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10월 마지막날 보내는 산국

김창집 2011. 10. 31. 00:10

 

오랜만에 오름오름회와 우리가 관리를 담당한

왕이메에 가서 한 바퀴 돌며 회포를 풀었다.

지난번 지나간 태풍 때문에 능선에 있는 나무는

잎을 떨구었고, 사이에 있는 키 작은 사람주나무가

수줍게 인사를 한다. 어질러진 쓰레기를 줍고,

느슨한 끈들을 고쳐 매고는 쓰러져 있는 나무를

옮기고, 다음 오름인 소병악과 대병악을 돌아

모슬포 물꾸럭 식당에 가서 대방어를 먹었다.

날씨가 차가워져서인지 방어 맛이 되살아났다.

 

산국(山菊)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60~90cm이고 흰색의 잔털이 있으며,

잎은 어긋난다. 9~10월에 노란 꽃이 두상(頭狀)

꽃차례로 핀다. 꽃은 약용 또는 식용하고 애순은 식용한다.

산과 들에 나는데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10월 끝자락 밤 풍경에 서면 - (宵火)고은영

 

밤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제 바라본 달빛이 행복이었다면

오늘 바라보는 달빛은 우울하다

가을 위에 청춘의 잔치는 끝났다

 

별들은 자꾸만 북쪽의 길을 고집하며

북으로 북으로 이동하는 새벽

어둠 속에 을씨년스런 나무 그림자들은

진실로 고독하다

 

적멸로 돌아서는 나뭇잎

그리고 파리해진 삶의 화선지에

내리막으로 치닫는 의식의 함몰

믿음을 키우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가 허물어지는 건 순간이다

 

이제는 기다림도 버려야 할 때

내 안의 슬픔 중

그대가 나의 고통으로서는 밤

들뜨기만 했던 뜨거운 열정들이

낱낱이 헤지고 식어 간 흔적만이 쓸쓸한데

 

언제 우리 사랑이 풍화돼 갔는지

그 행방이 묘연한 거리

불편한 진실들이 숨죽인 채

하얗게 쓰러져 있다

 

  

 

♧ 10월의 끝자락에서 - 반기룡

 

갈대숲을 지나며

지나온 상념 조각을 모자이크 해 봅니다

 

쓸쓸함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불러와

종종 시집을 뒤적이게 하고

잊었던 단어를 반복하게 하는 마력이 있기도 하지요

 

빨간 물감이 쏟아질 때마다

황홀경에 사로잡혔던

계절의 언덕에 올라

조금씩 깎여지는 시간의 흐름을 보며

아름다움이란 결국 윤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뜨거움은 선선함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곧이어 무서리 내리는 날이 오게 되며

그것도 모자라 된서리가 풀숲에 과일나무 잔 가지에

냉기의 의미를 전송하겠지요

 

이처럼 돌고 도는

윤회와 순환의 법칙에 따라

마음의 옷을 갈아입고 더움도 차가움도

무던히 견디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시월의 만산홍엽은

훗날에 낙엽으로 이름표를 고쳐 달지만

10월의 끝자락은 단풍처럼

환하게 붉었노라고 함차게 외칠 수 있어야 하겠지요

 

  

  

 

♧ 10월의 마지막 날 - 최홍윤

 

10월의 마지막 날,

설악산 대청봉에 삐죽삐죽 솟은 바위가

하얀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보고 내려가라고,

내려가라 하네!

 

지칠 줄 모르고

사랑의 밀어로 침묵하던 나무들도

외롭지 않으니

오르지 말라고,

오지 마라 삭풍으로 손사래를 치고 있네

 

중청봉에

반 년식이나 머물던 내 벗에게도

숲 가꾸기도, 숲 이야기도 일없으니

어디로 가서 한 댓 달 쉬라고 하는데

 

단지, 낙엽만은

이별이 서러워서인지

나무뿌리 부여안고 들숨만 쉬며

산 너울처럼 내려오는 눈보라

진눈깨비에 바스락거리기는 해도

 

사랑은 가고

아무도 없는 빈 산장에

10월의 마지막 날만 쓸쓸히 남겨두고,

우리 사랑 이제는

외로운 인동초로 꽃 피워야 하겠네!

 

  

 

♧ 10월의 마지막 밤을 - 임영준

 

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대 홀로 보내시나요

서늘바람에 떠밀려

맥없이 움츠리고 있나요

 

그래도

영창을 꼭 닫지 말고

조금은 열어두세요

스치고 지나가 버리는

알싸한 가을밤의 향기가

무척 그리워질 겁니다

 

그대의 추억 속에

꽃불들이 가득하지만

지금 이 시간

안타까운 이 밤만은

빛바랜 내 속삭임과 함께 하시길

 

나는 흐느끼는 바람과 합께

멀리 있는 그대 숨결을 떠올리면서

눈물이 앞을 가려도

하염없이 헤아리고 또 헤아릴 겁니다 

 

  

  

 

♧ 10월과 11월의 사이 - 박종영

 

강변 근처 물풀 그늘에서

긴 목으로 흔들리는 갈대의 안간힘이

빛바랜 생명으로 비상하려 한다.

 

바삭거리는 눈물은 말라가고

허공에 이별을 매단 채, 초겨울 바람 앞에서

시린 손금을 비빌 때 마다

삶의 존재들이 일어서고,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무리들,

윤기 나는 깃털 파닥이며

강물 환하게 물 고랑 길을 트고

반복하는 그리움으로,

 

마른 몸뚱이 구석구석 쪼아

굽은 허리 넉넉하게 펴는 부리마다

포근하게 일어서는 겨울 집,

 

푸른 기억 출렁거리며 돌아눕는

10월과 11월의 갈대꽃이,

창창한 고향의 강으로 섞여가는

저, 순종의 의미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