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사랑 시집 ‘적막 한 채’와 백합

김창집 2015. 6. 17. 08:28

 

다시올 출판사에서

이사랑 시집 ‘적막 한 채’가 나왔다.

 

이사랑 시인은

전주 출생으로

계간 ‘다시올 문학’으로 등단하여

수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나호열 시인이 해설을 쓴

이 시집은

4부로 나누어 71편의 시를 싣고 있다.

 

그 중 몇 편을 옮겨

요즘 한창 피고 있는 백합을 곁들인다.

 

 

[시인의 말] 무값

 

무의 값이 아닌 무값

내 시가 그렇다!

밑천 안 들이고 받아쓰기 한

내 시집은 값이 없다

그래서, 0원 영원이다

   

 

♧ 적막 한 채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고요가 움트는 신생의 시간

가위로 어둠을 오려냈더니

거기 적막 한 채 보인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규격이나 틀도 모르고

거침없이 형식을 파계하고

석 달 열흘, 무엇에 홀린 듯

 

적막강산에 지은, 시의 집

적막 한 채!

   

 

♧ 자신

 

몸을 신으로 모시고 사는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자신을 믿고 사는 나는

내 몸이 신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라며

하느님이 ‘까불지 마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은

잡신 축에도 못 끼는…

   

 

♧ 간을 보다

 

새 학년 새 학기로 올라간 아이들

먼저 선생님 간을 본다고 한다

 

간 잘 맞는 부부가 맛있게 잘 살 듯이

친구도 간이 맞아야 맛있는 친구다

 

신선한 재료에 양념을 듬뿍 넣어도

간 안 맞으면 맛없는 음식처럼

시도 그렇다

 

누군가 지금 내 시의 간을 보고 있다

짠가? 싱거운가?

   

 

♧ 너에게 가는 길

 

사막에서 낙타는 한 그루 나무다

 

나그네가

나무 그늘에 기대어 생각한다

 

추상적 사랑이라는 신기루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만큼

외로울 때가 또 있을까?

 

나무와 걸어가는 사막에

모래바람이 분다

 

너를 찾아가는 길

참, 멀다!

   

 

♧ 내 가슴에 샘 하나 있다

 

눈물을 길어

밥을 짓고 시를 짓는다

 

그 샘은

 

고요를 숙성시키는 침묵의 샘물

수천 미터 지하 암반수

퍼내면 퍼낼수록 샘 솟는

 

가슴의 샘

 

어둠을 길어 올리면 달이 올라오고

적막을 길어 올리면 별이 올라오고

그리움을 길어 올리면 한 두레박

 

눈물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