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인의 '소주' 시편과 나무

김창집 2022. 8. 7. 00:01

 

너는, 나에게 독한 소주였다

 

 

알코올 중독

 

길지 않은 단 한 번의 입맞춤으로

네 맑은 영혼 쓰디쓰게

내 빈 가슴에 쏟아 붓고

괴롭다며 발버둥치다가도

이내 그립다며

다시 네 차가운 입술 목말라 찾는,

 

나는 너에게 중독되었다

 

 

 

나는 오늘도 너를 마시고 싶다

 

 

몽롱한 비취빛, 매끄러운

네 살결을 탐해서가 아니다

긴 목으로부터 흘러내린, 부드러운

가슴 선의 아름다움에 혹해서도 아니다

기울여도 평정을 유지하고

출렁이다가도 갈앉는

맑디맑은 내 영혼에 흠뻑 취하여

탁한 나를 쓰려뜨려야 한다

 

내 작은 잔에, 오늘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쏟아 부은,

빈 가슴에 머리 기대어

먼 취밭목 솔바람 소리 듣고 싶다, 소주

참 진풀꽃 이슬 같은

 

 

 

환절기 독감에 대한 처방전

 

 

가슴 답답하여 말은 하고 싶으나 목이 잠기고

시도 때도 없이 미열은 일어, 정신은 멍하니

걸음은 자꾸 허방을 짚는 듯 허정이고

신열이 도지는 한밤중, 식은땀에

냉수를 연거푸 들이켜도 갈증 가시지 않는다 하니

아마 예전에도 앓아본 경험이 있는

그리움이라는 환절기 독감이 심하군요

 

여기 소주(또는 약주) 몇 병을 처방할 테니

11회 퇴근 직후 30분부터

한 병을 일곱 잔으로 나누어 마시세요

그리고 3일 후에 다시 오세요, ! 다음 환자분!

   

 

 

세월 저편 두고 온 이별

 

 

알게 모르게 조개골 조금씩 푸르르고

물소리 한층 목청을 돋우었다

상수리 숲 땅거미 종종대며 내려간 뒤

문득, 소소리 바람에 실려오는

세월 저편 두고 온 이별 하나

혼자 마신 몇 잔의 소주 목에 걸리누나

 

형제 침봉針峰 고스란히 남겨 둔

아직 한창일 사람아

숨죽여 찾아 간 그곳

오를 산이 없다면 다시 돌아오라

골 깊은 장당골 동고비도

돌아와 둥지를 틀었다

 

동강 난 이 땅의 산행이지만

나와 그대의 해 질 무렵은

온 산 불 지르는 단풍이려니

 

가슴 들끓이던 어린 날

늘상 어깨동무로 오르던 신밭꼴

지금 몽실몽실 달 뜨고

탱자 울 안 능금꽃은 부풀어 부풀어

 

 

 

한없이 투명한 너를 두고

 

 

한없이 투명한 너를 두고, 허다히

허기진 몸에는 독이라 말하지만

시인의 타는 갈증에는

쉼 없이 샘솟게 하는 시심詩心의 샘이다

낡은 TV의 노이즈현상 같은 먼 기억 속

견딜 수 없이 몰아치던 사춘기 존재의 불안감에

차라리 황량한 모래바람의 텍사스로 가겠다며

늦은 미아리 행 버스를 탈 때도 그랬지만

너로 하여 간덩이 부은 놈 소릴 듣는다 해도

나는 너를 마실 것이며

덕지덕지, 때 엉겨 붙은 내 영혼을

입동을 며칠 앞둔, 저 쑥밭재

잿마루처럼 씻어내고 싶다

 

! 진정, 나의 산 같은 소주여! 소주 같은 산이여!

참 진, 이슬 로露, 참 , 이슬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