저수지 아름다운 뒷모습을 화들짝 들어 내 놓았다
이렇게 호사스러운 하산처럼
먼 훗날
세상과 하산하고 싶은 오늘밤의 내 소망이다
♧ 오월의 편지 - 오순화
오월에는 부르고픈 이름들이 있다
오월에는 불러야할 이름들이 많다
풀 자리마다 향긋한 이름들이 돋아
질펀해지도록 취하고픈 마음
하얀 도화지에는 오색 수채화 마을이 열린다
엄마에게는 꽃분홍 블라우스
아빠에게는 감색 구두 한 켤레
선생님 전에는 하늘색편지지 꽂은 포도주 한 병
아이에게는 꿈을 담은 편지 한 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속에 전하는 따스한 말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오월의 뜨락에는
가시하나 햇살에 걸리지 않는다
꽃은 꽃이 되고
잎은 잎이 되어
날마다 꿈이 자라는 소리가 아이의 웃음처럼 왁자하다
오월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고맙고 감사하며 감동이다
♧ 오월 아침 - 박인걸
짝을 부르는
산비둘기 음성이
빌딩 숲까지 흘러들어
설레게 하는 아침
살결을 어루만지는
연두 빛 바람이
자연적 심성을
자극 하고
꽃과 풀과 향이
아우러져
이 땅에 펼쳐진
이상향이여
태양을 중천에 세워
영원히 여기에
머물고픈
이 아름다운 오월
♧ 오월 어느 날 - 목필균
산다는 것이
어디 맘만 같으랴
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
산딸나무꽃 처럼
하얗게 내려앉았는데
오월 익어가는 어디 쯤
너와 함께 했던 날들
책갈피에 접혀져 있겠지
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
바라만 보아도 좋을 것 같은
네 이름 석자
햇살처럼 눈부신 날이다
♧ 오월 애(愛) - (宵火)고은영
오, 그대 왔는가
불투명한 미래의 일기 속에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오월을 뒹굴 것인가
늙어지는 육신의 이면에 명쾌한 영혼으로
오월의 잎새처럼 마냥 푸를 것인가
창가엔 햇살이 환하다
나의 슬픔도 더러는 수수꽃다리 향 가득
엷은 노래로 희석되는가
찰랑대는 행복과 사랑의 이중주
초록으로 여울지는 음영들이 빛살에 살랑거린다
바람 부는가
오월 바람 일면 온통 푸른 향기들
견딜 수 없는 저 찬연한 푸르름
모로 누운 내 암울한 귓가에
숨죽여 달려드는 오월의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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