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젓나무 숲길
답사 첫날 오대산 월정사 젓나무 숲길을 걸었다. 처음 갔을
때는 눈이 묻은 2월이어서 상원사만 걸어갔다 와서 어둑한 때
월정사까지 보고, 다리를 건너 차로 이동하였었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좋아서 월정사 일주문에서부터 걸어 들어가 월정사만
들르고 왔다. 쭉쭉 뻗은 시원한 길, 오대산 숲길은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뽑혔다.
오대산 전나무숲은 월정사 입구 일주문에서 금강교에 이르는
1㎞ 길 양쪽에 쭉쭉 뻗어 있는데, 수령 300년이 넘는 노거수를
비롯해 평균 83세의 전나무 1700여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젓나무는 소나뭇과의 상록 교목으로 높이는 20~40m이며,
잎은 선 모양이다. 4월에 꽃이 피는데 암꽃은 긴 타원형이고
수꽃은 황록색의 원통 모양이며, 열매는 원통 모양의 구과로
10월에 익는다. 목재는 가구, 건축, 제지용으로 쓰고 정원수로
재배한다. 우리나라, 일본, 만주, 유럽 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 심장이 시동을 끄고 - 김영호
발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오대산 입구의 전나무
다투어 입술을 디밀었다.
심장이 시동을 끄고
숲의 맥박에 호흡을 맞춘다.
혈관 속의 끓던 부동액이 금세 식었고
산이 허파를 열어 내 가쁜 숨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박나무 걸어나와 그 넓은 손으로
내 이마의 깨죽땀 훔치고
몇 바가지 녹음을 끼얹어 등을 밀어 주었다.
윈도 블러시 몸짓의 낙엽송 긴 가지
내 각막을 닦아 산길을 열 때,
내 눈에 들켰다.
산 안개속에 해는 알몸으로 맛사지를 하고
그옆 배꼽을 내 놓은 老松
코를 골며
산새소리로 위장을 꺼내 세척을 한다.
어느새 나는
山이 만든 자궁속의 신생아.
종일 걸걸한 물소리의 肉談육담에
나무들 얼굴을 붉혔다.
땀띠를 두르고 아침부터 기침을 해대는
서울의 가로수와는 달리.
♧ 월정사에서 - 강희창
발밑에 물을 들여다 보렴
거기 부처가 있느냐
청정한 기운으로 묻는다
이슬 젖은 지장암 비구니의
장삼 속으로 기어든 가을아
전나무 숲 빼곡히 울타리 친
그대로의 작은 세계를 아는가
그 나름의 섬긴 역사를 아는가
낭랑한 새들의 말씀으로
중생을 가르치고
계곡 따라 번뇌 씻기며
내리시는 자비
부처님 예 없어도
이곳은 원래 극락이었네
♧ 오대산 기행 - 김남극
일주문 지나
전나무 숲에 버렸다
상원사까지 걷기로 했다
개울은 동안거에 든 지 오랜데
살아있다고
가끔 숨구멍에서 허연 입김이 오른다
능선을 오르다 숨 고르는 듯 선 나무들
겨울에도 자라는 지
갈비뼈 같은 나이테가 눈 위에 찍혔다
비로봉 관목숲
하늘 무서운 지 알아 더 자라지 못한 나무들
바람이 무수히 목을 쳐도 엎드렸다
관목숲에 버렸다
월정사까지 덜컹거리는 버스를 탔다
흔들거리는 고개, 끄덕거리는 고개
잠잠해지는 숨결
질펀하게 녹는 몸
전나무 숲을 나오며 다시 주웠다
일주문을 나섰다
♧ 오대산 - 황상순
어느 날은
갈숲 위를 설렁이는 바람이 되어
월정사(月精寺) 뒤편 뜰에 가련다
눈빛 형형하던 스님마저 바람이 되어버린
그곳, 나무숲에 서고 싶다
마음이 잎새처럼 흔들릴 때 이곳에 와
가만히 나무 뒤에 기대면
또 다른 나무 뒤에 숨은
내가 보인다
부처님 어깨 같은 뭉실한 산줄기
산수유열매 붉게 흩뿌려진 흙 속에 눕지 못하고
나,
산비둘기 되어 이 나무 저 나무로 떠돌면
산안개에 묻힌 부도(浮屠) 뒤
아니면 저 큰 전나무 뒤일까
나를 응시하는 눈길이 있다
거미줄에 들러붙은 듯 떠나지 못하는
미물 같은 삶, 견딜 수 없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나 몰래 먼저 이곳을 찾았을까
저 뒤에 숨은 나,
어깨마저 다 삭아지도록
석탑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석조상(石造像)
돌이끼 가득한
얼굴 없는 얼굴이 아닐는지
한줄기 바람이
서성서성 뒤를 따라 나선다
♧ 강원도 길 - 하영순
옥수수 밭 길 따라 구름 터널을 뚫고
달려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옥구슬 구르는 계곡 물도 독경을 하고 있었다
전나무 숲 자연림
법문을 듣고 살아가는 송충이도 귀엽다
골짜기를 가득채운 물안개
여름이 여름 같지 않은 그곳에서 관광 안내원에게 오대산과 월정사 유래를 듣고
봉평장을 찾아 길을 나섰다
첩첩 산길
전파도 넘지 못하고 구름도 쉬어가는 태기 고개 마루에
이쪽저쪽 전파를 교차하는 송신탑 아래 자동차 식당에서
강원도 특유의 맛 잠자 전을 시켜놓고
잠시 쉬어가는 인생여정
사방을 돌아보니 구비치는 푸른 파도 같은 산
저기를 돌고 돌아 왔던가.
숨이 막힌다.
달려온 길 보다 가야 할 길 한치 앞이 적막이다
자동차도 숨 가쁘다 쌕쌕이는 길
그 옛날 허 생원이 달구지를 타고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그의 흔적을 찾아 봉평장에 가는 길
그 곳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고불고불 끝이 없는 여정
지금껏 이보다 더 높은 고개를 넘지 않았던가
가자 가는 곳까지!
인생 내리막길
지금까지 옆도 뒤도 못 본 길
쉬다가 놀다가 서서히 꽃바람 찾아 가는
강원도 여행 길
♧ 삶이 하찮아 보이는 날은 - 장남제
살다가
삶이 하찮아 보이는 날은
오대산 월정사에
일주문 숲길을 걸어볼 일이다
숲은 죽은 자를
땅에 묻지도
불에 태우지도 않아
주검을 그대로 두고 보는 까닭인지
모두들 억척스레 살아
주검은
딱따구리의 박수이고
다람쥐의 화장실
하이에나 같은 버섯의 포식일 뿐이라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삶보다는 못해
전나무처럼 웅대하지는 못해도
소나무처럼 잘 생기지는 못해도
기고 오르고 감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청가시덩굴을
탓 할 일이 아니더라
살다가
삶이 하찮아 보이는 날은
월정사 일주문 숲길에
청가시덩쿨을 만나볼 일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