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태우는 불꽃
이번 겨울엔 제주에도 추위가 지속되어
꽃들의 행보가 늦다.
꽃샘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데
찬 하늘을 녹여내는 불꽃
마땅히 올려놓을 꽃이 없어
지난 새별오름 들불축제 때
찍어두었던 사진을 올려본다.
♧ 불꽃놀이 - 강세화
피 도는 가슴마다
신선한 감격으로
칠흑(漆黑)의 화폭(畵幅)에다
꽃 그림을 그린다.
우리들 사랑도 저리
철철 넘는 박수소리.
눈부신 인기척이
색색(色色)으로 피어나면
잠 잊은 새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총총히 강둑을 메운
만발하는 환호성(歡呼聲).
열리는 하늘 새로
풍성(豊盛)하게 흐르는 꿈
삭정이에 불 지피던
어린 날이 되살아나
아직도 내 속에서는
키가 크고 있구나.
♧ 불꽃놀이 - 김명희
언제부턴가 가슴이 뜨거웠다
내리 누르면 누를수록
치솟는 그리움
얼마나 오랜 날 삭혔기에
부서지는 아픔이 저리도 찬란한가
순간의 영광을 위하여
허공에 몸을 날리는 뜨거운 함성
고요의 물살을 가르며
한 무더기 꽃잎으로 떠간다
아득히 어둠을 향해 전진하는
수천 수만의 꽃잎이
눈부신 소멸 없이는 갈 수 없는
먼 곳으로 흐르는구나
격렬한 내 사랑
아프게 지고 있는 휘슬소리 끝
나 또한 처절히 바스라지고 나면
내일은 또 누가 그리워 할 것인가.
♧ 불꽃놀이 - 하두자
밤이 깊을수록
주린 짐승의 눈동자처럼
빛나던 이름들
타오르는 신열과 갈등으로
손을 내민다
너와 나
함께 하기엔
햇살과 어둠의 거리가
너무 멀었을까
애써 어둠의 깊이로 재워 놓은
활활대는 불씨
삐걱이는 세상의 욕망과 허위 속에
사랑한다는 그리운 그 말
살과 뼈로 번져가는 불꽃
그 미망의 길
♧ 불꽃 축제 - 김정호(美石)
내 삶도
저렇게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
내 꿈도
저렇게 높이 솟아오를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더 처절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왜 진즉 몰랐을까
그래 열망으로 솟아라
그리움으로 피어 올라라
어차피 한 번은
신명나게 놀다
바람처럼 가볍게
기꺼이 갈 삶이라면
축제가 끝난 후
너를 다시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화려하게 피었다가
흔적 없이 사려져 가라
♧ 불꽃놀이 - 박공수
어둑한 강변을
가르는 섬광.
고고(呱呱)의 울음인가
마지막 절규인가
사랑하는 이
먼 데서라도 보라
긴 긴 날 준비한 생명
단번에 불살라
한 송이 詩만을 밤 하늘에 올려놓고
이울져 강물로 뛰어든다.
아,
나를 정지시키고
질긴 강물로 떠내려가는
저
미운
요절(夭折)!
♧ 불꽃이 되리라 - (宵火)고은영
한 때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고 싶다.
산 넘고, 강도 건너고
이 도시를 미련없이 버리고
동심처럼 들뜬 가슴도 되찾아
보고픔에 울어도 보는
아름다운 감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이 있고
강변에서 쓸쓸히
오고 간 길을 뒤 돌아보는
이 처절한 고독은
조각조각 기워진 아픔과 같아서
되새기며 걸을수록
공허할 뿐이지만
아직 한 조각
사랑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온전히 나를 피워
아름다운 영혼
찬란한 불꽃이 되리라
♧ 불꽃놀이 - 권도중
어두운 하늘로 날아오른다
환희란 환희 사치란 사치
어둠 깊숙이 쏘아 올리면
터지면서 피어나는 불의 꽃 불의 축제
태워 없어지는 순간이 기쁨이라면
한 줌 재 되어 날리도록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외출이고 싶다
일생 한 번 이런 날이 없으랴
못 이룬 고난의 날들 접어둔 갈피들
불꽃처럼 타고 싶은 숨죽인 소원들이
불꽃놀이로 터진다
어머니의 브로치 부러진 브로치까지
누이의 꽃이란 꽃 죄다 따서
이제 짐이란 짐 다 태워 버리고
보이지 않는 마당에까지
갇힌 사람들의 소원이 일시에 폭발한다
뜨거운 눈물 서러워 삼키던 밤하늘도
화려한 화살에 꽂힌다
타고 남은 재 물에 떠내려가도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의 화살 불꽃놀이
♧ 불꽃 사랑 - 오보영
내가 타오르는 건
오직
너를 위해서다
얼어붙은 네 몸을
녹여주려고
굳어잇는 네 맘을
풀어주려고
내 몸 태워
네게
열기 뿜는다
식어버린 네 열정
다시
불 붙여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