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9월호와 제주상사화

김창집 2015. 8. 29. 20:33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詩> 9월호가 나왔다.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에서 발간한 통권 327호의 주요 목차를 소개하며,

시 몇 편을 옮겨 어제 찍은 제주상사화와 같이 올린다.

 

*권두 에세이 : 강동수 ‘행복-생각의 반전’

*신작詩 16인 選 : 허형만 김영호 도경희 전다형 이애정 박승류 이종섶 임미리 황경순

                         박병대 신단향 이병달 한효정 방화선 이정희 김유진의 시 각각 2편

*추모 특집 - 백숙천 : 임보 - 추모의 글, 백숙천 - 비둘기 구구구 외 9편

*특별기획 연재시詩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시편(16)’

*기획연재 - 인물시詩 : 이인평 ‘인물시 詩(9)’

*테마가 있는 소시집 : 장성호 ‘아버지의 꿈’ 외 9편

*시인이 읽는 시 : 나병춘 ‘여행지에서 만난 시편들’

                        김희정 ‘시인 할래, 농부 할래 - 주용일 편’

                        마경덕 ‘속도와 속도 사이에서’

*한시한담 : 조영임 ‘영동의 시인 국당 박흥생朴興生’

*양선규의 ‘인문학 스프’ : ‘공간의 구성’

*수필 산책 : 홍예영 ‘도시, 그해 여름’

                  이재부 ‘추석 상경기上京記’

 

 

♧ 개구리 소리들 - 허형만

 

밤은 깊어가고

개구리들

미얀마어로 일제히 소리 지른다

나는 미얀마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한국어로 밤이 깊었다고

그러니 좀 조용히 하자고 말했다

순간, 알아들은 듯 희한하게

뚝, 그치는가 싶더니

웬걸, 이제는 한술 더 떠

버마어로 더 크게 소리 지른다

밤은 깊어가고

개구리들

소리소리 지상에 별빛처럼 낭자하다

 

 

♧ 잡아 내린다 - 김영호

 

속옷까지 벗으라 한다 바다는

나무처럼 풀처럼 다 벗으라 한다.

 

여기선 내려놓으라 한다 바다는

목을 조이는 멜랑콜리를.

 

바다는 저만큼 해송의 바다를 잡아내린다.

 

나의 사람아,

그대 등에서 나를 내려놓아 다오.

   

 

♧ 다리 - 도경희

 

시월 상달이다

줄지어 선 잘 익은 꽈리들

펑펑 공중 폭파하는 몸 저리 밝으니

내 숨겨둔 죄 이리도 환하구나

앞산 밤새들

성급히 고름 풀고 물길 건너간다

득달같이 쫓아오는 그리움

한정없이 뒤척이는 꿈

무쇠 낫을 벼리어

고단한 생활 속 깊숙이 찾아와 울던

떼 울음 베어

하늘에 징검다리

길을 낸다

 

 

♧ 시간 앞에서 - 이애정

 

닫고 있는 너

이젠 돌아봄은 없겠지

 

아직 할 말이

듣고 싶은 말

나눌 말도

많이 남아 있는데

 

좁혀지지 않는

너와의 거리

 

얼마나 더 흘러야

저 문을 열어

나를 볼까

 

너 없는 세상

나도 가고

내 안에 있는 너

너 밖의 나 

 

 

♧ 아중호湖 - 황경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바이러스가 퍼렇게 꿈틀댄다

 

청둥오리 쇠물닭 낳아 기르는

그녀, 오늘도 분만중이다

 

억세어진 물갈퀴가 가르어도

찢어지지 않는 가슴팍

 

생살을 찢고 나온 물푸레가

어깨를 그러모아 그림자를 품어 안는다

 

백신도 막지 못하는 출산 바이러스

 

사철 마르지 않는 물푸레 빛 양수

물주름 겹겹이지만 결코 늙지 않는

그녀의 자궁

 

골짜기를 드러내지 않는 저수의 숲에서

풍덩, 홀로 깊어간다

 

 

♧ 내가 꽃이었다 - 백숙천

 

꿈인데요

내 살던 건물 옥탑에

깃발 나부끼고 있었어요

가까이 보니 엉겅퀴꽃 붉은 나래

내 영혼이었어요

 

꽃향기에 취했어요

 

옥빛 바람 속

꽃들이 저마다

몽오리 몽오리 피어나는 밤

 

꽃이 된 내 영혼을 지켜보았어요.

   

 

♧ 봄날 한때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 154

 

눈부신 봄날 한때

 

그만 됐다 해도

또 우는 새

 

꽃 지는데도 연습이 필요한가

 

그만 됐다 해도

또 지는 꽃

 

가는데도 연습이 필요한가

자발없다

 

쓰디쓴 나의 봄날.

이미 어른아이가 된 아내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천방지방입니다.

   

 

♧ 꽃과 함께 식사 - 주용일

 

며칠 전 물가를 지나다가

좀 이르게 핀 쑥부쟁이 한 가지

죄스럽게 꺾어왔다

그 여자를 꺾은 손길처럼

외로움 때문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홀로 사는 식탁에 꽂아놓고

날마다 꽃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안 피었던 꽃이 조금씩 피어나며

유리컵 속 물이 줄어드는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

둥글고 노란 꽃판도

보라색 꽃이파리도 맑아서 눈부시다

꽃이 식탁에 앉고서부터

나의 식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외로움으로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함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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