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장마 속의 단풍 시과

김창집 2013. 6. 26. 12:58

 

단풍은 가을의 아름다움을 위해

여름에도 그 준비를 멈추지 않는다.

꽃 진 자리에 날개를 달아

그 속에 씨앗을 담고

한여름 장마에 여물게 한다.

 

그리고 가을바람이 제법 거칠어지면

그 씨앗을 멀리 날려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빨갛게 치장한다.

 

시과(翅果)는 열매껍질이 날개처럼 되어서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 흩어지는 열매를 말하는데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따위에서 볼 수 있다.

 

 

♧ 나, 떠나네 떠나가네 - 박종영

 

나, 떠나네,

새벽안개 두런거리는 귓속말 들으며

둥싯한 마음 접고 황망히 떠나가네,

 

햇살 따라 더욱 뾰쪽한 청단풍,

곱게 분칠하고 요염떠는 저토록

달콤한 몸놀림,

누구에게 빼앗기랴 싶어 눈 부라리며 떠나가네,

 

세상 어느 날인들

소소하게 흔들리는 물소리 바람 소리

가까이 두고 살아갈 것이라,

 

푸른 어둠으로 사랑이 고르게 모아지는 날,

고개 넘어 순단이

단감빛으로 익어가는 젖가슴,

그리움에 콩콩거리고,

 

밟아도 일어서는 새벽이슬 툭툭 걸어간 자리,

훠이훠이 옷자락 참방거리며

나, 가을 숲으로 떠나가네.   

 

 

♧ 청단풍 - 안재동

 

너는 너의 사랑법으로

나는 나의 사랑법으로

서로 혹은 홀로 사랑하였을지니

 

그건

너는 너만의 사랑으로

나는 나만의 사랑으로만

흘렀을지라, 어쩌면

 

네가 나의 사랑법으로

내가 너의 사랑법으로

서로 혹은 홀로 사랑하였을지라도

 

그건 어쩌면

너는 나의 사랑이

나는 너의 사랑이 진정 될 수가 없었을

너와 난

 

온 천지가 고혹하게 붉어가는

이 가을에도

연인들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청단풍으로나 외로이

존재할 뿐인가

 

 

 

♧ 세월은 쉬지 않고 흐르고 - 청산 이풍호

 

세월은 쉬지 않고 흐르고

그 세월 속에 내 마음은

자꾸 침침해져가는 내 시력만큼이나

피곤하다.

 

어차피 주간지의 금주의 운세난에서도 빠져버린

이제 별 볼 것조차 없는 내 나이라면

정신만이 또렷한 기억력이 더 부담스러워져

지나간 시절과 지금의 고통이

그냥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이

내 나머지 인생이라면

아-하고 아무런 욕심없이

미련없이

한번 크게 소리지르고

가슴 시원하게 뚫어놓고

이제 갈 수만 있다면

긴 여행 떠나고 싶다

 

앞날을 알 수없는 깜깜한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어린 살붙이에게

매일매일 눈물로 살아갈 방법을 가르치려니

자꾸 어두워 침침해지는 내 시력을 붙잡고

안간 힘을 쓰는 내 꼴이 밉다 밉다

 

마음 약한 애비가

굳세게 살아야한다고

남과 나누며 살아가라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다짐하는 애를 보면

어느 새 내 볼을 어루만지는

그 작은 손이 언젠가는 나를

몹시 그리워하리라는 상상에

내가 또 밉다.   

 

 

♧ 장마 - 김종제

 

한 사나흘

바람 불고 비만 내려라

꿈결에서도 찾아와

창문 흔들면서

내안에 물 흘러가는 소리 들려라

햇빛 맑은 날 많았으니

아침부터 흐려지고 비 내린다고

세상이 전부 어두워지겠느냐

저렇게 밖에 나와 서 있는 것들

축축하게 젖는다고

어디 갖다 버리기야 하겠느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에게 다 젖고 싶은

그 한 사람이 내게는 없구나

문 열고 나가

몸 맡길 용기도 없는 게지

아니 내가 장마였을 게다

나로 인해

아침부터 날 어두워진 것들

적지 않았을 테고

나 때문에 눈물로 젖은 것들

셀 수 없었으리라

깊은 물속을 걸어가려니

발걸음 떼기가 그리 쉽지 않았겠지

바싹 달라붙은 마음으로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졌을 거고

그러하니 평생 줄 사랑을

한 사나흘

장마처럼 그대에게 내릴 테니

속까지 다 젖어 보자는 거다

 

 

 

♧ 긴 장마 - 목필균

 

산에 가려는데 발이 묶였다. 비안개 가득한 하늘에 꾸역꾸

역 밀려오는 상실감, 발 묶일 일이야 어디 비뿐이랴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그리움의 저 편, 창문 가득 몰려드는

인기척들. 차마 말하지 못할 그 많은 이야기들, 부옇게 흐려

진 창안에 가두어 놓고 소리 없이 내려놓는 마음에 짐 하나.

다 접어두지 못하는 내 안의 흑백 사진들

 

가지 못한 산 속에 몸 불은 계곡물 소리로 들려오는 그대

의 목소리가 온종일 나를 서성거리게 한다   

 

 

♧ 장맛비. 1 - 홍경임

 

꺼져가는 내 영혼을 부르는 소리있어

 

그제는 장맛비를 마중하며

북한강과 남한강이 상봉하는

꿈속에서만 키워오던

내 마음의 고향 양수리에 갔습니다

 

어제는 연일 내리는 장맛비에도

메말라 붙은 한 줌 내 마음 적시어주려

내 몸 같은 그이는 나를 태우고

강변마을 샛터를 몇 번인가 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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