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워서 그랬나?
어젯밤은 눈 덮인 히말라야에서 길을 잃고 산골짜기를 헤매다 깼다.
원정 산행이랍시고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택해 거반쯤 오르고,
설산은 한라산 정도 올라 몇 번 눈에 푹푹 빠지며 걸어봤지만,
이른바 프로 중에 프로나 가는 해외등반은 꿈도 못 꿔 봤는데….
히말라야의 주요 산은 네팔의 카트만두에 가 멀리서 볼 수 있다 하나
제대로 사진 찍으러 가자면, 2주 이상 걸린다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안나푸르나 서킷 정도는 가야 하니까
도저히 어불성설이고….
코로나가 풀리고 전처럼 자유로이 돌아다니게 되면,
지금 나이나 능력으로 보아 카트만두와 라싸를 거치는
네팔 여행이나 꿈꿔 볼까?
♧ 룽다* - 권경업
설산雪山 히말라야 사람들은
부처님 말씀을 정성껏 따릅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면서
그 말씀 전해 듣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높다라니 룽다를 내어 겁니다.
룽다는, 부처님 말씀을 판본板本으로 찍어
솟대 끝에 매달은 오색의 깃발입니다.
바람이 불적마다 룽다는 펄럭이고
펄럭일 때마다 자비로운 말씀은
바람에 실려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
마음마저 가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까지
그리하여 뭇 중생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세상 온통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하게 되라는,
어질고 착한 히말라야 사람들의 원願입니다.
한없이 하늘 맑은 이 가을 아침
아름다운 이의 글을 따라
대원사로 발길 옮기다가, 문득
바람 부는 내 가슴 깊은 곳에
깃발 하나 내어걸었습니다
무서리에 젖어, 혹 펄럭이지 않을 깃발 하나
솟대 끝에 내걸었습니다.
기러기 날아 가버린 솟대 끝에 내걸었습니다.
자꾸만 사위어가는 계절의 모퉁이
가여운 영혼 오도카니 있음을 알리는
흔들어 애타는 깃발 하나 바람 앞에 내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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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룽다 : '바람의 말'이라는 뜻의 티베트어
♧ 풍마風馬 - 김혜천
오색 룽다를 내어 걸어요
말씀은 바람에 실려 보내요
마음마저 닿을 수 없는 먼 곳을 향해 펄럭여요
청정하고 끈질긴 사람들의 원願을 따라 걷는 길
장대 끝에 깃발을 달아요
장대 끝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바라보며 가만히 두 손 모으면
원인 모를 말간 눈물
쌓아두었던 돌무더기는 무너지고
어머니가 흰 죽을 쑤어 놓고 기다리는 베이스캠프
좀 더 단단히 조여매고 걷는 길
운무로 덮인 저 산 위에 무엇이 있을까
알지 못해 오르는 길
단단히 부여잡은 모퉁이에
룽다를 걸고
오늘도 히말라야를 오른다
♧ 적요의 밤 - 임보
적요의 밤
내 등이 가렵다
히말라야의 어느 설산에
눈사태가 나는가 보다
적요의 밤
귀가 가렵다
남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거센 파도가 이는가 보다
적요의 밤
잠이 오지 않는다
내 은하계의 어느 행성에
오색의 운석들이 떨어지고 있나 보다
적요의 밤
어디선가 밀려오는 향훈…
내가 떠나왔던 아득한 전생의 종루에서
누군가 지금 종을 울리고 있나 보다
♧ 하느님의 부채 - 장철문
백 년 만의 무더위라던 올 여름은
히말라야에 눈이 많이 와서
전에 없이 시원할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하느님은 그 먼 히말라야에 계셔서
당신의 부채 바람이 여기까지 불어오는 것이다
바람의 날개가 티베트 일대 산록을 이륙해서
서역을 지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지나
백두대간 언저리까지 그늘을 드리우며
동해로 빠진다는 것인데,
하루에 구만리를 간다는 대붕의 날개도
거기 대면 애걔걔,
겨우 소리개 날개쯤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눈의 집이라는 히말라야의 곳간이 얼마나 찬 것인지는 몰라도
그 하느님의 곡식이
죽부인도 되고
무좀 걸린 발을 씻는 여울도 되고 참!
당신의 부채가 도무지 맘먹고 장만한 에어컨쯤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나 아닌지 좀 불안하기는 해도
하여간, 말만 들어도 시원하기는 무진장 시원한 것이어서
당신의 그 서슬 푸른 흰 살이
바람도 되고
풍류도 되고
거울도 되어서
올 여름에는 내가 살아온 가벼운 내력이나 그 바람에 비춰봐야겠다
♧ 인동의 꽃 - 김윤자
봄 햇살에 움돋이한 나의 싹
숙망의 몽우리 맺으려 애끓는데
아직은 여린 나의 몸.
짙은 초록빛이 돌 때까지는
사바나 초원
풍성한 식탁 앞 게으른 들짐승보다
포르티시모로 히말라야 산맥
숨 가쁘게 차오르는
독수리의 고뇌를 먼저 배우고 싶다.
그 맹금의 탈 속에
나의 몸 몰아넣고 시베리아 동토로 간다.
미지근한 땅에서 키운 발바닥으로는
철지나 솟아오른 꽃대 받칠 수 없어
툰드라 설원
칼날 선 눈발 위 펭귄 걸음을 좇는다.
걷기도 전 날으려는 두 날개
언 가슴으로 끌어안고 가는
고행의 길, 나는 지금 행복하다.
북극점 빙벽이
보드라운 솜벽으로 보일 때까지 걸어
여명의 하늘 열리면
나의 속살 여물어
인동의 꽃으로 피어나리.
그 때 화포 안 꽃자리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들어서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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