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용꿈 꾸세요
♧ 제주 바다를 지키는 돌들
글발글발 제주 릴레이 사흘째 되는 날 오후
대정읍 영락리 해안도로를 걷다가
바다를 지키는 이 돌들을 보았습니다.
해군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당당하고
여유롭게 제주의 서남단을 지키는 돌들,
평화의 섬은 이렇게 지켜야 한다는 듯이
믿음직스럽고 낭만적이었습니다.
용의 해
정녕 용꿈이라도 꿔야 할까 봐요.
여러분도 용꿈 꾸세요.
♧ 임진년을 맞으며 - 伏天 안종환
아들아
새벽이 열리는 소리 들으러 가자
어둠을 헤치고 달려오는
상서로운 빛
너를 잉태했을 때 그리던 꿈
네가 터뜨렸던 첫울음
그 환희와 두근거림이
지금도 끓고 있구나
흑암을 밀어내기 위해
지구는 얼마나 부지런히
어지러운 맴을 돌았겠느냐
찢어지지 않고 피는 꽃
고통 없이 태어나는 생명이
어디 있으랴
광활한 대지를 박차고 떠오르는
여명의 빛
저 밝은 정기 머금고
우리도 세상의 등불이 되자
강바닥 이름 없는 돌멩이들도
강물을 노래하게 하고
벌거벗은 나뭇가지도
새들의 잠자리가 되어주잖니
너와 나의 듀엣은
독창보다 아름다울지니
어서 일어나 땀 흘리며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자
아름답고 풍성한 과일 나무를-
♧ 아침 바다 - 홍문표
아침 햇살에
바다는 온통 코스모스 꽃밭이다
달려도
달려도
꽃비 내리는 벌판
바람이 흔들고
구름이 손짓해도
웃기만 한다
대지를 어루만지며
구만리 하늘마저 품어버린
당신의 사랑처럼 너그러운 바다
새벽의 아침부터
열두 겹 치마폭에 어두움 가리우고
역사의 포말을 빗질하며
칠보단장한 신부야
라일락 향기처럼 달콤한 체취
한결같이 시퍼런
태고의 숨결
멀리 하늘의 기폭을 세우고
어부는 투망을 한다
용꿈을 꾸고 있는 바다
그 깊은 가슴에 투망을 한다
그물에 걸린 싱싱한 바다
바구니에 넘치는 아침바다
♧ 산책기散策記 3 - 신규호
사나운 매를 닮은 수리산 기슭에 한밤중이면 용이 내려와 물을 마신다는 용정龍井이 있습니다. 산의 배꼽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받아 마시러 가는 날이면 용의 긴 몸뚱이가 쓸고 지나간 하늘에 샛별이 맑고 밝게 빛납니다. 진보랏빛 수리산이 허공 한가운데 우뚝 솟아 두 날개를 펴 알을 품듯 용정을 덮고 용꿈을 꾸듯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마을에서 시작한 산책길은 수리산 발등성을 지나 배꼽까지 이어지지만, 새벽 약수를 한 컵 마시고 나면 힘찬 산세를 타고 하늘 한가운데를 향해 신기한 기운이 치솟습니다. 목마른 용이 목을 축이면 구천까지 날아오를 힘이 생기듯, 나도 하늘을 향해 오르는 용꿈을 꾸기 위해 새벽이면 수리산 기슭에 가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
♧ 우리들을 위해 남기는 우리들의 이야기 - 김해화
아기를 낳아라
열이고 스물이고 아이들이 자라서
몽둥이 앞에 몽둥이가 되고
총칼 앞에 총칼이 되는
용가리 통뼈들이 될 때까지 누이들아
개꿈 용꿈 가리지 말고
딸 아들 가리지 말고
쉰이고 백이고 아기를 낳아라
주먹이 단단한 아이들 목소리가
우렁찬 아이들
모여서 거센 불길이 될 때까지
함성이 될 때까지
곰팡내 나는 족보 따지지 말고
학력 경력 외모 가리지 말고
가난해도 주눅들지 않는
속이 꽉 찬 애인을 만나거라
춥고 배고픈 밤일 수록 뜨거운 사랑을 하거라
사랑이 깊으면 눈물도 나리
천이고 만이고
속이 꽉 찬 아이들을 낳아서
뜨거운 눈물도 물려주어라
누이들아
이 시대 가득가득 아기를 낳아라
아이들이 자라서
끓어 넘치는 사랑으로 자라서
빛나는 혁명이 될 때까지
♧ 우언 2 - 권달웅
버드나무 푸른 그늘에 앉아 하루 종일 버드나무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어 봅니다.
흰 고무신을 베고 누운 노인은 버드나무 그늘에 배꼽을 드러내놓고 불로장생 용꿈을 꾸며 쉬고 있습니다.
가지가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야,
가지가 휘어도 끝내 꺾이지 않는
푸른 버드나무야,
너는 뜻이 깊다.
푸르기 위해 휘어지고
휘어짐으로써 꺾이지 않는
버드나무야,
바람에 흔들리면서
더 깊은 마음에 이르는 푸른 힘을
내 단 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더 넓은 마음에 이르는 푸른 힘을
내 다 안다.
♧ 겨울 바닷가에서 - 하영순
찢어진 치맛자락 펄럭이는 바다
매서운 바람도 잊은 채
신들린 무희처럼 하얀 깃발 날리며
두 팔을 벌렸다.
바다를 닮았을까
갈매기 하모니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가 고향인
보는 것이 파도뿐이고
보이는 것이
물결이니 그를 닮았으리라 갈매기
저 갈매기 하얀 날개 짓
바다는 그 바다인데
볼 때 마다
올 때 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방인을 맞는 자세가 뭘까
한 자리에 서서 보아도
해넘이 바다는 또 다르다
갈매기도 하루를 끝내고 둥지 찾아 서두르는 시간
바다를 짊어지고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뱃고동 소리
어둠을 뚫고 삶을 짊어진 저 배의 등에는
눈이 몇 개나 달렸을까
삶이 무거우면
뱃고동 소리를 어깨에 충전 한다
바닷가에 서서
♧ 겨울 바닷가에서 - 이나영
수평선 너머에서 그리움이 달려오더니
암벽에 부딪쳐 포말로 부서지고
잘 생긴 그리움과 독백하고 있는 내 가슴에
질풍처럼 달려와
아름다운 사색을 흔들어 버린다
울부짖는 목소리
하얀 거품 되어 스러지고
다시금 몰아다부치는 너의 용기는
일어서지 못하고 파도에 삼키어져 사라져 버렸다
반복되는 너의 장난은 장난이 아니라
한입에 먹어 치우려는
비우지 못한 욕심. 타인을 무너뜨리려는
허상이구나
♧ 어느 날 바닷가에서 - 이영춘
네가 내게서 잊혀지는 날
네 이름을 부르리라
내 가슴속 파도가 잠자는 날
네 이름을 새기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무말도 하지 않으련다
오직 침묵으로 잊는 연습을 하리라
끝없이 밀리고 밀쳤던
너의 흔적
지우고 또 지우리라
파도처럼 밀려오느 네 영상
기억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리라
그리고 나는 텅 빈 바닷가에 앉아
그 다음 일은
아주 망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