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강원도 산골 풍경
2박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어제 저녁 늦게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날 비가 좀 내렸지만 오름해설사 5기생이 가는 길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계획했던 행사를 차례차례 모두 마치고,
28명 모두가 흐뭇하고 값진 경험과 즐거움을 누린,
복 좋은 사람들의 여행이었습니다. 5일 토요일 아침,
민둥산으로 떠나기에 앞서 준비운동을 하듯 탔던
레일바이크. 늦가을 강원도 산골의 정취를 맘껏
즐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코레일관광개발 레일바이크는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km를 시속 15~20km의 속도로 운행할
수 있도록 제작된 철길 자전거 코스입니다. 봄에는 생명이 움트는
따사로운 햇살과 연녹색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한 물소리,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을, 겨울에는 눈부시게
하얀 눈꽃을 경험할 수 있다는 선전이지만, 안개 짙은 늦가을 아침.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고 가는 곳곳에는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낙엽송의 색감을 즐기기에 충분했습니다.
♧ 늦가을 - 원태연
십일월 초, 내가 또 이상해진다. 노력했던
시간들로 적당해진 생활이 또. 이상해진다
네시, 다섯시, 여섯시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내가 너무 쓸쓸해진다. 사람들을 마나며
나의 일들을 해가며 거리를 걸으며
내가 또 이상해지고 있다
"니가 좀 나를 마나 주었으면 했을 때가 있었다
이런 상황, 저런 상황 다 떠나서 나를 좀
만나주었으면 했다
어디에 있든 내가 어색했을 때 그래서
아무나 만나고 아무 곳이나 헤매이고 있을 때"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이년 넘게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가 오늘
과감히 잘라 버렸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른 머리였고 항상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기에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모습이 깔끔하다
♧ 늦가을 - 도종환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나 살아야 할 이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 늦가을 - 김유미
산다는 거
그런 거지 뭐
정 주고
정 받고
조금씩
기대고 부벼대다가
때로는
남인가봐
착각도 하다가
찬바람
불어오면
돌려줄 거
서둘러
돌려주고
훠이훠이
홀가분히
떠나가는 것
산다는 거
그런 거지 뭐
근데
그게
왜 그리
힘든지 몰라.
♧ 늦가을 2 - 윤순찬
멀미를 했다.
모든 것이 텅 비어
남은 것이 별로 없는
그래서 바람마저 머물 곳이 없어
누구누구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대는 공중에
멀미를 했다.
어미 다 사라져
다이어트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못 먹은 이디오피아 한 처녀처럼 깡말라
휘청휘청 걷고
그늘만 많은 햇살이 내리고 있다.
등 두드려줄 아무도 없는
가을에
가슴에 구멍을 숭숭 뚫리어
마음도 사라진 가슴 중에
멀미만 했다.
♧ 늦가을, 山峽산협 밤을 삭히다 - 조영서
산, 山, 산. 산골 첩첩 물소리에 밤귀를 헹구다. 한결 맑다. 가랑잎 한 두 잎이 누우런 꼬리를 살랑거리며 떠내려가다. 먼 길 떠나는 잔물결이 아쉬움을 재잘대다. 떠남은 언제나 미련을 잔잔하게 남기지만 바람결이 뒤훔쳐보며 흔적을 지우다. 물 밑을 흐느끼는 푸른 달빛. 그 흐느낌은 싸늘하다. 가을빛 속속들이 절인 밤 숨결은 축축하다. 하늘을 삭인 풀꽃이 내장산 적막을 마시다. 적막은 차갑다 시리다. 하늘 저켠 북두칠성이 눈 내리뜨고 깜박이는 긴 深夜심야. 별 하나의 눈짓에도 그리움은 아득하다. 외로움이 골을 파는 산협, 늦가을 밤은 주름이 깊다. 내 주름살이 익는다. 어둠살을 삭히는 저 솔바람소리.
♧ 늦가을 소묘 - 서경원
눈물 한 방울 뚝 흐를 것 같은
새파란 하늘
커다란 호수 그 속으로
온 몸이 빨려 들어갈 듯
빨갛게 타오르는 꽃등인 양
환히 불 밝히고
뜨거운 가슴 풀어헤치며 느티나무
가을 저무는 길에 섰다.
옷자락 펄럭이며 달려온 갈바람
세차게 머리 흔들어대면
느티나무 고운 꽃가지
한 잎 두 잎
살점 떨어져 내린다.
얇은 입술 같은 이파리
은빛 햇살에 비춰 보면
손바닥에 묻어나는 빠알간 눈물
반짝 빛난다.
저무는 가을
낮은 데로 낮은 데로
몸 숨기려 드는 아픈 기억들
바람도 한 줌
햇살도 한 줌
진한 그리움 켜켜이 가슴 앓는 이파리들
지친 가을 곁에
작은 몸 더 작게 웅크리고 앉아
햇살 한 모금씩 겨우 목축이다가
돌아서 가는 가을 따라 마른 꿈 꾸며
하나 두울
사라져 간다.
♧ 늦가을 어느 날 - 김시천
늦가을 어느 날
누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무 이파리 몇 잎
마저
떨어져 내렸습니다
나무 이파리 떨어진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서
잎을 지우며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울먹이며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