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헬기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돌아본 후,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갔는데,
방 파트너가 그새 참지 못하고 사진기를 들고 나선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허름하게 차린 채로 나도 따라 나섰는데,
벌써 10분쯤의 거리에서 미국 측 폭포가 나타난다.
첫 대면의 설렘도 잠시,
마구 셔터를 누르며 강변을 따라 캐나다 폭포 쪽으로
가면서 양쪽을 번갈아 찍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몸이 한기를 느끼며 으스스 춥다.
여기가 어디인가.
우리로 치면 백두산 북쪽 연변쯤의 북위 42~3도의 4월 중순이다.
아직도 얼음이 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곳은 5월부터가 봄이란 것이 이해가 된다.
폭포의 끝을 넘어 갔다가 돌아오는데
70여 명이나 되는 동행인들이 아무도 안 보여
시간을 보니 7시15분.
8시부터 폭포에 오색불이 들어온다는데,
들어갔다 나올 수는 없고, 조금 서 있으려니
서서히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일행도 보여 다시 사진을 찍는다.
아직도 어둠은 깊지 않고 불은 완전히 들어오지 않아 망서리다
반대 편 건물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는 게 너무 고와
그쪽으로 시선이 간다.
카메라 조작 없이 몇 커트를 찍고 돌아서서
다시 폭포를 찍은 후,
돌아오는 길에 건진 것들이다.
♧ 그대 없는 밤 - 임영준
여기는 미국과 캐나다 접경
어느 외진 시골마을입니다
사나흘 퍼붓던 눈보라도 잦아들고
잔뜩 찌푸렸던 하늘도
혼곤한 밤에 다소곳 안겼습니다
통나무집 넓은 창 너머에선
매서운 바람에도 스트로브잣나무들이
야릇한 미소를 던지고 있는데
이 천혜의 순간을 함께 하고픈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달콤한 숨결 나긋한 실루엣
사고를 마비시키던 그 촉감들을
철없던 시절의 한 갈피로
도저히 그냥 덮어버릴 수는 없었는데
마침 이런 애 마르는 시간이 오니
그대를 헤아리고 또 헤아리게 됩니다
그러다 어차피
홀로 지새울 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대를 꼬옥 품어 안고
활활 타올라버리고 말아야겠습니다
♧ 못 잊을 야경(夜景) - 김경배
-아련한 기억 하나
일부러 저녁시간 넘겨 늦으막 종점에서부터 걸어 올라야 할 언덕배기,
매일 수 헤아리던 높고 꽤 넓은 계단 일 백 하고도 더 얼마를 지쳐서 끝내면
다시 골목길 몇 구불구불 좁은 계단 또 이십 여 개 오르는 산동네,
대문 앞으로는 시야 툭 트인 후암동의 허름하던 양옥 문간방 한 칸에
눅눅한 다다미의 신혼 살림방에 느닷없이 얹혀 살던 어렵던 시절 있었네.
새벽녘 눈 바삐 비벼 내려가고 늦은 밤 쭈뼛쭈뼛 허기져 오르던 계단에서
여린 마음 숫자로 달래가며 단칸 신혼 방에 눈치 잠재우며 살았나니...
그때는 높기만 하던 산동네라 삼십 여 년 지난 지금 엉거주춤 더듬으니
그래도 늘 아리던 기억 귀퉁이 정경(情景) 하나는 각인으로 남았다네.
피곤한 어둠 내리면 발치아래 종점 멀리 한강 건너까지 점점이 깔리는
어둠 속 영롱한 유리구슬 같은 찬란한 빛들 청승 떨며 혼자 굴려가는 밤이면
현란하다 못해 눈에 시리도록 예서 제서 오목조목 아롱다롱 초롱초롱한데
괜한 서글픔 눈가에 물기 어리면 더욱 눈에 겹쳐지는 휘황한 불빛들,
작은 구슬 되어 볼 위로 구르고 아스라한 불빛들 더욱 반짝거려 눈에 박히던
산동네 애틋한 정경이어 이제껏 눈에 아리던 못 잊을 야경(夜景)이었구나.
♧ 야경 - 정성수(丁成秀)
금빛 열쇠를 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몰래
지구 밖으로 떠나가고
집집마다 묵은 문패가 떨어지고
도회지 언덕 교회당이 울리는
마지막 종소리
수많은 비둘기떼가
가난한 사람들의 지붕 위로
헬리콥터 편대처럼 내려앉는 것을
나는 보았네.
♧ 야경 - 운봉 김경렬
땅거미가 찾아오는 골목길 휘감는 바람처럼
해 떨어진 해바라기마냥 고개 숙이고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흔들리는 추억들.
마주한 술잔 속에 눈물로 떨어진다.
허름한 사랑이었어도 지난날에는 주연이었지
이 세상 다 가진 것만큼
이제는 점점이 멀어지는 사랑이여
내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이 야경을 헤매는데
뜨거웠던 내 사랑 어느 창가를 맴돌까?
은하수 같은 사연은 저리도 많은데
달빛이 주인 되어 흔들리는 거리에서
주연이었던 옛 사연 찾아 야경 속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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