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들(2)

김창집 2021. 6. 13. 12:22

달을 타고 삐걱삐걱 - 정재원

 

정박해 있는 물비늘 고운 배

 

저 커다란 달

한 번은 차고 한 번은 비고

 

절망과 희망이 묶여버려

허기 속으로만 흐르던 내 도랑물

 

너를 잘 기르려고 싸우다 참방대는 너를 건드리며 나는 울었고

 

스치는 곳마다 생겨나는 포말의 기록들

 

얼마 전 물빛은 스스로 통증이 아름다워서

달 앞에 무릎 꿇어야 했다

 

자주 오가던 바닷가 파도 위에 앉아

밀물지는 눈을 씻었다

 

낙화암 - 김종욱

 

목숨의 무게는

시대보다 가볍고

생존보다 무겁다

 

그 무게와 대결하는

절벽의 바위가 되어야 한다

 

이끼 낀 바위는 청동 거울처럼 투명해져서

희미하고 오래된 형상을 비추고

그림자가 없는 세계로 향하는 문이 된다

 

청록빛으로 녹이 낀 거울 터널을 지나면

강인지 바람인지

백마의 갈기처럼 휘날리는

시공간의 망각이 펼쳐진다

 

거기에 너는 살고 있다

 

붉은 빛줄기로 쏟아지는 머릿결

푸른 숲 우거진 깊은 눈동자

상반신은 폭설 내리는 흰 피부

하반신은 푸른얼음 비늘로 뒤덮인 너

 

네가 헤엄칠 때는

새싹 돋는 소리 낙엽 쓸리는 소리

태양이 이글거리는 소리 하며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도 들린다

 

사실 그림자의 어둠 속에서

너를 흠모하며 두려워하고 있다

목숨의 무게는 그림자 속의 깊이로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

 

모른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빛나는 혼현 속에서

나의 사랑과 죽음을 미끼로 던지고 너를 탐할 뿐이다

 

그리고 너의 역린에 입 맞춰야 한다

네가 점점 옅어지는 계절이 되도록

 

너는 이런 나를 알면서도 내게로 오고 있다

나는 너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네 몸짓은 완벽한 언어

 

나도 그림자를 벗고 너와 함께이고 싶다

 

시대보다 무겁고

생존보다 가벼운

 

네가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달이 차고 기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괴롭다

 

환승換乘 - 이규홍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가는 길

단말기에 카드를 대자

환승이라는 말이 따라 나온다

그래, 내 삶의 반환점

참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아버지 어머니도 먼 길 가실 때

마을 외딴 곳집에 들러

꽃상여를 타고 떠나셨지

바람처럼 휑하니 사라지는

순간의 소멸이 아니라

느릿느릿한 속도로 걸어가는

꽃상여를 택하셨지

종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 버스는

상여처럼 아늑하기도 하다

돌고 돌아가는

환승버스 안에서 잠시

내게 남은 생을 꺼내어 본다

 

여백 정봉기

 

내가 누린

, , 핏줄을 내려놓으니

눈앞에 하늘이 열린다.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나는 작은 정물이다.

 

나이가 들어

나이에 맞게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여백을 넓히는 일이다.

 

사계절 중 겨울이 주는 풍경이다.

 

앞니가 두 개 - 박성일

 

아기가 웃는다.

할미와 나들이 나온 공원길

나비 보며 손짓하다

입을 동그랗게 하품하듯 웃는다

뽀얀 젖니가 두 개

 

길옆 며느리밥풀꽃이 웃는다

흰나비 날갯짓에

발개진 볼이 홀로 부끄러워

살포시 웃는다

밥풀 닮은 앞니가 두 개

 

할미도 웃는다

느티나무 그늘에 다리를 쉬며

스르르 눈을 감는 아기를 보고

소리 없이 웃는다

남아있는 앞니가 달랑 두 개

 

지구와 나 송용구

 

나의 몸은

지구의 흙

 

나의 머리카락은

지구의 풀

 

나의 눈망울은

하늘을 비추는

지구의 물

 

나의 코는

만물의 숨결이 왕래하는

지구의 길

 

형이상학의 나무 윤형돈

 

변방의 빈 벌판에

세 그루 나무 서 있다

우듬지엔 까치집 하나

들어 살고 있는지

궁극을 향해 손짓하는

메타세콰이어,

형이상학의 나무가

초록의 생을 전송하는데

손아귀에 포획하는 것은

손아귀에 포획한 것은

도저한 아픔이 서린,

으깨진 몸에서 끈적이는

샛노란 즙액의 이데아.

 

 

                                        * 월간 우리202106396호에서

                                        * 사진 : 솔잎도라지(2021.6.11. 방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