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하도리 '숨비소리길'(3)

김창집 2023. 2. 25. 00:35

* 비오는 날 갠 날 없이 작업하는 해녀들

 

비온 날 갠 날 없이

 

   모진다리불턱에서 비를 만났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엄청난데 급히 비를 피할 곳조차 없다. 급하게 배낭에서 비상용 우산을 꺼내 펴고, 급한 대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사선으로 빗줄기가 나올 정도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아래 할망바당 같이 얕은 곳에서 물질을 하는 분들에게 다가가서, 무엇을 잡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물로나 벵벵 돌아진 섬에/ 삼시 굶엉 물질허영// 한 푼 돈도 돈일라랜/ 두푼 돈도 돈일라랜/ 한 푼 두 푼 모아논 돈은/ 서방님 술값에 다 들어간다.// 어여도 사나 어여도 사나

 

  사실 비가 온다고 해도 물속에선 크게 상관없다. 먹구름으로 날이 컴컴해지든지 흙탕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요즘 고무제품 해녀복이 좋아져 웬만한 날씨에는 추위에 상관없이 물질하는 추세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 파도가 세지면 큰일이다. 바람은 물속을 완전히 헤집어 놓기도 하고, 사람을 엉장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하니까.

 

*신식으로 지은 해녀탈의장

 

용문사 그리고 해녀탈의장

 

   빗속을 걷는 중에 절집을 만났다. 한국불교태고종 용문사. 대웅전 단청도 새롭게 조성된 절 입구엔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목조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는 안내판을 세웠다.

 

  용문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조각승 진열이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전반 무렵에 조성한 것으로 불상 안에 발원문, 후령통, 다라니, 불경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됨으로써 불상의 존명, 시주자와 조각승 등을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상 양식 고찰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썼다.

 

  용왕(龍王)이라면 민간신앙에서 바다를 다스리는 존재다. 그러기에 이 마을의 해녀들도 자주 들리지 않을까? 바다 쪽으로 천천히 걸어 해녀탈의장 앞까지 갔으나 작업을 하지 않는 날이라 문이 꽁꽁 닫혀 있다. 설사 문이 열려 있다 한들 남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 요즘 탈의장은 옛 불턱 구실을 하며, 현대식 목욕시설까지 갖춰 있다고 한다.

 

*해안 깊숙이 자리한 갯것할망당

 

갯것할망당과 도구리통

 

  제주어 소식지 덩드렁마께제주신당순례를 연재하면서 섬을 많이 돌아다녔지만 이처럼 바다 전방으로 나앉은 신당은 처음 본다. 물이 들면 헤엄치면 몰라도 그냥 걸어갈 수 없는 여[]처럼 생긴 속칭 정순이빌레에 아담하게 자리 잡았다.

해신당은 해녀와 어부들의 물질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로 원래 바닷가에 위치한다. 이곳 갯것할망당은 일뤳당 계열이어서 음력 7, 17, 27일에 제를 올린다.

 

  안내판에 이곳 할망당은 원래 세화리 통항동 해변에 있었던 것으로 매립을 하면서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했다. 주변에 돌을 모아다 둥글게 제장을 쌓고 안으로 시멘트를 발랐다. 그리고는 북쪽으로 제단을 놓아 지전물색이 젖지 않게 지붕을 두고 두 군데 문을 냈다. 예전에는 피부병에 효험이 있었다고 하며 해녀들이 요왕맞이 때 들르는 곳이란다.

 

  나오다 용천수가 나오는 속칭 도구리통을 보았다. 여탕과 남탕으로 나뉘어 조금 떨어진 곳의 물을 둘렀는데, 근래에 작업했는지 깬 돌로 듬직하게 쌓았다. 생활용수로 사용했다는데 여러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좁아 보이고, 밀물이 되어 어느 정도 물이 차오르면 몸을 씻을 수도 있겠다.

 

*해신당에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해녀들(박물관)

 

해녀박물관 전시실

 

  마지막으로 해녀박물관 전시실에 들렀다. 지금 해녀박물관은 코로나19로 제한적 시범개장을 실시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시간당 30명에 한하여 실시하되, 37.5도 이상 발열, 기침, 호흡기 질환 유증상자는 관람할 수 없다.

 

  박물관은 제1전시실 해녀의 삶’, 2전시실 해녀의 일터’, 3전시실 해녀의 생애를 주제로 전시했다. 그 중에 유독 관심이 가는 곳은 해신당과 굿에 대한 장면이다. 해녀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속담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는 물질작업이 매우 위험한 일임을 잘 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해녀들은 용왕신에 의지하려고, 수시로 재물을 준비해 해신당을 찾아가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고, 때가 되면 굿을 벌이는 것이다.

 

  소중이를 입고 호미를 든 채 공중에 매달린 마네킹이 안쓰럽게 다가온다. ‘한쪽 손에 비창 줴곡/ 한쪽 손에 테왁을 줴영/ 한 질 두 질 들어간 보난/ 저승 도(입구)가 분멩ᄒᆞ다라고 부르던 해녀들의 노랫소리가 아련하다.

 

*박물관에 설치된 해녀 마네킹

 

 

해녀박물관을 나오며

 

  ‘숨비소리해녀들이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르는 소리로 마치 휘파람소리처럼 들린다. 이는 12분 정도 잠수해서 생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나는 호오이, 호오이하는 소리다. 해녀들은 이 숨비소리를 통하여 신선한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짧은 휴식으로도 물질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제주바다는 온난화와 각종 오염으로 백화현상이 일어나 해초가 사라진 지역이 늘어나고, 그 여파로 그것을 먹고 그곳에 의지해 살아가는 해산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힘든 물질작업을 하는 해녀의 수도 감소하고 점점 노령화 되는 추세다. 2019년을 기준으로 제주의 현직 해녀수는 3,820명으로 그 중 70세 이상이 2,235명이며, 80세 이상만도 621명이라 한다.

 

  과거 경제주체로서 제주 섬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온 해녀. 지금 기성세대 중 일부 바닷가 출신들이 자라온 과정에서는 어머니의 물질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앞으로도 제주경제를 더욱 살찌우고 우리의 식탁을 풍부하게 하려면 물질은 계속되어야 할 터. 그런 의미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해녀를 구해내는 일은 바다를 살리는 일과 궤()를 같이 한다. *끝

 

 

 

*물에서 나오는 해녀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