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조 제19집의 시조 2
♧ 쑥부쟁이 - 김향진
화분에 옮겨 심은
쑥부쟁이 꽃 피었네
칼바람 이고 도는
산모퉁이 그리워
이밤도 잊지를 못해
뒤척이는 달그림자
♧ 제주조릿대 - 김현실
산허리 점령하고 하산을 서두르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숨죽인 듯 포복하는
순식간, 푸른빛 함성 움찔하는 나무들
♧ 황매산 - 김희운
새벽바람 뺨을 어르는 황매산에 오른다
철쭉꽃 보러 왔는데 여태 꽃은 안보이고
무작정
보고픈 마음에 샛길로 접어든다
비바람 견딘 봉오리들 정상은 저 멀리
쏟아지는 빗줄기에 되돌리긴 너무 멀다
이정표, 벗어버린 짐이
발목 잡는 내 안의 붉은 산야
♧ 노숙의 시 - 서순영
겨울을 목전에 둔 노숙자의 마음은 춥다
목젖 겨우 축이던 삶, 그나마도 떠날 시간
김장철 제 소명 앞에 배추 한 포기 숨죽인다.
♧ 산굼부리 억새꽃 - 오영호
누가 펼쳐 놓았나
희끔한 비단 치맛자락
흙 묻은 추억을 깨워
반질반질 닦아내는
바람의
젖은 손길 따라
춤사위가 곱습니다.
올 곧은 햇살 한 줌
엉겅퀴 꽃술에 앉아
한 뜸 한 뜸 수를 놓는
쪽빛 하늘 아래
굼부리,
억새꽃 물결 사이로
만행(卍行)길도 보입니다.
♧ 활 - 이애자
사는 게 왜 이렇게 팽팽해야 하는가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열두 달 돌려막기로 삶을 조율하는 나
기본에 충실하라고 어깨 힘을 빼라고
한겨울 매운 선율에 귀를 열어 두라고
부르르 삭정이 끝을 긋고 가는 모슬포바람
♧ 영혼의 소리 - 이용상
아직도 신촌에는
난 한 촉 남아 있지
이른 새벽 창가에서
아픔을 인내하며
저 혼자
천상의 소리
내 가슴을 적신다
♧ 가파도 - 이창선
모슬포 선착장에
진과가
멱서리 가득
사십년 전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 뱃길
가파도
참외가마니 나르던 똑닥선 배
♧ 12월 - 장영춘
올 한해
수고로움이 낮은 발로 다가와
하나 둘
다짐들을
낙엽처럼 떨구고
슬며시 손을 내민다.
어제 길을
지
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