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해·소주·장가계 답사기(2005. 2. 25.∼3. 1.)
* 보봉호로 흘러드는 물
△ 산책하며 즐기는 금편계곡(金鞭溪谷)
우리 일행은 처음에 천자산 자연보호구로 가기로 했으나, 날씨
때문에 코스를 바꾸어 보봉호로부터 황석채를 거쳐 금편계곡으로 갔다. 장가계 국가삼림공원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지문 인식 전자 카드를 구입해야
한다. 158위안이란 거금을 내고 발급 받은 전자 카드로 우리가 이틀 동안 구경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장권 역할을 한다니,
본받을 만한 제도라 여겨졌다. 중국의 기술 수준과 이곳의 형편으로는 참으로 의외다.
금편계곡은 약 20㎞의 거리를 약 2시간 30분 동안 걸어서 산책하는 코스로 되어 있다. 시멘트 포장길이 거슬렸으나 양쪽에 늘어선 수십 길의 기암괴석이 끝없이 이어진다. 당초 장가계로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기암괴석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가는 곳마다 감탄사가 이어져, 가이드는 이곳을 '와!와! 관광지'라 한다고 했다. 가끔 원숭이가 출몰하는 이 계곡은 물이 철철 넘치는 여름에 넉넉한 시간을 갖고 매미소리를 들으며 걸었으면 좋겠다.
* 섬이 돼버린 보봉호의 기암
금편암을 필두로 '약초 캐는 노인', '공작봉', '장군봉' 등
유명 무명의 바위군을 올려다보며 걷다보니 고개가 뻣뻣해진다. 멀리로 가까이로 흐르는 안개구름은 사진 찍기에는 적합치 않으나 신비를 자아내기엔
충분하다. 활엽수는 잎이 떨어져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많이 보던 것들이고, 처음 보는 삼나무와 비자나무를 교배시킨 것 같은 나무가 있어 명패를
보니, '삼첨삼(三尖杉)'이라 되어 있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커다란 매화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 반가워한다.
시간 때문에 6km 지점에서 되돌아 돌아왔다. 정리는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나라가 넓다 보니 중국은 다양하고 스케일이 큰 관광자원이 부지기수다. 이곳 장가계만 해도 과거엔 알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사회주의 체제여서 일률적으로 밀어붙이기는 좋으나 천편일률적이고 경쟁력이 없는 게 흠이다. 누구는 여기 와보니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외돌개가 보잘것없이 생각된다며, 저 기암(奇巖) 하나 뽑아 제주에 가서 세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얘기를 쑥스러운 듯 꺼낸다.
* 보봉호의 기암들
△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지금까지 여러 차례 중국을 다녀봤지만 대부분의 현지 가이드는 우리
조선족이다. 중국이 관광정책에 이끌려 우리 나라 관광객이 쇄도하면서 알려진 관광지에는 8도 사람들이 다 몰려들고 있다. 그래서 우리말을 할 수
있는 조선족 청년들을 대거 동원시켜 가이드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관광에도 쑤저우와, 장가계, 그리고 마지막 쌍하이에 이르기까지 세
번이나 바꾸어 가면서 조선족 청년이 번갈아 우리를 안내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차량 이동시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당국에서는 소수민족을 관광에 끌어들임으로써 여행을 더욱 다양하고 흥미롭게 하고 있다. 중국은 총인구의 92%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漢族)과 국가가 인정하는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인구 100만 이상인 소수민족도 17개나 되는데, 좡족(壯族), 회족(回族), 위글족(維吾爾族), 카자흐족(哈薩克族), 다이족(人+泰族), 이족(彛族), 묘족(苗族), 만족(滿族), 장족(藏族), 몽고족(蒙古族), 투쟈족(土家族), 부이족(布依族), 조선족(朝鮮族), 둥족(人+同族), 요족(瑤族), 바이족(白族), 하니족(哈尼族) 등이다.
* 금편계곡을 걷는 도중에 도로에 장치한 곳
이들 소수민족은 역사적으로 서로 융합, 변모하면서 형성되어
왔는데, 언어체계에 의한 분류가 비교적 문화적 특징과 부합된다. 오늘날 중국 민족학에서는 5대 어족(語族), 10개의 어군(語群)으로 구분한다.
한족(漢族)은 예로부터 주변 이민족을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으로 부르면서 멸시해 왔다. 이런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고치는 계기가 된 것은, 공산당군의 장정(長征) 때 소수민족을 보고 나서 피차별 민족해방의 긴요성이 통감되었기 때문이었으며, 뒤에
신중국 민족정책과도 연계되었다.
기본 방침은 민족상호간 평등의 견지와 단결의 강화, 소수민족지구의
자치 이행, 소수민족 간부의 양성, 소수민족의 경제, 문화 발전을 위한 지원, 소수민족의 언어, 문자의 사용과 향상을 위한 지원, 소수민족의
풍속습관 존중 등으로 집약된다. 이 원칙은 제1차 중국인민 정치 협상회의에서 공동강령으로 규정했고, 그 뒤 신헌법으로 계승되었다. 현재 성급
자치구(省級自治區) 5, 자치주 30, 자치현 113등 모두 1백 48개의 자치지역을 인정하고 있다.
* 장가계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
△ 장가계에 많이 사는 토가족
토가족(土家族)은 주로 후난성(湖南省) 서부지역과
후베이성(湖北省) 서부지역, 쓰촨성(四川省) 동남지역과 구이저우성(貴州省)의 동부지역 등에 기거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284만 명에 이른다.
토가족은 자칭 "비쯔카", 한어로는 "투쟈(土家)" 라고 불리어진다. 토가족은 역사상 많은 칭호가 있었는데, 한족들이 그들 지역에 들어와
기거하면서 "투쟈(土家)"를 이 종족의 속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토가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진나라가 바후를 멸한 후에 호남, 호북, 사천 귀주 등에 거주하고 있는 파인과 한족들이 혼합해서 된 것으로 말하고 있고, 또 하나는 토가어가 이어(彛語)에 가깝고 또 토가가 운남지역에 살고 있는 이족 풍습과 같다는 것을 근거로 그 기원을 당나라 중반기 때의 오만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토가족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토가족어는 한장어계(漢藏語系)의 장납어족(藏納語族)에 속한다. 해방되기 전 토가족 지역은 봉건지주 경제개발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 경제적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
* 금편계곡의 바위들
토가족의 주된 산업은 의류 제작이며, 베를 짜고 수를 놓는 일들은
토가족들의 전통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농작물로는 쌀, 옥수수, 감자, 보리 등이다. 신화, 전설, 음악, 노래, 춤, 조각, 건축, 수직 등은
토가의 독특한 문화예술들이다. 신화는 토가족의 고전문학으로 자연 현상에 대한 순수하고 낭만적인 환상을 나타내며 인류가 자연을 개조하는 투쟁을
묘사하고 있다.
민족의 이동과 영웅 인물들의 전설은 지금까지 민간에 유행하고 있는데, 주제는 사랑과 악한 세력에 투쟁하는 것들이다. 또한 그 내용이 짜임이 있으며 재미있어 민족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토가족 사람들은 작곡과 노래를 좋아하는데 토가족들이 부르는 산가(山歌)는 곡이 아름답고 감정이 풍부하다. 산가는 사랑의 노래인 정가(情歌), 결혼을 앞두고 신부가 울면서 부르는 곡가가(哭嫁歌), 택수가(擇手歌), 전쟁을 위한 전가(戰歌), 소고가, 노동가, 반가 등으로 나눈다. 춤으로는 전통적인 택수무, 팔보동무, 소상무 등이 있다.
* 장가계 무릉원으로 들어 가기 위한 정문 앞
▲ 토가족의 풍습과 습관
토가족은 매년 설날에 모두 촌락 중간에 설치된 택수당 앞에 모여서
택수 파티를 하는데 사람이 많이 모일 때는 1만 명 이상까지 모인다. 수를 놓는 것과 조각, 회화, 전지(剪紙), 염색하는 것들은 그 민족의
특색과 높은 공예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서만가포는 토가 부인들이 꽃과 황혼과 무지개의 자연색상을 참고하여 만든 수공예품이다. 색상이 풍부하고
도안도 1백여 종이나 된다. 그리고 결혼을 할 때 신부집에서는 이 서단가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집은 산을 배경으로 하여 지으며 재료로는 나무와 기와, 또는 대나무로 벽을 지붕은 풀로 한다. 집을 지을 때는 일반적으로 장방향으로 건축하며 방은 3개 정도다. 음식은 옥수수, 수미, 메밀 등이며 고추와 야채를 좋아한다. 복장은 남자는 청남색, 혹은 백색의 두건을 쓰고 짧은 바지를 좋아하고 단추가 많다. 부인들의 복장은 깃이 없고 짧은 소매에 무늬와 도안이 있는 치마를 입는다. 일부의 여인들은 양말까지 신는데 양말도 무늬가 있다.
* 위 무릉원으로 들어가는 곳에서 발급하는 지문 인식 입장권
결혼 습관의 독특한 것 중 하나는 곡가(哭歌)다. 이것은 신부가
집을 떠나기 약 반달 전부터 우는 것인데 우는 기간이 상당히 길다. "곡가가(哭嫁歌)"의 내용을 보면 부모님과 형제 자매, 선조들을 위하여
울며, 중매한 사람을 욕하는 등 대부분은 이별의 정을 말하는 것이다. 혼자서 울기도 하고, 어머니, 자매들과 함께 우는 것도 있다. 시체는 땅에
매장하며, 명절은 설날과 4월 8일, 6월 6일, 단오절, 7월 15일 등이 있다. 설은 한족들보다 하루 빨리 지낸다.
예의와 금기에 관하여서 토가인들은 서로 돕고, 단결하며 손님을 열정적으로 접대하는 좋은 전통이 있다. 한 집에 행사가 있을 때에 모두가 와서 돕는다. 명절 때에는 토가족 손님이 오면 주인은 몇 개의 비파를 가져다 굽는다. 그것이 양쪽 모두 금색으로 익을 때에 그 안으로 설탕이나 꿀을 부어서 손님에게 준다. 토가족은 우리가 여행하는 도중 곳곳에 배치되어 노래를 부르든지 사진의 배경이 되어 팁을 받았다.
* 사진 찍는 곳의 모델 토가족 처녀
△ 독특한 토가족의 결혼
이들의 결혼 풍습은 매우 개방적이어서 청년 남녀간의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하다. 호남성 일대에 사는 토가족은 혼담이 오가기 시작하면 청년은 결혼할 규수집을 찾아가서 장래의 장인, 장모에게 인사를 한다.
대문에 들어서면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규수는 장래의 사윗감을 일으켜 세우고 그가 짊어지고 온
대나무를 내려서 안방으로 들여보낸다.
규수는 가슴을 졸이고 있다가, 살짝 안방으로 들어가서 바구니를 열어본다. 그리고는,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돼지족발을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본다. 만일 족발에 아무런 표시가 없을 경우, 청년 쪽에서 아직 결혼 날짜를 정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반면에 발굽 근처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택일을 재촉하는 의미이므로, 이때 규수는 서둘러서 결혼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족발에 꼬리가 달려 있으면 추수 후에나 가능하다는 표시이다.
* 토가족의 민속춤
반대로 규수 쪽에 사정이 있어서 그 해에 결혼할 수 없거나 한동안
부모 곁을 떠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에도 그 자리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청년이 돌아갈 때 족발과 꼬리를 답례품과 함께 바구니에
넣어보내면 된다. 청년이 집에 돌아가서 풀어보면 곧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청년은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한다.
토가족 처녀가 한 총각이 마음에 들면 결혼 신청을 할 때 남자의 발을 밟는다. 만약 남자가 여자의 발을 밟으면 이뤄지고, 밟지 않으면 거절의 뜻이 되어 여자는 이 모임에 3년 동안 참석할 수 없다. 반대로 남자가 어떤 여자가 맘에 들어 여자의 발등을 밟으면, 여자는 승낙의 뜻으로 남자의 발을 밟는다. 만약 여자가 거절하면 남자는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뿐더러 여자의 집에서 2년 동안 머슴살이를 해야 한다.
* 박물관의 토가족 처녀들
▲ 토가족 박물관인 '수화산관(秀華山館)'
탐라문화보존회에서 왔기 때문에 박물관을 보여준다고 데려간 곳이
토가박물관인 '수화산관(秀華山館)'이었다. 이 박물관은 진촉화(陳楚華)와 궁도수(○道秀) 부부가 수집한 유물과 미술작품을 전시하며, 토가족의
민속을 시연해 보여주기도 하는 곳이다. 수화산관은 중국에서 하나뿐인 토가박물관으로 장가계에서 명성이 있는 인문경관이 모여 있고,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신비로운 토가 민족의 독특한 민속 풍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수화산관은 전통적인 토가족의 가옥 구조인 우물 정(井)자식으로 되어있고 2층에 어울리는 정원으로 이루어졌다. 박물관의 모든 문이나 조각, 장식은 민간에서 수집한 것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이곳 수집품들은 '토가족 문화 보호신'으로 불리는 부부가 20여 년간 수집한 것으로 명청(明淸) 시대의 목각과 가구, 민간 복장, 면직품, 은장식품 등 생활 생산 민속 문화 예술 및 병기 종교 등 생활 용품들로 15만 건이 넘으며, 그 중 조각 꽃 침대, 명대 오색 석각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것이다.
* 장가계의 바위들
토가족 유물의 집대성뿐만 아니라 토가족 민간 연예를 시연함으로써 살아 있는 토가족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토가족의 영혼'을 보존하는 곳이다. 우리가 갔을 때도 간단한 환영 공연과 결혼 풍습을 보여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장진루 박물관의 호화스런 가구 장식이나 국보급의 명대 5색 석조각, 청대 목각, 토가 신당이나, 보습 침대 등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독특한 목기들이 많았고, 청대 오색항아리나 명대 청화천구병 등 자기류도 있었다. 시간을 갖고 요청하면 토가족의 결혼 장면을 재현해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일행 중에서 신랑 한 사람을 뽑아 울음혼례 장면만 연출했다. 3층에는 특이하게도 석분화(石粉花)가 여러 점 전시되고 있었다. 진 관장의 인솔로 장가계의 천연 바위와 식물들을 재료를 붙여 그린 것인데 특허를 얻어 관광기념품으로 가치가 높다고 한다.
* 장가계의 바위들
△ 처음 받아본 발 마사지
이제 우리 나라에도 널리 퍼졌지만 발 마사지는 아시아 후진국
관광의 주요 코스이기도 하다. 얼마 주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에게 팁 5천 원을 따로 낼 것을 약속하고 들어갔다. 고국에서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전문대학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한 발 마사지 연수를 실시하여 여러 번 기회가 있었으나 어디다 소용이 될까 싶어 무시해온 터라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이미 관광여행비에 포함되어 있다 하여 그냥 받아보기로 했다.
우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기본 코스에 들어 있는지 3층이나 되는 발 마사지 업소는 그야말로 만원이어서 우리는 잠시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대부분 처녀 총각의 마사지사들은 앞 손님들이 끝나는 대로 와서 남자는 여자 손님에게 여자는 남자 손님에게 투입된다. 순서대로 약초를 달인 물을 가지고 와 발씻기부터 시작하여 마사지가 시작되고 어깨 주무르기로 끝난다.
나는 제일 늦게 시작하였는데, 나이 많은 부부들이 바로 옆이나
빤히 보이는 자리에서 각각 젊은 남녀가 몸을 주무르는 게 꺼림칙했으나 나이 많은 분들이어서 그렇게 문제는 없어 보였다. 태국에서 전신 마사지를
한번 받아봤는데 아직 몸이 성해서인지 별 효과가 없었다. 이번 발 마사지도 그런 편이어서 오히려 가이드가 말한 6천 원을 내야 할건지, 같이 간
여행사 사장의 말한 5천 원을 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5천 원씩 내기로 약속하고 돈을 내밀었는데 약간 불만의
눈치다.
우리가 아시아권 관광을 다니면서 이럴 때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함부로 더 주는 일은 삼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고민은 가마 같은 것을 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강행군에 지친 사람들은 비교적 요금도 싸고 경험 삼아 한 번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칠 지도 걱정이 되고, 한편 이곳 사람들도 먹고살게 도와주는 일도 필요할 것 같다.
♬ 여명(黎明, Leon Lai) 중독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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