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늦가을 강원도 산골 풍경

김창집 2011. 11. 7. 01:35

 

2박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어제 저녁 늦게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날 비가 좀 내렸지만 오름해설사 5기생이 가는 길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계획했던 행사를 차례차례 모두 마치고,

28명 모두가 흐뭇하고 값진 경험과 즐거움을 누린,

복 좋은 사람들의 여행이었습니다. 5일 토요일 아침,

민둥산으로 떠나기에 앞서 준비운동을 하듯 탔던

레일바이크. 늦가을 강원도 산골의 정취를 맘껏 

즐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코레일관광개발 레일바이크는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km를 시속 15~20km의 속도로 운행할

수 있도록 제작된 철길 자전거 코스입니다. 봄에는 생명이 움트는

따사로운 햇살과 연녹색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한 물소리,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을, 겨울에는 눈부시게

하얀 눈꽃을 경험할 수 있다는 선전이지만, 안개 짙은 늦가을 아침.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고 가는 곳곳에는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낙엽송의 색감을 즐기기에 충분했습니다.

 

 

♧ 늦가을 - 원태연

 

십일월 초, 내가 또 이상해진다. 노력했던

시간들로 적당해진 생활이 또. 이상해진다

네시, 다섯시, 여섯시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내가 너무 쓸쓸해진다. 사람들을 마나며

나의 일들을 해가며 거리를 걸으며

내가 또 이상해지고 있다

 

"니가 좀 나를 마나 주었으면 했을 때가 있었다

이런 상황, 저런 상황 다 떠나서 나를 좀

만나주었으면 했다

어디에 있든 내가 어색했을 때 그래서

아무나 만나고 아무 곳이나 헤매이고 있을 때"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이년 넘게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가 오늘

과감히 잘라 버렸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른 머리였고 항상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기에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모습이 깔끔하다

 

 

 

♧ 늦가을 - 도종환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나 살아야 할 이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 늦가을 - 김유미

 

산다는 거

그런 거지 뭐

 

정 주고

정 받고

 

조금씩

기대고 부벼대다가

 

때로는

남인가봐

착각도 하다가

 

찬바람

불어오면

 

돌려줄 거

서둘러

돌려주고

 

훠이훠이

홀가분히

떠나가는 것

 

산다는 거

그런 거지 뭐

 

근데

그게

왜 그리

힘든지 몰라.

 

 

♧ 늦가을 2 - 윤순찬

 

멀미를 했다.

모든 것이 텅 비어

남은 것이 별로 없는

그래서 바람마저 머물 곳이 없어

누구누구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대는 공중에

멀미를 했다.

어미 다 사라져

다이어트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못 먹은 이디오피아 한 처녀처럼 깡말라

휘청휘청 걷고

그늘만 많은 햇살이 내리고 있다.

등 두드려줄 아무도 없는

가을에

가슴에 구멍을 숭숭 뚫리어

마음도 사라진 가슴 중에

멀미만 했다.

 

 

♧ 늦가을, 山峽산협 밤을 삭히다 - 조영서

 

산, 山, 산. 산골 첩첩 물소리에 밤귀를 헹구다. 한결 맑다. 가랑잎 한 두 잎이 누우런 꼬리를 살랑거리며 떠내려가다. 먼 길 떠나는 잔물결이 아쉬움을 재잘대다. 떠남은 언제나 미련을 잔잔하게 남기지만 바람결이 뒤훔쳐보며 흔적을 지우다. 물 밑을 흐느끼는 푸른 달빛. 그 흐느낌은 싸늘하다. 가을빛 속속들이 절인 밤 숨결은 축축하다. 하늘을 삭인 풀꽃이 내장산 적막을 마시다. 적막은 차갑다 시리다. 하늘 저켠 북두칠성이 눈 내리뜨고 깜박이는 긴 深夜심야. 별 하나의 눈짓에도 그리움은 아득하다. 외로움이 골을 파는 산협, 늦가을 밤은 주름이 깊다. 내 주름살이 익는다. 어둠살을 삭히는 저 솔바람소리.

 

 

♧ 늦가을 소묘 - 서경원

 

눈물 한 방울 뚝 흐를 것 같은

새파란 하늘

커다란 호수 그 속으로

온 몸이 빨려 들어갈 듯

 

빨갛게 타오르는 꽃등인 양

환히 불 밝히고

뜨거운 가슴 풀어헤치며 느티나무

가을 저무는 길에 섰다.

 

옷자락 펄럭이며 달려온 갈바람

세차게 머리 흔들어대면

느티나무 고운 꽃가지

한 잎 두 잎

살점 떨어져 내린다.

 

얇은 입술 같은 이파리

은빛 햇살에 비춰 보면

손바닥에 묻어나는 빠알간 눈물

반짝 빛난다.

 

저무는 가을

낮은 데로 낮은 데로

몸 숨기려 드는 아픈 기억들

바람도 한 줌

햇살도 한 줌

진한 그리움 켜켜이 가슴 앓는 이파리들

 

지친 가을 곁에

작은 몸 더 작게 웅크리고 앉아

햇살 한 모금씩 겨우 목축이다가

돌아서 가는 가을 따라 마른 꿈 꾸며

하나 두울

사라져 간다.

 

 

♧ 늦가을 어느 날 - 김시천

 

늦가을 어느 날

누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무 이파리 몇 잎

마저

떨어져 내렸습니다

 

나무 이파리 떨어진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서

잎을 지우며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울먹이며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