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발글발 릴레이 제주 참가기
♧ 17일 오후 2시에 제주 도착
(사)한국작가회의 산하 여성과인권위원회(위원장 조정)와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황규관) 이 기획한 생명평화 걷기 글발글발 평화 릴레이가 20011년 12월 26일 임진각을 출발해 1번 국도를 따라 릴레이식으로 전국의 4백여 작가에 의해 이어오다 목포작가회의(회장 최기종) 회원들에 의해 카페리호 편으로 17일 제주항 제6부두에 도착했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우편행낭과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건드리지 마라’와 ‘제주 해군 기지 백지화’ 깃발을 들고 온 목포 최기종 회장은 제주 1구간인 제6부두 - 광양로터리 - 제주오일시장을 같이 걷고, 하루를 묵은 뒤 18일 이도했다. 이어 18일에는 제2구간인 제주오일시장 - 애월리사무소, 오후에 제3구간 애월리사무소 - 금릉 일성콘도로 이어졌다.
♧ 목포작가회의 최기종 회장의 이야기(재구성)
우리나라의 보물이자 세계의 보물인 제주는 ‘환경과 평화’의 상징으로 알고 있다. 그것으로 족하지, 해군기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아름다운 쪽빛 바다와 그에 어울리는 검은 바위, 그리고 한라산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원초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강정하면 제주에서도 물이 좋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바위를 깨부수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는 게 말이 되느냐? 50여 년 전 목포 앞바다의 유명한 삼학도를 육지와 연결하기 위해 매립했었는데, 복원하려니 원형대로 되지도 않고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마찬가지로 강정에 해군기지를 만들었다가 다시 복원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도 복원할 수 없을 것이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새로 만들기보다는 목포나 진해의 해군사령부를 조금 더 넓혀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비용도 덜 들고, 민원도 덜할 것이다. 이번에 제주가 세계7대 자연경관에 들었는데, 아름다운 해안을 파괴시켜 모처럼 소문 듣고 달려온 세계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 평화 선포문 - 제주, 순비기꽃으로 문지른 평화의 가슴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이 겨울에 작가들이 왜 걷습니까?”
우리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평화 감수성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지역을 두고 왜 굳이 바다 건너 강정마을로 가는가 묻기도 합니다.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생명들이 제주 강정마을에서 우리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삶터를 헐값에 강탈하는 근육질 토건 그림자들이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휩쓸어 왔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릎 꿇었으나 강정마을 사람들은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대대로 살아온 아름다운 마을을 지키며 어부로, 농부로 살아갈 평화생존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저항이 왜 옳은지 25박 26일을 걸으며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은 한 마을 사람과 자연이 죽을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냉담하게 개발 이익만을 계산하는 가공할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좌절하고 슬퍼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겨울, 짐을 받아 진 당나귀들처럼 걷겠습니다.
흰 눈이 푹푹 나린다 해도, 우리 질문을 단단히 붙들겠습니다.
어머니가 품에 안고 어르는 소중한 존재였던 ‘한 사람’ 들의 삶에 대해.
‘죽도록’ 열심히 일하는데 헛바퀴 돈 듯 빈손인 가난에 대해.
우리 아이들 미래가 자꾸만 절망 쪽으로 기우는 까닭에 대해.
내가 하는 문학이 이 모든 고통을 위해 별 힘이 되지 않는 열패감에 대해.
군함의 기름띠와 개발 미끼인 시멘트 구조물로 뒤덮인 제주가 아니라
평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마을이 있는 제주에 대해.
내년 봄에 심으려고 받아둔 몇 가지 꽃씨에 대해.
한바탕 평화, 한바탕 승리를 선포합니다!
♧ 바람의 노래 - 정희성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
귀 기울여 보라 제주에서는
바람도 파도소리를 낼 줄 안다
여기는 천상에 속한 나라
누구든 이곳에 오려거든
무기를 버리고 오라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노래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
바람이 노래하는 이 장엄
하늘이 바다고 바다가 하늘이다
♧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건드리지 마라 - 김경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풀 한 포기, 보말 하나라도 다치게 마라
바람 한 점, 파도 한 겹조차 거스르지 마라
시멘트덩이 하나, 쇳조각 하나 들이대지 마라
죽음의 말 한 마디, 파괴의 언어 하나 내뱉지 마라
폭력의 몸짓 하나, 허튼 전쟁의 아픈 기억 하나 보태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바라노니
사람 하나, 그 모든 생명 하나 감히 다스리려 마라
♧ 환영사 - 김창집
잘 오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평화의 보물섬으로 잘 찾아 오셨습니다.
소한, 대한에 집 나간 사람 기다리지 말라 했는데, 눈보라를 뚫고 뜨거운 가슴으로 언 땅을 녹이며 이어 걸어온 400여 작가 여러분들은 정녕 평화의 사도들이십니다. 그 노고에 뜨거운 찬사를 보냅니다.
정녕 ‘강정 평화’의 메시지를 안고 섬으로 찾아오신 당신들을 우리 제주작가 회원들 역시 뜨거운 가슴으로 안으렵니다.
성경은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병법’이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평화를 무기로 내세우는 우리 제주섬을 무장하는 일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길입니다.
저 하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진주만은 왜 폭격을 당했습니까? 그곳에 해군 함정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키나와는 어째서 엄청난 주민이 군인과 함께 죽어갔습니까? 너무 아름답고 좋은 섬에 살아서? 아닙니다. 거기엔 막강한 해군사령부가 있어서가 아닐까요?
이제 우리가 왜 이렇게 나섰는지 명백해졌습니다.
평화의 섬은 화를 자초하는 군함이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를 실천으로 옮겨주신 (사)한국작가회의 산하 여성과인권위원회 조정 위원장과 자유실천위원회 황규관 위원장의 노고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우리 제주작가회의 회원들도 그 깊은 뜻을 이어받아 아름다운 길을 걸어 붉은발말똥게가 기다리는 강정,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강정에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