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자주쓴풀이 늦가을에

김창집 2011. 10. 28. 08:24

 

 

들꽃은 피어 있을 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늦가을 벌판이나 시골길 길섶에서 자주 발견되는,

어디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모를 자줏빛별들….

어제 오름에서 만난 이 자주쓴풀 가족이다.

 

자주쓴풀은 용담과의 두해살이풀로 높이는 15~30cm이며,

잎은 마주나고 피침 모양으로 양 끝이 좁다. 10월에

자줏빛 꽃이 취산 꽃차례로 위에서부터 피고,

열매는 넓은 피침 모양의 삭과이다. 잎이 달린 줄기는

건위제(健胃劑), 지사제(止瀉劑)로 쓴다.

 

  

  

 

♧ 자주쓴풀꽃 - 김내식

 

하얗게 서리 내리는데

무슨 사유로

뿌리는 물론 쓰고 잎도 써

푸르딩딩 멍들은 영혼

늦가을에 꽃피울까

누가 쓰디 쓴 너를 잘근잘근 씹어보고

쓴풀이라 하였을고

그러나 너무 슬퍼는 말아라

이 세상 쓴 것은

너 뿐만 아니라

나도 쓰단다

나이 60이 되는 해

새로 태어난 손자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 삶에 이 무슨 짓거리로

되지도 않는 시를 쓴다고

머리가 하얗게 쉬어

잠도 못 자고 있지 않으냐

풀아 풀아 쓴 풀아

나도 꼭 너처럼

쓰디쓰단다

 

  

  

 

♧ 풀잎의 잠 - 변종환

 

밤마다 풀잎을 흔들어

풀잎의 잠을 깨우는 것은 바람이지만

풀잎을 흔들어 다시 잠을 깨우는 것은

그래, 때로는 달빛이거나

달빛 속으로 혼자 나는

새의 몸짓일 수도 있다.

밤마다 풀잎을 흔들어

풀잎을 흔들어 다시 잠을 깨우는 것은

그래, 때로는 당신 가슴에

묻어둔 사랑이거나

그 사랑 때문에 내가 흘리는

눈물일 수도 있다.

 

  

  

 

♧ 가을 - 오순화

 

가녀린 아카시 단풍잎 털어내는

바람이

당신의 목소리였다는것을

 

오월의 신부보다 더

화사한 꼬까신 신고

저 산을 스르르 내려가던 발걸음이

당신의 그림자였다는것을

 

가을은

그리워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행복입니다

 

더운 가슴

남은 정열을 다해 사랑하다

가을속에 묻히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은

아무도 모르는 나의 비밀

꽃이 지네

잎이 지네

 

  

  

 

♧ 오래된 편지 - 안경애

 

줄지어 피어난

코스모스 길을 돌다 보면

 

사랑을 약속했던 추억이

강물에 젖어들고

그리운 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붉게 피어오른 청춘의 열정도

모두가 꽃잎에 새겨진 연가로

 

내 눈빛 푸르게

세월에 묻혀버린 옛이야기

살그머니

마음에 갓 터지는 수줍음이여

 

  

  

 

♧ 풍경을 그리는 자유 - 박종영

 

처음의 보금자리는

작고 비좁은 비둘기 집으로부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궂은 날씨가

후비고 가는 날에는

하늘이 보이는 천정으로

흘러내리는 굵은 빗방울을

눈물로 받아먹었다

그 빗물, 성장의 속도를 부추겨 강물로 돌아와

오늘에야 만선의 기쁨으로 출렁인다

우울한 달빛동네,

적적한 골목길의 끝에서

고단한 하루를 배웅하는 우리,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보는 자유는 어떤가?

거기에는 탐욕의 때도,

명리의 속됨도 없는 절실하게 준비된

빛나는 집 한 채 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