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유타야 유적 (2)
아유타야 왕조(1350∼1767)는 위계전 제도(位階田制度)를 비롯한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17세기에 아유타야는 무역항으로 번창하여 왕실의 독점무역체제를 갖추고 서양 여러 나라 및 중국·일본 등과 교역하였다. 16세기 후반
미얀마군(軍)에 점령당하였으나 나레수엔왕(재위:1590∼1605)이 왕조를 부흥시켰다.
그 후 1767년에도 다시 미얀마 군대에 점령당했으나 아유타야 왕조의 무장(武將) 프라야 탁신[鄭昭]이 미얀마를 격파하고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톤부리 왕조는 1대(代)로 끝나고, 그 부하인 장군 차크리가 1782년에 방콕에서 왕조를 창시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차크리 왕조(방콕왕조)이다.
아유타야의 가장 큰 특징은 이곳이 일찍부터 국제적인 무역항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 조선시대 무역선도
이곳까지 다녔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 때는 중국을 비롯해 주의의 여러 나라와 멀리 페르시아, 유럽 쪽과도 외교 통상 관계를 열었으며,
영국인들로부터는 '런던과 같은 훌륭한 도시'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훌륭했던 도시이다.
400여 년 동안이나 아유타야 왕조가 누렸던 영화의 자취는 정말이지 폐허 그 자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수코타이 왕조의 유적과 비교한다면 도시 속에, 그것도 방콕과 멀지 않은 곳에 유적이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폐허가 되어 여기저기서 흩어져 있는 아유타야의 유적, 그러나 지금도 옛날과 변함없이 굽이쳐 흐르는 차오프라야강의
갈색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고 노래했던 길재의 시조 한 구절이 떠오른다.
* 부숴진 탑과 불상들
* 타다 남은 궁궐과 탑들(1)
* 타다 남은 궁궐과 탑들(2)
* 타다 남은 궁궐과 탑들(3)
* 타다 남은 궁궐과 탑들(4)
* 유적 입구에 벌여놓은 먹거리 장사 가게들
* 와불 (2)
'해외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국의 풍물 (14) (0) | 2004.04.10 |
---|---|
태국의 풍물 (13) (0) | 2004.04.08 |
태국의 풍물 (11) (0) | 2004.03.31 |
태국의 풍물 (10) (0) | 2004.03.29 |
태국의 풍물 (9) (0) | 2004.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