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유 피는 계절
“내가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일을 찾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
사랑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사랑했고, 수많은 일화를 남긴 스티브 잡스가 간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나도 변화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피해갈 수 없는 선택, 스마트 폰…. 오늘 받아 전화 걸고
받고 메시지 보내고 받는 훈련만 해봤지만, 앞으로는 여러
기능을 익혀 편한 세상의 이기(利器)를 맘껏 활용할 것을
다짐해본다.
꽃향유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60cm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톱니가 있다. 9~10월에 보라색 꽃이
이삭 모양으로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를 맺는다.
꽃과 잎은 약재로 쓰며 산과 들에 자라는데
경기, 전남, 제주, 충북 등지에 분포한다.
♧ 꽃향유 - 김종제
향기 가득한 꽃 같아서
나는 벌레처럼 손 내민 적 많았다
그러면 누이는 제 몫을 뚝 떼어
주머니속에 슬쩍 찔러주곤 하였다
누이는 제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묵주를 놓지 않았다
늙은 애비 쓰러진 날도
옆에 앉아서 꽃 피었다
그 향이 어찌나 맑고 고운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혼자서 거뜬하게 일어나셨다는데
오늘은 갈바람 들녁에서
갸날프게 서 있는 것이
기나긴 적선으로
누이가 너무 힘들었나 보다
뿌리에서 같이 나왔다고
내가 다 빼앗아갔구나
그 진한 사랑을
남김 없이 다 주어서
아직도 내가 숨쉬고 있구나
혼인도 하지 않은 누이가
성모를 닮아가는구나
내가 저 꽃향유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일이 많다
나의 마리아여, 나의 누이여
비가 온다고 쓰러지겠느냐
바람 분다고 꺾어지겠느냐
당신의 향기로 내 심장이 뛰고 있다
♧ 길에 핀 꽃 - 백우선
산을 오른다
사제비 약수터에서
윗세 오름
한라산을 오른다
돌길, 돌틈으로 내민
깨끗하고 환한 얼굴
쑥부쟁이, 털머위, 좀향유……
키를 낮추고
키를 없애고
발길 아래 누워
길이 되고 있다
작은 꽃 더 작아져
온몸을 내준 채
이지러지고 뭉그러지며
향기를 묻히고 있다
바람찬 오르막길
거친 발길을
꽃물로 물들이고 있다
♧ 늦은 가을 - 김윤진
분연히 일어나 걸어가길
더 높고 푸른 날을 위해
우거진 숲으로 향유하는
활기찬 젊음은
화려한 여름이 지난 후에도
온유하여 찬미 받을 수 있도록
숙연한 가을은
더욱 심오한 뜻으로
심장에 부딪히고
각인 된 겸양(謙讓)의 사슬은
분신처럼 늦은 계절에
자신이 될 수 있도록
♧ 가을 어느 날 - (宵火)고은영
숲의 중심에
제 몸 가누지 못해
술렁이는 나뭇잎새들
몸 비빌 적마다
향기 솔솔 내 영혼 씻기 우고
큰 바위에 가만히 누워
사슴 같은 속눈썹으로
계절의 깊이를 향유한다.
가고 오는 세월의 산등성이에
가을이 한 초 롬 걸려있으매
눈을 감고도 자연의 모든 것을 숙지하고
자연과의 일체를 꿈꾸는 순간
알몸 내민 하늘이 까르르 웃는다.
스치는 바람 노래에도
얼굴은 간지럽고 차가운데
햇살이 내게 준 식지 못하는 뜨거움을
가만히 꺼내어 호수에 펼쳐 널어놓는다.
♧ 이름 없는 들풀처럼 - 원영래
이름 없는 들풀이 바람에 흔들린다 하여
그 마음 바람에 뻬았겼다 말하지 말자
마음 흔들렸으면 황량한 들녁에 뿌리를 내려
모진 풍파를 견디어 내었으랴.
물살 센 여울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를
미련하고 고집스럽다 말하지 말자
그 물결에 몸을 맡겼으면
소금바다에 떠내려가
벌써 숨이 멎었으리라.
바람에 의탁하여
날아가는 새만 있었다면
바람 저편엔 새 한마리 없었을 것이니
저 초원의 이름없는 들풀처럼
나도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 갈 수는 없을까.
그 격랑을 거슬러 올라간 물고기의
역류후의 즐거움으로 향유할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