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큰 도라지 밭에 가서 도라지를 찍어야지 했는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동네 텃밭에서
겨우 세 송이가 들어오는 걸 찍어 올리며
내년에는 더 멋있는 도라지 사진을 만날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그나마 9월이 가기 전에
올리는 게 대견스럽다.
도라지는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40~10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다.
뿌리는 통통하고 줄기는 한 대 또는 여러 대가 모여난다.
7~8월에 흰색이나 하늘색 꽃이 피고 열매는 삭과이다.
뿌리는 식용하거나 거담이나 진해의 약재로 쓴다.
산이나 들에 저절로 나는데 재배하기도 한다.
♧ 도라지 - 김명희
할머니 빛깔이다.
큰 길 훤히 내려다 뵈는
도라지밭, 오르내리던 새댁
눈물도 메말라 쓰디쓴 마음새
지아비 남겨둔 텃밭에서
흙살 깊숙이 다진 울음
무명 적삼 흠뻑 젖도록
밟고 또 밟아 노을이 섰다
청상의 하얀 밤
호미날로 찧던 그 몇 해이던가
깡마른 손 갈퀴마다
보랏빛꽃 흔들며
꿈마다 지켰던 고갯마루
내밀한 사연 지열로 벋어
곧은 뿌리, 뿌리가 되고
지금도 선영(先塋)에서
꽃 피고 씨 맺힌 도라지 밭을
오르내리실까.
♧ 도라지꽃 연가 - 하영순
봉오리 톡톡 틔는 소리
하얀 그리움 숨어 있다
소리치는 것
사타구니 열어 떠는 내숭
암내 풍겨
사랑을 고백하는 것
그립다 그리워
흔들리는 촉수
종족 번식을 위한 원초적 본능
바람 앞에 고고한 무희의 몸놀림
존재의 가치를
고백하는 것
♧ 도라지꽃 - 유진
이태전 등산길 외진 풀섶에서
눈길을 따라오던 도라지꽃
송골송골 솔잎에 매달린 빗방울처럼
건드리지 않아도 와르르 쏟아질 듯
이슬 그렁그렁 맺힌 청보라, 흰꽃이
된 시집살이의 이슥한 밤
닳고 닳은 배냇저고리 만지작거릴
홀어머니 생각에
시름시름 베갯머리 적시는
민며느리 모습 같아
뒤척뒤척 여-엉 잊혀지질 않기에
몇 뿌리 분에 심고 어루만졌더니
올 가을 베란다가 부시도록
청초한 꽃빛깔
나푼나푼 한가롭다
틀 잡힌
맏며느리 맵시 나듯
♧ 도라지 꽃 - 김기덕
쏜 살같이 달리는
창밖으로
도라지꽃이 언뜻 스쳐도
청초한 시골이 여름이 그립습니다
그리운 고향 산 8월의 정
9월의 보라 빛 사랑
무르익는 가슴을 열어주는
애들의 함성 같은
도라지꽃들
아아-
푸른 하늘을 복사한
그림 같은 한 장의 종이인가!
♧ 도라지꽃(172) - 손정모
가을 산길
야산 자락
햇살 따가운데
바람에 흩날려
야생으로 굽이치는
도라지꽃의 군영들
동쪽으로 휩쓸리면 보라색이요
서쪽으로 떠밀리면 흰색이다가
사뿐사뿐 어우러지는 무희들
세상사 외길만은 아니라고
꽃송이마저 색깔 달리
치장을 하곤
길손 지날 적마다
허리 굽혀
요염을 피우는 무희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