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최기종 시 '별 이야기' 외 4편

김창집 2021. 3. 19. 01:20

 

별 이야기

 

어릴 적

바람만 불어도

앙앙 울어대는 날 보고

할매는

아이쿠! 아까운 보석 다 쏟아진당게

벌써 한 됫박은 빠졌것다

하늘의 별들 다 도망가니께

어서, 울음 뚝

 

큰집의 우물 속 들여다보면

하늘의 별들 많이도 떴다

할매는

종조부가 우물 팔 때

별들이 많이 내린 곳에

우물자리 잡아서 그런다고 했다

 

엄니는 밤마다

두레박 길게 내려서

그 별들 찰방찰방 퍼 올려서

머리도 감고 밥도 짓고 소지도 했다

그때 엄니의 머릿결 고운 것이며

마루나 살강이며 솥단지가 번쩍거리고

고봉밥에서 별들이 튀는 게 모두

우물의 별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니는

우리 집 보석은 라고 한다

내 눈 속에 우물이 산다고

눈만 껌벅거려도

봉선화 씨앗이 쏟아진다고

내가 어린 별들을 키우는

하늘의 은하수라고 했다

 

 

복옷

 

이제 어머니

걱정이란 걱정 버리고

이승의 끈 놓았는가?

허물이란 허물 벗으시고

곱디고운 복옷 입었을까?

칠성판에 누워

악수 끼고 버선 신고

속속곳 겹바지 너른바지 입고

속적삼 분홍 속저고리 입고

겉치마 입고 겹저고리 입고

습신 신고서

 

이제 어머니

기쁨이란 기쁨 지우더니

()으로 고치 집 지었는가?

눈물이란 눈물 말라져서 푸른 하늘 올려보는가?

 

여기 세상

웃음이란 웃음 다 버리더니

소원이란 소원 다 물리더니

새봄이면 다시 온다고

팔랑나비처럼 날아가는가?

 

 

시래기

 

다발무 다듬어서

누렇게 시든 진잎들

찜통에 넣고 데치니

주방이 온통 그 냄새다

 

예전에 어머니도

저런 진잎 데쳐서

응달에다 숭숭 널어서

아침 국거리 내었지

 

처음에는 이것들

정정한 무청이었을 것이다

어린 싹수들 살린다고

비루먹었을까?

그것들 좋이 밑들게 헌다고

그 몸 내어주고 시름시름 앓았을까?

 

이리도 군내 나고

누렇게 얼근 겉대도 추려서

잉걸불 댕기면

구수한 옛날이 되는 걸일까?

죽어서도 주린 속 뎁혀주는

어머니,

 

 

닭은 죽어서 달을 남긴다

 

  어릴 적 비오는 날이었다.

  아버지 씨암탉 잡아와서 그 모가지 콱 비틀었다. 그게 한참을 버둥거리다가 길게 뻐드러진다. 아버지는 닭털 박박 뜯어내고 잔털도 꼬시른다고 군불까지 피웠다. 그런데 그 사이 그게 화다닥 도망치는 것이었다.

  “아부지, 꼬꼬! 꼬꼬!”

  “! 아니?”

  아버지 황급히 쫓아나간다. 그게 되게 웃겼다. 털 하나 없는 그게 날갯죽지 퍼덕거리면서 필사적이다. 하지만 대밭언덕 무렵에서 꽉 잡혔다. 살려달라고 꽉꽉 울어댄다.

  “아부지, 꼬꼬가 불쌍해에

  “이놈아! 이젠 살아도 못 살아.”

  결국 닭은 돌아가시고 잔털도 꼬실려졌다.

  그것의 깊은 하늘에는 노란 알들이 줄줄이 슬어 있었다. 닭은 죽어서 달을 남기는 것인지.

 

 

신불산 꽃사슴 - 최기종

 

신불산 사슴농장에 가면

떡갈나무 그늘 아래

꽃사슴들이 천천히

내게로 모여든다

안녕하냐고 반갑다고

우러러 눈쏠림한다

 

나야 우쭐해져서

뭐라고 저라고 말짓거리도 하고

흔드렁 건드렁 몸짓도 하는데

그것들 어떻게 아는지

스펀지처럼 잘도 받아들인다

귀 세우고 붉어져서

움직거림 하나 놓치지 않는다

 

나야 멋쩍어서

떡갈나무 이파리 하나 둘 따서는

이리공 저리공 던져 줄 뿐인데도

키잡이 마술사가 다 되었다

두려운 이야기꾼이 되어서

신불에 사나 신불에 사나

 

돌아오는 길에

내 손에서는

문득

떡갈나무 냄새가 났다

 

 

                     #  최기종 시집 목포, 에말이요(푸른사상, 2020)에서

                                    # 사진 : 물 오른 버드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