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자도
여름 끝 추자도는
입 안 가득 단내 고였다
누군가 내려놓은
배낭 속 오랜 기억처럼
한 번 더
발 내디뎌야 할 곡진함이 절로 일 듯
해안 길도, 산길도
물살에 묻혔다 여는
큰 여 앞 건너뛰는 조약돌의 물수제비도
언제나 심해 그 자리
발 딛는 일이였을
더 이상 내게로 오지 않는 저 바위섬
파도치는 절벽에
하얗게 글썽이는
어머니
짜디짠 생으로
망초꽃을 피운다
♧ 가파도
모슬포항 비릿함에 젖어야 이르는 곳
그리움도 질긴 인연도 여간해선 못 들이는
지금껏 쌓던 탑마저 슬며시 놓아야 하네
포제단 숨비기꽃이 자맥질하는 시각엔
누군가 대신해서 치렀을 제의인 듯
사방에 별빛이 내려 눈을 뜰 수 없었네
끝내 쫓아와 놓아주지 않던 바닷새 울음
바다식당 여주인 낭창낭창 밥 주문하라는
그 어떤, 언약보다도 나를 깨우는 시장기
♧ 내 한라산
말하리 그 슬픔의, 그 눈빛도 말하리
조립식 빨래대 마디마디 휘는 눈발
알오름 줄줄이 엮어 밤새껏 지척이던
마지막 저 징소리, 울림 같은 네 탄생은
발 먼저 세상에 딛고 중심을 잡았다
첫 눈발 휘청거렸을 제주 바다 그 핏빛에
등 돌리면 떠나리 사월의 이야기는
활시위 당기듯이 바다를 당기는 달아
한라산, 그 물음 앞에 섬으로 앉아 있다
♧ 우포늪
1
소처럼 돌아누운 그대 등을 밟고서야,
늪으로만 깊어지는 유월을 보았다
창포에 머리 풀었던,
그녀 다시 만났다
2
초여름 아득한 지평 다 못 전한 안부처럼
왜 그냥 가냐며, 감기는 환삼덩굴
떼내도 달라붙는다
차마 못 보내는 애인처럼
♧ 길상사 능소화
외진 도량
별채 꽃들
법문에 귀기울여
극락전 먼발치서
담장 넘는 절 공양
큰 스님
차마 못 뵈네
뙤약볕에 붉게 타네
♧ 울릉도 땅나리
소금기 밴
칠월 볕에
묵묵히 고개 숙여
언덕배기 빙 둘러
한 뼘 한 뼘
내려선
함부로
울지도 않는
동해 바다 붉은 섬
*김윤숙 현대시조 100인선 21 '봄은 집을 멀리 돌아가게 하고(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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