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하산길 풍경
민둥산은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높이 1,119m의 산이다.
짐작하셨겠지만 ‘민둥산’이란 이름은 정상 주변에 나무가 없고
억새만 자라고 있는 곳이어서 그리 붙은 것이다. 그리고 정상
주변에는 돌리네(doline) 지형이 발달하였다.
돌리네란 석회암 지대에서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녹으면서
깔때기 모양으로 웅덩이가 패인 것이다. 민둥산 정상 북사면에
지름 300m 정도의 구덩이인 큰 돌리네가 있다.
민둥산 정상부의 억새밭은 약 30만 평이나 된다. 과거에 주민들이
산나물을 많이 재배하기 위해 불을 질렀기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냥 두어 억새밭으로 변했다고 한다.
우리는 증산초등학교 위쪽에서 출발하여 임도 쉼터 - 정상 -
발구덕마을 - 무릉사거리 쪽으로 내려오는 4시간 거리를
걸었다. 내려오는 산길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았다.
♧ 당신의 그 손놀림 속에는 - 정세일
당신의 손놀림 속에는 어쩌면
그리도 우리의 가슴속에 숨겨진
가락이 있나요
비록 민둥산에서 가슴이 내려가는
비탈에 설지라도 뿌리만은 깊게 내리고
가시만이라도 간직하여 비를 기다리는
나무처럼
당신의 손가락 하나 하나의 그 손놀림 속에는
어쩌면 나의 그 민둥산 같은 가슴에
나무를 심을 수 있게 하시나요.
어쩌면 당신의 그 손놀림 속에는
나의 허리장단이 살아있나요
산밑에 비탈진 곳마다 개미허리 같은 한뼘손같은
논에 반달 같은 가슴을 품어서
비가 온다면 출렁거리는 가슴을 가지고
새끼손톱 같은 초생달도 가슴에 간직할 수 있는
나의 마음을 가르치시는 당신의 손길에는
어쩌면 그리도 나의 허리 장단이 살아있나요.
당신의 손끝이 가르치는 곳마다
나는 노래가 되어 당신이 그리도 서럽도록
참으셨던 그리움을 눈물이 넘치도록
허리를 흔들며 노래를 부릅니다
당신의 그 손놀림 속에는
들녘도 산들도 강들도 냇가도
시냇물가도 달빛이 비치지 않아도
옛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당신을 바라보는 눈들에는
정다움이 살아있습니다.
♧ 민둥산 - 김선우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 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 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
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
어리고 착한 입술을 내밀었고
인적 드문 초겨울 마른 억새밭
한기 속에 아랫도리마저 벗어던진 채
구름족의 아이들을 양팔로 안고
억새밭 공중정원을 걸었다 몇번의 생이
무심히 바람을 몰고 지나갔고 가벼워라 마른 억새꽃
반짝이는 살비늘이 첫눈처럼 몸속으로 떨어졌다
바람의 혀가 아찔한 허리 아래로 지나
깊은 계곡을 핥으며 억새풀 홀씨를 물어 올린다 몸속에서
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
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 겨울풀들
풀뿌리에 매달려 둥지를 튼 벌레집과 햇살과
그 모든 관계하는 것들의 알몸이 바람 속에서 환했다
더러 상처를 모신 바람도 불어왔으므로
햇살의 산통은 천 년 전처럼
그늘 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였다
세상이 처음 있을 적 신께서 관계하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도 내 허벅지 위의 햇살처럼
알몸이었음을 알겠다 무성한 억새 줄기를 헤치며
민둥한 등뼈를 따라 알몸의 그대가 나부껴 온다
그대를 맞는 내 몸이 오늘 신전이다
♧ 별을 수놓는 여자 - 김경민
낡은 세상의 머리 위로 검은 구름 위로
몸을 털며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 깃털들
한 방울의 여자가 내리는 검은 눈 속을 가네
매운바람에 몸통만 남은 황량한 나무
뿌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네
나무는 푸른 힘줄을 드러내고 수액은
열매가 되어 그녀 가슴에 매달리네
세상 밖으로 새어나가는 그녀의 방귀
천상(天上)을 흐르는 그녀의 피
천둥이 되어 돌아오네 죽은 꿈들을
흔들어 깨우는 빗줄기. 차가운 피
얇은 얼음에 덮힌 잠든 혼들을 깨우며
한움큼의 여자가 검은 눈 위를 걷고있네
그 뒤를 따라가는 발자국
어두워 오는 하늘 저 편에 찍히고
교회 십자가도 없는 민둥산 위
저 혼자 반짝이는 별빛으로 사라져가네
♧ 헐벗은 맹세 - 김선자
낯익은 길을 마지막 지나오던 중이었다
웅크린 민둥산에 노을이 저 혼자 툭하니 쓰러지고 있었다
아니야 뒤를 돌아보면 안돼 이제는 안돼
너무 먼길을 돌아온 것뿐이야 숨막히는 네모난 슬픔 따위는 잊어야 해
내 안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들썩인다고 아니야 그것은 누군가가 페달을 잘못 밟는 소리야
질퍽한 흙탕길을 비척비척 끌고 오던 날도 바퀴는
두 눈에 불을 켜고 시퍼렇게 구르고 있었어
바퀴의 억센 인연 때문에 다시 빠져나갈 수 없는 고리가 됐다고
두려워하지마 나는 바퀴의 근성을 알거든
바퀴가 신호등에 정지된 시간 내가 먼저 휙 방향을 돌리는 거야
푸르른 절벽으로
♧ 그대들 함께 걷는 모든 그리움의 길 위에 - 홍관희
하늘을 우러러 가야할 길 묻노라면
민둥산 기슭에서 새벽안개 퍼내는 우리네 그리움 같은
가난한 촌부의 날선 삽질소리
척박한 이 시대의 울림으로 반짝반짝 살아오고
스스로 깊어가는 강물에 마음을 담그고 가야할 길 묻노라면
흐름의 굽이굽이 가슴 깊이 새겨둔 수평선을 노래하는
뜨거운 이 생명의 땅에서
인간의 길 완성의 길 함께 나아가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그리움 찾아 달려가 임을 만나서
산 넘고 물 건너 그리움 찾아 달려와 임을 만나서
빛 고운 뻐꾹새의 노랫소리로 사랑 나누던
그대 님과 님이
사랑의 청실홍실로 가슴과 가슴을 하나로 꽁꽁 묶고서
이제는 지난 날 넘은 산보다 더 높은 희망이 되고
이제는 지난 날 건넌 물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 되어
별을 바라보는 넉넉한 마음으로 나란히 나아가나니
가도가도 온전히 마음 디딜 곳 없는
어지러운 시대의 가슴팍에서 모진 바람 맞을지라도
지아비는 지어미의 삶속에서 꺼지지 않는 새벽빛이 되고
지어미는 지아비의 삶속에서 식지 않는 온돌방이 되어
끝없이 흐르는 사랑과 희망과 전진의 강물에 젖노라면
그대들이 이 땅에 흘린 땀방울만큼 한반도 곳곳에
그대들 숨소리 섞인 노랫소리 울려 퍼지리니
이 세상 참으로 힘찬 웃음을 웃는 그 날까지
이 세상 참으로 넉넉한 가슴으로 함께 노래하는 그 날까지
그대들 함께 걷는 모든 그리움의 길 위에
지아비는 지어미의 가슴 깊은 우물에서
언제나 싱싱한 사랑의 물을 퍼 올리고
지어미는 지아비의 가슴 깊은 하늘에서
언제나 뜨거운 사랑의 번갯불을 맞아
온몸으로 깊숙이 나누는 희망찬 이야기가 계속되소서
언제나 변함없이 새벽을 여는 부부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