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353

최기종 시 '별 이야기' 외 4편

♧ 별 이야기 어릴 적 바람만 불어도 앙앙 울어대는 날 보고 할매는 아이쿠! 아까운 보석 다 쏟아진당게 벌써 한 됫박은 빠졌것다 하늘의 별들 다 도망가니께 어서, 울음 뚝 큰집의 우물 속 들여다보면 하늘의 별들 많이도 떴다 할매는 종조부가 우물 팔 때 별들이 많이 내린 곳에 우물자리 잡아서 그런다고 했다 엄니는 밤마다 두레박 길게 내려서 그 별들 찰방찰방 퍼 올려서 머리도 감고 밥도 짓고 소지도 했다 그때 엄니의 머릿결 고운 것이며 마루나 살강이며 솥단지가 번쩍거리고 고봉밥에서 별들이 튀는 게 모두 우물의 별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니는 우리 집 보석은 ‘나’라고 한다 내 눈 속에 우물이 산다고 눈만 껌벅거려도 봉선화 씨앗이 쏟아진다고 내가 어린 별들을 키우는 하늘의 은하수라고 했다 ♧ 복옷 이제..

아름다운 세상 2021.03.19

김수열 시 '낭 싱그는 사람을 생각한다'

♧ 낭 싱그는 사람을 생각한다 - 김수열 나무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숲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새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여지없이 쓰러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숲은 피 흘리지도 않고 통곡소리도 내지 않아서 그저 무감하게 숲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라는 직립보행은 새들의 노랫소리와 울음소리를 ᄀᆞᆸ가를 만큼 진화하질 못해서 멍텅하리만큼 멍청해서 아무런 아픔도 어떠한 느낌도 없이 나무의 밑동에 톱날을 들이댄다 톱날의 살벌한 기계음에 쾌감을 느끼고 파편처럼 흩어지는 나무의 살점을 만끽하다가 그 속도감에 절정을 이룬다 나무가 잘린 그날 이후 밤이면 밤마다 초록의 정령들이 수도 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길 보았다고 붉은해오라기가 맹꽁이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잘린 나무 곁에 낭 싱그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세상 2021.03.16

윤병주 시 '과메기' 외 4편과 풀고사리

♧ 과메기 바다를 지나온 고단한 별이 흘러내린다 바다에 살았던 삶과 생이 마르기 전 겨울의 허전한 공복의 무게를 거칠게 매단 채 바다에 푸른 생을 두고 알몸으로 북서풍에 매달린 순례자 구름을 숭배한 어떤 이름으로 눈구름을 따라가면 그의 몸도 소금꽃이 될까 얼 수도 녹을 수도 없는 날을 마른 영혼이 건너가고 있다 차가운 겨울 해풍을 몇 번 맞아야 어떤 이름 하나 얻을 수 있을까 ♧ 로드 킬 Road kill 죽은 산짐승의 몸을 지나간다 한낮의 햇살들도 이곳으로 내려와 마지막 조문을 한다 나는 잠시 죽음 전의 삶을 생각했다 약육강식의 서열에 밀려와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빛을 따라와 차에 치여 죽었을까 어디서 썩는 냄새를 맡았는지 까마귀들이 먼저 와 있다 육감의 몸을 숨기고 산에서 그 만큼 살았으면 제 몸 하..

아름다운 세상 2021.03.15

'우리詩' 3월호의 시와 히어리

♧ 봄, 무덤 - 김완 겨우내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외진 산길 무너져 내리는 늙은 무덤 한 기 서 있다 그늘 사이로 을씨년스러운 바람만 드나드는 곳 때가 된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무덤가에도 동백꽃 피고, 산벚꽃 분분분 흩날린다 무등산 토끼등 올라가던 청춘 남녀 무덤을 바라보고 앉아 봄을 마시고 있다 청춘은 아무런 장식 없이도 저리 빛나는데 쓸쓸한 무덤은 언제부터 허물어져 갔을까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 세상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마을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가난의 껍질 벗겨먹어도 맛 좋던 감자 하하호호 풍경은 엊그제 일인 듯 생생한데 흙 한 줌 부스스 흘러내린다 한 세상 건너 꽃이 지고 바람 부는 봄이다 ♧ 묵언 – 마선숙 삶의 페이지 얇아지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멍울들 검버섯 ..

아름다운 세상 2021.03.13

오승철 시조 '서귀포 바다' 외 6편

♧ 서귀포 바다 친구여, 우리 비록 등 돌려 산다 해도 서귀포 칠십 리 바닷길은 함께 가자 가을날 귤처럼 타는 저 바다를 어쩌겠나 ♧ 섬동백 1 이리저리 귀를 열고 바람 소릴 듣는다 달무리 피어올라 대숲에 숨는 얼굴 아아, 그 가득한 목소리 돌아보는 동백꽃 ♧ 섬동백 2 바닷길 쪽으로만 기우는 가지가 있다 고향에 사는데도 외로운 사내여 그 마음 붉히지 못해 온통 젖은 바닷길 ♧ 위미리 참을 만큼 참았다며 이른 봄 꿩이 운다 자배봉 아랫도리 물오르는 부활절 아침 위미리 옛집 그 너머 사발 깨듯 장끼가 운다 ♧ 추석날 위미리는 명치鳴雉동산 꿩소리 간신히 재웠는데 자배봉 한자락에 어머니도 재웠는데 대체 난 어떡하라고 여태 남은 고추잠자리 ♧ 위미리 동백 간밤에 동백 지듯 섬 몇 개 내린 바다 인생은 일사부재리..

아름다운 세상 2021.03.11

월간 '우리詩' 03월호의 시와 목련

[권두시] 봄은 - 신동엽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 오독誤讀 - 임보 새벽에 배달된 조간을 낡은 스탠드 밑에서 읽는다 「짚신사리」라는 괜찮은 시가 하나 눈에 띄었다 그런데 제목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아 의아해 하고 있는데 아내가 큰 전등을 켜 준다 그러자 「짚신사리」가 「진신사리」*로 환생, 부활한다! ----- * 「진신사리」: 홍사성의 시. ♧ 목련꽃 빛에 - 정순영 하얀 목련꽃이 눈부시게 피어..

아름다운 세상 2021.03.10

고연숙 수필 '나비의 꿈' 외 1편

♧ '나비의 꿈'에서 ……… 우리에게서 어머니가 떠나갔듯이 나비도 자꾸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나비는 세상의 혼돈과 소음을 싫어한다. 이 꽃 저 꽃 다니며 수분(受粉)을 나누어주면서 온갖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약하고 축복한다. 연약하면서도 한없는 사랑으로 꽃에 보시(普施)를 베풀고 만물의 전령사가 되어준다. 그러면서도 나비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피해 정적 뒤로 숨는다. 소음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건지 고요를 편애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비는 세상의 모든 혼돈으로부터 은둔하고자 한다. 세상은 갈수록 섬을 집어삼킬 듯이 밀려오는 태풍 같은 혼돈과 소음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보잘 것 없는 그림자에 불과한 나비는 이제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에 무력하고 외롭게 서 있는 등대처럼 자신의 신세가 슬프다. ..

아름다운 세상 2021.03.05

오승철 시조 '쇠별꽃' 외 5편

♧ 쇠별꽃 멀쩡한 오름 하나 건들고 가는 쏘내기야 가다가 다시 와서 또 건드는 쏘내기야 내 누이 사십구재 날 떼판으로 터진 꽃아 ♧ 섬잔대 아버지 옆자리에 어머니 묻어놓고, 내 고향이 이승인지 저승인질 묻습니다. 내 생애, 최초의 여자 몇 잔 술로 묻습니다. ♧ 야고 여름날 내 노동은 종하나 만드는 일 보랏빛 울음을 문 종 하나 만드는 일 가을날 소리를 참고 향기로나 우는 종 ♧ 대흘리 능소화 산수국도 장마도 정류소 버스시간표도 할인매장 바코드처럼 읽어내는 하늘연못 그 속에 도둑고양이 고개 슬쩍 내미는가 ♧ 손바닥선인장 이파린가 몸통인가 그 가시는 무엇인가 가을날 문득 내민 이 세상의 손바닥 하나 내 손금 어느 한 줄기 소름 돋는 그리움 ♧ 멀구슬나무 덩치 값도 못하고 그게 어디 꽃이냐 봄개구리 악다구니..

아름다운 세상 2021.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