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추위를 태우는 불꽃

김창집 2012. 2. 10. 00:04

 

이번 겨울엔 제주에도 추위가 지속되어

꽃들의 행보가 늦다.

꽃샘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데

찬 하늘을 녹여내는 불꽃

 

마땅히 올려놓을 꽃이 없어

지난 새별오름 들불축제 때

찍어두었던 사진을 올려본다.

 

 

♧ 불꽃놀이 - 강세화

 

피 도는 가슴마다

신선한 감격으로

칠흑(漆黑)의 화폭(畵幅)에다

꽃 그림을 그린다.

우리들 사랑도 저리

철철 넘는 박수소리.

눈부신 인기척이

색색(色色)으로 피어나면

잠 잊은 새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총총히 강둑을 메운

만발하는 환호성(歡呼聲).

열리는 하늘 새로

풍성(豊盛)하게 흐르는 꿈

삭정이에 불 지피던

어린 날이 되살아나

아직도 내 속에서는

키가 크고 있구나.

 

 

♧ 불꽃놀이 - 김명희

 

언제부턴가 가슴이 뜨거웠다

내리 누르면 누를수록

치솟는 그리움

얼마나 오랜 날 삭혔기에

부서지는 아픔이 저리도 찬란한가

순간의 영광을 위하여

허공에 몸을 날리는 뜨거운 함성

고요의 물살을 가르며

한 무더기 꽃잎으로 떠간다

아득히 어둠을 향해 전진하는

수천 수만의 꽃잎이

눈부신 소멸 없이는 갈 수 없는

먼 곳으로 흐르는구나

격렬한 내 사랑

아프게 지고 있는 휘슬소리 끝

나 또한 처절히 바스라지고 나면

내일은 또 누가 그리워 할 것인가.

 

 

♧ 불꽃놀이 - 하두자

 

밤이 깊을수록

주린 짐승의 눈동자처럼

빛나던 이름들

타오르는 신열과 갈등으로

손을 내민다

너와 나

함께 하기엔

햇살과 어둠의 거리가

너무 멀었을까

애써 어둠의 깊이로 재워 놓은

활활대는 불씨

삐걱이는 세상의 욕망과 허위 속에

사랑한다는 그리운 그 말

살과 뼈로 번져가는 불꽃

그 미망의 길

 

 

♧ 불꽃 축제 - 김정호(美石)

 

내 삶도

저렇게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

내 꿈도

저렇게 높이 솟아오를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더 처절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왜 진즉 몰랐을까

그래 열망으로 솟아라

그리움으로 피어 올라라

어차피 한 번은

신명나게 놀다

바람처럼 가볍게

기꺼이 갈 삶이라면

축제가 끝난 후

너를 다시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화려하게 피었다가

흔적 없이 사려져 가라

 

 

♧ 불꽃놀이 - 박공수

 

어둑한 강변을

가르는 섬광.

고고(呱呱)의 울음인가

마지막 절규인가

 

사랑하는 이

먼 데서라도 보라

긴 긴 날 준비한 생명

단번에 불살라

한 송이 詩만을 밤 하늘에 올려놓고

이울져 강물로 뛰어든다.

 

아,

나를 정지시키고

질긴 강물로 떠내려가는

미운

요절(夭折)!

 

 

♧ 불꽃이 되리라 - (宵火)고은영

 

한 때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고 싶다.

 

산 넘고, 강도 건너고

이 도시를 미련없이 버리고

동심처럼 들뜬 가슴도 되찾아

보고픔에 울어도 보는

아름다운 감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이 있고

강변에서 쓸쓸히

오고 간 길을 뒤 돌아보는

이 처절한 고독은

조각조각 기워진 아픔과 같아서

되새기며 걸을수록

공허할 뿐이지만

아직 한 조각

사랑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온전히 나를 피워

아름다운 영혼

찬란한 불꽃이 되리라

 

 

♧ 불꽃놀이 - 권도중

 

어두운 하늘로 날아오른다

환희란 환희 사치란 사치

어둠 깊숙이 쏘아 올리면

터지면서 피어나는 불의 꽃 불의 축제

태워 없어지는 순간이 기쁨이라면

한 줌 재 되어 날리도록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외출이고 싶다

 

일생 한 번 이런 날이 없으랴

못 이룬 고난의 날들 접어둔 갈피들

불꽃처럼 타고 싶은 숨죽인 소원들이

불꽃놀이로 터진다

어머니의 브로치 부러진 브로치까지

누이의 꽃이란 꽃 죄다 따서

이제 짐이란 짐 다 태워 버리고

보이지 않는 마당에까지

갇힌 사람들의 소원이 일시에 폭발한다

뜨거운 눈물 서러워 삼키던 밤하늘도

화려한 화살에 꽂힌다

타고 남은 재 물에 떠내려가도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의 화살 불꽃놀이

 

 

♧ 불꽃 사랑 - 오보영

 

내가 타오르는 건

오직

 

너를 위해서다

 

얼어붙은 네 몸을

녹여주려고

굳어잇는 네 맘을

풀어주려고

 

내 몸 태워

네게

 

열기 뿜는다

 

식어버린 네 열정

다시

 

불 붙여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