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2)

김창집 2022. 11. 5. 01:23

 

쓸데없는 공부 - 김대용

 

 

매주 휴일이면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이제는 매일 휴일이므로 매일 버려야 한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고 쌓아둔 것들이 많다

쉬 버릴 수 없는 것들 쓸데없는 것들이 어디 있냐고

버티던 의복은 제일 쓸모없는 것들이다

아직도 입을 만한데 유행에 쳐진 것들이나

그들 중 부피가 큰 겨울옷은 더욱 그렇다

추위가 오면 입어냐지 그런데 어딜 가려고

항상 생각이 짧았다 안 쓰는 물건들 모아

아름다운 가게에도 몇 짐 부리고 나서도

이제는 정말로 무거운 책들이 많이 남았다

이것들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내 청춘의 밑줄

그어진 책들 가슴으로 스며든

녹슨 가래 같은 한글이 아니므로 더욱이

아랍어로 된 이 묵힌 것들을 어떻게 할까

하루살이 신문 월세 내는 월간지 그리고 정년이 된

전공서적은 버린다.

그리고 나에게 보내준 시집들은 그냥 두기로 한다.

 

 

 

순종 - 김순선

 

 

당기세요.

 

우린 참 불편한 관계다

내가 가까이 가는 것을 거부하듯

그대의 무게가 나를 자꾸

밀어낸다

 

여기까지 용기를 내어 찾아왔는데

거절 아닌 거절 같은

한 발 뒤로 물러서라니

그렇다고 그대가 내게로 걸어오겠다는

약속도 아니면서

 

그래도

당기세요

댄스를 신청하듯

공손히 예의를 갖춰

오른발을 사뿐히 뒤로

무릎 굽히면서

투명한 사각하늘을 향하여

구름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춤을 추듯

 

당기세요.

 

우린 참 불편한 관계다

내가 그대에게 가는 길이

더 멀어진 듯

 

 

 

광주 김승립

 

 

매맞은 땅, 매맞은 도시

매맞은 하늘, 매맞은 바람, 매맞은 빗방울

매맞은 꽃나무, 그리고 매맞은사람들

아무런 잘못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시민이라는 이유로, 그냥 살아 있다는 이유로

땅 위를 걸어가는 이유로

그냥 주먹밥을 나눠줬다는 이유로

자유를, 민주주의를, 최소한의 권리를 외쳤다는 이유로

무참히 총검에 찢긴 땅, 십자가에 꽝! ! 못 박힌 땅

맞아죽은 사람들이 피가 하늘에 땅에

나무에 바람에 비릿하게 새겨져 있는데

아직도 빨갱이니 폭도니 불순분자니

애초부터 반역의 땅이니

밀도 아닌 말로 낙인찍힌 땅

되도 않는 말로 핍박 받는 땅

그리고 언제 멈출지 모르는 피울음을

가슴에 끅끅 새겨

살아가는사람들

 

 

 

공황장애 김원욱

 

 

   벌렁거린다고? 두근거린다고? 가끔 그렇게 스러지다가 공중으로 휙휙 날아다닐 때 웅성거리는 거친 기억 알갱이 뚝뚝 떨구는 정신의 저쪽 초신성처럼 타올라서 막다른 골목에서 바라보는 가뭇없는 블랙홀, 시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왁왁한 한쪽은 늘 그렇게 사그라져서 서천꽃밭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담아둘 수 없는 오랜 기억의 숲, 별무리 터지는 소리만 팔랑대는 공중에서 거친 몸뚱이 하나로도 환해지는 내 안 깊은 곳 시원히 소리를 뚫고 덜컹덜컹 달려오는 이 누구인가 가끔 그렇게 북망산 기슭에서 혁명군 말발굽처럼 밀려오는 북소리 여름날 시궁창에 버려진 이름처럼 잘 삭힌 홍어의 휑한 눈망울처럼 몰각, 몰각이라고?

 

 

 

 

곱들락 제주어 김항신

 

 

우리 일루후제를 위ᄒᆞ여

제주어 베와보게

 

세종대왕 숨절 돔겨 이신

곱들락ᄒᆞᆫ 제주어

 

서펜덜에 가민 알작지가

자그락자그락 ᄌᆞ잘ᄌᆞ잘

 

동펜덜에 가민 둠벵이 속읍

폴짝폴짝 히염 치는 엿-장시

미네기도 ᄑᆞ릇ᄑᆞ릇

올렝이도 곱들락

 

우리 일루후제 위ᄒᆞ여

펜안ᄒᆞᆸ디강

펜안 헤시냐

오널도 지꺼지게

복삭 속앗수다예

 

 

                                    * 계간 제주작가2022년 가을호(통권78)에서

                                                   * 단풍 : 대둔산 초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