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맥문동꽃 아직도 피어

김창집 2011. 10. 4. 06:42

 

월요일이 개천절이어서 연 3일 동안 오름 등산을 했다.

어제는 전날 다녀온 붉은오름에 다시 갔지만

같이 간 사람들이 달라서 그런지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다시 봐도 새롭다.

더욱이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여러 가지 들꽃과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들을 쫓아 카메라에 담노라

눈까지 즐거워진다. 하나라도 더 알려고 열심히 묻는

수강생들을 다독이며 걷는 길은 보람으로 가득했다.

 

맥문동(麥門冬)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높이가

30~50cm이고 뿌리는 짧고 굵으며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선 모양 또는 선상 피침 모양으로 부추 잎과 비슷하다.

5~6월에 담자색의 작은 꽃이 총상 꽃차례로 잎 사이에서 나온

가는 꽃줄기 끝에 밀착하여 피고 열매는 검푸른 장과로 익는다.

덩이뿌리는 약용하며, 산지(山地)의 나무 그늘에 난다.

가을을 맞으며, 긴 여름 여러 곳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본다.

 

  

 

♧ 맥문동 같은 그 여자 - 김종제

 

내 몸의 어느 곳에

기침 가래하며

폐결핵으로 앓아누운 것이

틀림없이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오랫동안 지나쳤던 길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맥문동이

오늘은 눈에 들어오는 게

도대체 뭐냐 말이지

맥문동 같은 그 여자

삼베 적삼으로 겨우 살빛 감추고

고개 숙인 채, 키 낮춰

나무그늘에 숨어 지내는

그 여자, 단아한 풀이여 꽃이여

내가 그토록 헛것을 보았었나

네가 여태 본 내가 헛것이었나

깊은 손으로

우물을 길어 올려

한 모금도 새나가지 않게

제 몸에 담아 두고는

입을 앙다물어 저를 다그치는

그 여자, 강인한 뿌리여 열매여

한 해 더 희생해야

잎 두터워지고 윤택해진다는

천둥 벼락 같은 소리에

나와 같이

상처투성이의 너를

뒤뜰 한 구석에 던져 놓았더니

어느새 반듯하게 허리 펴고 있네

 

  

 

♧ 맥문동(麥門冬) - 김안로

 

가을서리를 맞으면서 나는

향기 높은 음표를 짙은 몸뚱아리 속에

묻어야 하리. 그대의 뜨락에

연두빛 봄이 올라올 때까지.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의 오솔길에서

먼 파도소리 들고오다

만난 그대여!

 

아무도 찾지 않는 긴 겨울의

낮은음자리를 밀고나와

후렴처럼 쏘아 올리는, 한 철

내 자줏빛 매무새는 어땠는지.

 

송죽이 어엿이 푸르긴 하나

나보다 키가 조금 크지 않던가.

풀내 나지만 잡풀이 아닌

나의 딴 이름은 불사초.

 

  

 

♧ 실맥문동이 - 송연우

 

돌 틈새

몸 낮추고 있네

오엽송, 산수유, 비단향나무 아래

그녀의 머리결 푸른 잎사귀

바람결에 곡선 그으며

핏발선 내 눈빛을 풀어주네

 

가슴에 묻어 삭힌

아침빛 청자 열매

반짝반짝 눈짓을 하며

뒤틀어진 오장육부의 욱기를 뽑아주네

 

  

 

♧ 작은 짐승이 되어 - 신석정

    --K에게

 

한때 네 몸둥아리에서는

푸성귀 내음새도 안나더니

산에서 몇해나 살고 왔기에

왼통 산내음새가 젖어 흠뻑 젖어

내 코를 찌르는것이 즐거웁고나

 

도라지 더덕 칡넌출 얽힌 비탈 길로

난초 맥문동(麥門冬) 석곡(石斛)욱어진 새이길로

호랑이 여호 살가지 지내간 숲길로

노루 고랭이 토끼 뛰다니던 길로

너도 거침없이 뛰어 다녔드냐 ?

 

그 언제 나 또한 산으로 가서

진정 한 마리 작은 짐승이 되어

도라지랑 더덕이랑 맥문동 궁궁이랑 파뒤쓰며

거침없이 온 산을 쏘다다니며

산이 무너지게 거센소리로 한번 울어 볼거나…

                                                (1935)

 

  

 

♧ 길 - 편부경

   --어머니를 그리워 함

 

살면서

그리움 하나쯤 가꿀 수 있을까

 

밤새워 울먹이던 바다

새벽까지 먹구름 이고 서서

바람에 진저리 치는 건

그 이유 아닐까

 

질린 낯색 맥문동도 그 이유 아닌지

댓잎 움직임도 행여 스산한데

비틀대는 토함산의 취기는

외투 입은 물빛이다

 

길은 끝간데 숨겨 안고

살 떨군 포플러만 손끝으로 고갯짓

백날 천날 아껴야 할 그리운 것

바래지 않을 빛깔과 만나는 길

    

  

 

♧ 환절기 - 목필균

 

여름내

민소매 원피스였던

그녀

 

하늘거리는

보랏빛 블라우스 차림으로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뜨거운 지루함이 삭제된

한결 산뜻한 발걸음

 

벌개미취꽃 같은

맥문동꽃 같은

보랏빛 사랑이라도

품었는지

 

암팡진 엉덩이짓으로

여름을 지나 가을로

건너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