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체오름과 코끼리랜드

김창집 2002. 12. 10. 15:46
--- 제1회 탐라순력도 답사기(2002. 3. 31.)


▲ 새파랗게 출렁대는 보리밭 위로 ‘봄날은 간다’

바람과 황사 현상은 있었으나 그런 대로 맑은 아침
오늘은 (사)탐라문화보존회 70여 회원을 모시고 제1차 도내 답사 가는 날
체오름에서 봄나들이, 비자림에서 정기총회 갖고, 별방진성 답사 후
동부산업도로를 달리며 바다를 볼까 했는데, 시간을 아껴 코끼리랜드 가잔다.

일주도로변은 이르는 곳마다 벚꽃과 유채꽃의 향연--
한 열흘 앞당겨 와버린 봄 여신의 자취가 온 들판에 묻어난다.
오랜만에 보는 보리밭 위로 종달새 날고, 때맞춰 부는 바람에 초록빛 물결--
30년 전만 해도 제주의 봄 들판은 온통 보리밭이었는데, 지금은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일주도로로 함덕해수욕장을 지나 윗길로 올라서서 선흘에서 알바매기오름 옆으로
16번도로를 따라 계속 동진(東進)하여 왼쪽으로 늘어선 북오름과 종재기오름을 지나,
송당 삼거리 못 미쳐 오른쪽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가면 송당리 산66의 1번지
표고 382.2m, 비고 117m, 둘레 3,036m의 체오름은 봄꽃들의 잔치 마당.

길섶 토종 민들레 진노랑 물감 찍어 바른 것처럼 햇빛을 받아 더 짙어 보이고
보라색 제비꽃이 오랑캐 마냥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더니,
산자고가 길쭉한 두 잎을 양쪽으로 뻗치고 그 사이로 꽃대를 밀어 올려
보안관 마크 닮은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을 사방으로 펼쳤다.


▲ 368개의 오름 중 가장 특이한 ‘체오름’

고사리 몽클몽클 마른 풀잎 사이로 얼굴 들어 성급한 놈은 벌써 잎을 펴고
봄의 화신 양지꽃도 앞 다투어 보송보송 솜털 끝에 별처럼 반짝인다.
그 뒤로 숨어 핀 남산제비꽃, 주르륵 하얀 꽃잎을 수줍게 빛내는가 하면.
오줌 냄새처럼 진한 향기의 사스레피나무 꽃 잎 속에서 존재를 알리는데,

두릅나물은 벌써 손바닥을 벌린 듯 패어버리고
그 아래로 달래가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보리밥나무 능선을 지키며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려 하는데
고향의 꽃 진달래, 여기 이렇게 화사하게 피어났구나.

진달래 옆 부처손이 부챗살처럼 펴진 서쪽 능선에서 막걸리 한 잔 하고
산등성이를 돌아 동쪽 봉우리 바람 의지에 몰려 앉아 오름 얘기하는데
풀잎 사이로 수줍게 피어난 각시붓꽃을 보며 이름을 묻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눈에 익은 할미꽃이 피었다고 싱긋이 웃음을 머금고는---.

송당리 남서쪽 2km 지점 덕천리와의 경계에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
양쪽 등성이가 길게 키(箕)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제주말로 체오름(箕岳)이라고 부른다.
화구 길이는 어귀에서 안쪽까지 500여m, 정상에서의 깊이는 90여m
급경사의 화구 방향에 암설류 3개의 알오름 사이로 V자형 침식계곡이 생겨났다.

분화구로 들어가는 길섶엔 같은 과의 자주괴불주머니와 현호색이 얼려 피고
일제 말기 제주도를 요새 삼아 마지막 작전을 펴려던 군사시설 흔적 중
시멘트로 만든 깊은 우물 속엔 몇 년 전에 노루 한 마리 빠져 버둥거리고 있었는데
오늘 여기선 결7호 작전 강의 속의 에피소드가 된다.

이 계곡 일부를 막아 '아방궁'이라 일컬어지는 정원이 조성되었는데
봉오리가 막 터질 듯이 부푸는 참꽃나무 저편으로 라일락과 애기능금꽃이 귀엽다.
커다란 굴 아가리로부터 시작되는 서늘한 이 정원의 푸르름은
오름 하나를 집어 삼킨 마(魔)의 화신이 뿜어내는 애틋한 전설.


▲ 뜻밖의 행운 ‘제주에서 즐긴 코끼리 쇼’

비자림에서 정기 총회와 점심, 하도리 별방진성을 답사하고 나서 바다를 둘러보는데
회원 중의 한 분 ‘코끼리랜드’에서 아홉 마리의 코끼리를 돌보는 수의사가 있어
태국의 농눅빌리지 코끼리 쇼 수준은 못 될지라도
라오스에서 들여온 코끼리 쇼에 초청을 했다.

제주시 회천동 동부산업도로변 회천관광농원에 자리한 ‘코끼리랜드’
오전 10시, 11시, 오후 3시반, 3회 공연 중 마지막 공연을 관람하려고
이국적으로 꾸민 1천여 평의 쇼장으로 입장, 550명의 객석으로 들어서며
천원에 세 개씩 하는 바나나를 사고 자리하는 순간 상큼한 음악이 들린다.

3톤이나 되는 커다란 코끼리 9마리가 울긋불긋 치장하고
전통 복장을 한 라오스인을 태우고 쇼장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하고는
음악에 맞춰 시위하듯 쇼장 안을 행진한다.
음악은 빠빠 빠빠 빠빠 빠빠 빰빠~ 아기 코끼리 걸음마.

예의 바른 코끼리가 먼저 국기 게양을 하면
벌여 놓은 볼링 핀을 주워 바구니에 담기.
커다란 덩치의 점보코끼리가 얌전하게 앉아 재롱부리는 묘기를 부리고 나서
사방을 돌며 관람객이 내미는 바나나를 보너스로 받아먹고 고맙단 인사를 한다.

피카소가 따로 없다. 이젤 위에 펼쳐놓은 종이에다 사람이 주는 붓을 코로 들고
음악에 맞춰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그림을 그리고 나면
덩치 큰 코끼리가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 묘기를 선사하고
드러누운 사람들 위를 익살스럽게 넘어간다. 코로 여기저기 만지기도 하면서

코끼리 두 마리가 코를 서로 맞잡아 예쁜 숙녀를 태우고 쇼장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두 마리의 귀여운 아기 코끼리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행진하면
그 뒤를 따라 세 마리 코끼리가 탬버린을 연주하면서 따라간다.
세 마리 코끼리의 농구 - 덩크슛, 단거리 슛, 롱 슛! 안 들어간 놈은 멋쩍은 표정

두 사람의 관객을 골키퍼로 뽑아 문을 지키게 한 뒤 벌이는 축구 쇼.
던져주는 공을 받아 발로 차 신나게 골인을 시킨다.
마지막으로 코끼리와 춤을 추며 사진 찍기……
동심으로 돌아가 박수치며 웃고 즐긴 시간이었다.


*이곳 ‘코끼리랜드’ 홈피로 들어가시면,
MBC 생방송 모닝스페셜 "손선애의 현장속으로.." 에서 취재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eleland.com/home/main.htm


<사진> 위는 사진작가 서현열 씨가 찍은 '보리밭'이고,
아래는 '코키리랜드의 산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