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문동꽃 아직도 피어
월요일이 개천절이어서 연 3일 동안 오름 등산을 했다.
어제는 전날 다녀온 붉은오름에 다시 갔지만
같이 간 사람들이 달라서 그런지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다시 봐도 새롭다.
더욱이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여러 가지 들꽃과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들을 쫓아 카메라에 담노라
눈까지 즐거워진다. 하나라도 더 알려고 열심히 묻는
수강생들을 다독이며 걷는 길은 보람으로 가득했다.
맥문동(麥門冬)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높이가
30~50cm이고 뿌리는 짧고 굵으며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선 모양 또는 선상 피침 모양으로 부추 잎과 비슷하다.
5~6월에 담자색의 작은 꽃이 총상 꽃차례로 잎 사이에서 나온
가는 꽃줄기 끝에 밀착하여 피고 열매는 검푸른 장과로 익는다.
덩이뿌리는 약용하며, 산지(山地)의 나무 그늘에 난다.
가을을 맞으며, 긴 여름 여러 곳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본다.
♧ 맥문동 같은 그 여자 - 김종제
내 몸의 어느 곳에
기침 가래하며
폐결핵으로 앓아누운 것이
틀림없이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오랫동안 지나쳤던 길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맥문동이
오늘은 눈에 들어오는 게
도대체 뭐냐 말이지
맥문동 같은 그 여자
삼베 적삼으로 겨우 살빛 감추고
고개 숙인 채, 키 낮춰
나무그늘에 숨어 지내는
그 여자, 단아한 풀이여 꽃이여
내가 그토록 헛것을 보았었나
네가 여태 본 내가 헛것이었나
깊은 손으로
우물을 길어 올려
한 모금도 새나가지 않게
제 몸에 담아 두고는
입을 앙다물어 저를 다그치는
그 여자, 강인한 뿌리여 열매여
한 해 더 희생해야
잎 두터워지고 윤택해진다는
천둥 벼락 같은 소리에
나와 같이
상처투성이의 너를
뒤뜰 한 구석에 던져 놓았더니
어느새 반듯하게 허리 펴고 있네
♧ 맥문동(麥門冬) - 김안로
가을서리를 맞으면서 나는
향기 높은 음표를 짙은 몸뚱아리 속에
묻어야 하리. 그대의 뜨락에
연두빛 봄이 올라올 때까지.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의 오솔길에서
먼 파도소리 들고오다
만난 그대여!
아무도 찾지 않는 긴 겨울의
낮은음자리를 밀고나와
후렴처럼 쏘아 올리는, 한 철
내 자줏빛 매무새는 어땠는지.
송죽이 어엿이 푸르긴 하나
나보다 키가 조금 크지 않던가.
풀내 나지만 잡풀이 아닌
나의 딴 이름은 불사초.
♧ 실맥문동이 - 송연우
돌 틈새
몸 낮추고 있네
오엽송, 산수유, 비단향나무 아래
그녀의 머리결 푸른 잎사귀
바람결에 곡선 그으며
핏발선 내 눈빛을 풀어주네
가슴에 묻어 삭힌
아침빛 청자 열매
반짝반짝 눈짓을 하며
뒤틀어진 오장육부의 욱기를 뽑아주네
♧ 작은 짐승이 되어 - 신석정
--K에게
한때 네 몸둥아리에서는
푸성귀 내음새도 안나더니
산에서 몇해나 살고 왔기에
왼통 산내음새가 젖어 흠뻑 젖어
내 코를 찌르는것이 즐거웁고나
도라지 더덕 칡넌출 얽힌 비탈 길로
난초 맥문동(麥門冬) 석곡(石斛)욱어진 새이길로
호랑이 여호 살가지 지내간 숲길로
노루 고랭이 토끼 뛰다니던 길로
너도 거침없이 뛰어 다녔드냐 ?
그 언제 나 또한 산으로 가서
진정 한 마리 작은 짐승이 되어
도라지랑 더덕이랑 맥문동 궁궁이랑 파뒤쓰며
거침없이 온 산을 쏘다다니며
산이 무너지게 거센소리로 한번 울어 볼거나…
(1935)
♧ 길 - 편부경
--어머니를 그리워 함
살면서
그리움 하나쯤 가꿀 수 있을까
밤새워 울먹이던 바다
새벽까지 먹구름 이고 서서
바람에 진저리 치는 건
그 이유 아닐까
질린 낯색 맥문동도 그 이유 아닌지
댓잎 움직임도 행여 스산한데
비틀대는 토함산의 취기는
외투 입은 물빛이다
길은 끝간데 숨겨 안고
살 떨군 포플러만 손끝으로 고갯짓
백날 천날 아껴야 할 그리운 것
바래지 않을 빛깔과 만나는 길
♧ 환절기 - 목필균
여름내
민소매 원피스였던
그녀
하늘거리는
보랏빛 블라우스 차림으로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뜨거운 지루함이 삭제된
한결 산뜻한 발걸음
벌개미취꽃 같은
맥문동꽃 같은
보랏빛 사랑이라도
품었는지
암팡진 엉덩이짓으로
여름을 지나 가을로
건너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