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서향 향기 솔솔
마지막 눈이지 싶은 눈이 소복이 쌓인 아침
향기를 따라 가보니 서향(瑞香)이 수줍게 피었다.
오일장 오름 제자네 식당에 갔다가
그 앞에서 평소 갖고 싶었던 화분을 만나
몇 번이고 망설이다 사온 것이다.
평소 야생화는 ‘그 꽃이 피어 있는 현장에서
보는 것이 아름답다.’는 지론이 있지만
백서향은 구좌읍의 오름이나 곶자왈에서
가끔씩 볼 수 있지만 이 녀석은 제주에서
야생하지 않아 봄 향기를 맡으려고….
흔히 천리향이라 불리는 서향(瑞香)은
팥꽃나뭇과의 상록 관목으로 높이는 1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인데 두껍고 광택이 난다.
3~4월에 흰색 또는 붉은 자주색 꽃이 두상꽃차례로
전년생의 가지 끝에 모여 피나 대개 수나무라
열매를 맺지 못한다. 중국이 원산지로 남부 지방에서 재배한다.
♧ 서향瑞香 - 박상천
어스름 저녁 무렵
어느 정원에서 무심코 만난
서향이라는 나무 이름 팻말이
문득 내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슬픔을 휘저어놓았다.
잊고 지냈던 그 이름,
서향이라는 이름 하나가
지나간 시간들을 휘돌아 오며
다시 슬픔의 흙탕물을 일으켰다.
뜨락에 꽃들이 피었다 지는 것이 괜시리 안타까와 아버지와 둘이서 올봄에는 주고받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나와놓고 보니 실재만큼 이쁘지는 않은데도 보지 못했던 너희들에게 보이고 싶어진다.
저 꽃들을 몇 해나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담담한 표정인데 듣고 있는 나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니 역시 나이탓인가 부다.
일년 내내 꽃이 피게 하고 싶어 재작년에 넝쿨장미를 심었는데 그것이 지금 담을 타고 가며 한창 맺고 피고 한다. 진홍색이 얼마나 이쁜지… 금년 봄에는 서향을 제법 큰 것을 사다 심었다. 내년 이른 봄에 좋은 냄새를 풍길 것이고 가을에는 금목서가 노랗게 피며 향내를 보낼 것이고 겨울 들면서는 산다화가 필 것이다. 꽃이 피고 질 때마다 멀리 있는 너희들 생각이 나는구나.
왜 그때는 편지에 씌어진
어머니의 그리움을 읽을 줄 몰랐을까
뜨락에 꽃이 피고 질 때마다
멀리 있는 자식들을 그리워하시던 어머니
내년 봄에는
좋아하시던 서향나무 한 그루 묘소 곁에 심어드리면
어머니의 외로움이 조금은 덜어질까
서향이라는 이름이 일으킨
이 슬픔의 흙탕물이 조금은 가라앉을까
♧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희숙
살아서 외로웠던 사람
더는 외롭지 말라고
선물처럼 두고 온 서향 한 그루에서
죽어서 더 그리운 사람들이
별꽃처럼 피었다는 소식이
안부처럼 들려
반가운 마음에
천리를 걸어서도 만나고픈
이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오랜만의 안부가 마음에 걸려
정작 들려주고픈 이야기는
서향 꽃잎에 묻어 둔 채
안녕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그곳도 봄인가요라고 고쳐 썼다 지우고
살아서 외로웠던 사람에게라고 써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성급하게 건져 올린 소식들을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