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헌 시집 ‘바람의 칸타타’
* 가파도 가는 배에서 본 마라도
* 마라도 선착장에서 본 제주 본섬
송문헌 시인께서 시집 ‘바람의 칸타타’를 보내 왔다.
2007년 3월에 마라도 기원정사에서 머물며 글을 썼던 적이 있다고
올해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고 싶다는 글과 함께.
작년 우리 제주작가회의에서는
마라도 작가 창작 스튜디오를 운영한 적이 있다.
작가 레지던스 사업의 하나로 마라도 기원정사에
5개의 집필실을 마련하여 무료로 그곳에 머물면서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올해 그 사업에 다시 지원이 나와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4월 중에 제주작가회의 카페(http://cafe.daum.net/jejuwriters)
‘마라도 창작 스튜디오’에서 확인하면 된다.
송문헌 시인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장이며
시집으로 ‘눈이 내리면 외포리에 가고 싶다(1996)’,
‘아라리는 아직도 이 거리에 있다(2003)’,
‘그물에 걸린 바다(2005)’,
‘바람의 칸타타(2008)’ 등이 있다.
시집에서 시 몇 편을 골라
몇 년 전에 찍은 마라도 사진과 함께 내보낸다.
♧ 시인의 말
한 낮이 지나 찾아왔던
육지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그곳은 정지된 듯
미동도 하지 않는 빈 섬이 된다
작년 이른 봄 나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 절집 작가집필실에서
한 달여를 머문 적 있다
유리의 섬, 유배자들이 그랬을까?
부드럽게 때론 무섭게 섬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바람뿐,
무료함을 달래 듯 창문너머 먼먼
수평선으로 어쩌다 여객선이 가고
정지된 섬은 오가는 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내게 나는 바람에게
무슨 의미일까?
* 마라도 애기업개당
♧ 아직도 마라도에서 애기업개는 울고 있는가
--바람의 칸타타ㆍ20
오래전 모슬포에 살고 있었다는 이씨부인, 부인은 어느 날 물질을 나가다 수풀 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아이를 데려다 딸처럼 길렀다 한다. 여덟 살 될 즈음에 이씨 부인에게도 다시 아기가 태어났고 여자아이는 자연스레 아기를 봐주는 애기업개가 되었다고, 그 시절 마라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금단의 땅, 섬 주변은 전복 소라 굴 조개며 톳 미역해산물들이 풍부했지만, 그것들을 잡으면 바다의 신이 노해서 거친 바람과 흉작으로 화를 입는다 하여 누구도 접근을 꺼려했다고, 어느 파도 높은 해 봄, 모슬포 해녀들이 마라도 해안에 배를 대고 소라 전복 엄청나게 많이 잡아 섬을 떠날 준비를 하자, 갑자기 비바람치고 바다는 금세 거칠어져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었다고, 그날 밤 해녀들의 꿈속에 ‘애기업개를 두고 가지 않으면 모두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천둥은 하늘 가득 으르렁거렸다 하네.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 줍서!”
발바닥이 찢어져라 해안으로 달리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으리
바다로 빠져나가는 배는 그러나 뒷모습만 아득할 뿐
잊은 듯 몇 년이 지나 다시 마라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고스란히 육탈의 흰뼈로 남아 바다를 향해 울부짖고 있는 애기업개 소녀의 절규를 환청으로 듣고 있었더란다.
애기업개당을 짓고, 소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길일엔 지금도 제물을 바치고 정성스레 제를 올리는 그 섬사람들, 정성의 효험이었을까 섬을 빙 둘러 온통 가파른 절벽이지만, 그 험한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은 물론, 바위투성이의 바닷가에서 묘기 부리듯 노는 마을 아이들조차 아직도 다치는 일 한번 없었다 하네
어쩌다 외지사람들이 애기업개당을 함부로 할라치면 일주일 내내 바람이 불어 꼼짝없이 섬에 갇히게 한다고, 이틀이 멀다며 밤이면 창 밖에서 소리 높여 슬피 우는 그 소녀는 아직도 어미 잃은 설음에 섬을 떠돌고 있는지
봄이 와도 마라도엔 물새소리 한 번 들리지 않는다
* 마라도 북서쪽 해식바위
♧ 어둠의 여자
--바람의 칸타타 ․ 45
불빛 하나 둘 젖은 얼굴을 내미는
저물녘 아스팔트 물낯바닥
무표정한 어둠의 여자들이 꽃불을 피웁니다
어디선가 스베틀라나의 “나 홀로 길을 가네” *노래
비바람치는 거리에 눈물처럼 묻어납니다
우중충하게 저무는 낡은 빌딩 숲
화려한 네온 불빛도 쇼윈도우도 보이지 않는
뒷골목엔 초저녁부터 장맛비가 흘러넘치고
어둑 음습한 문전마다 빗발의 벗은 어깨만 출렁입니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색색가지 우산 틈새로
누군가 불쑥
남루한 웃음을 던지다가 빗속으로 사라져가고
삼삼오오
사람들로 넘쳐나던 서울의 뒷골목은 늦도록
늙어버린 빗줄기 잠시도 그칠 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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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절한 러시아 시인 레르몬또프의 시에 곡을 붙인 러시아 민요.
슬픔 가득한 러시아 가수 스베틀라나가 부른 노래
♧ 적막강산
--바람의 칸타타 ․ 21
(거리마다 은행나무들 금과 은으로 물들어, 얼굴을 스치는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시간을 털어냅니다 시월이 저무는 지난 주말 한 낮, 막내도 장가를 보냈습니다 새아기는 하늘하늘 코스모스 맑은 눈을 가진 아이랍니다 얼굴에 가득 아직도 개구쟁이 티 가득한 그 애)
1.
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이 스산합니다 그 아이들은 지금쯤 어느 낯선 하늘 어느 꿈 아래서 잠들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은 생존의 고달픔이 무엇인지 모른 체 한껏 젊음과 새 출발을 자축하고 있으려니, 고마울 뿐입니다 그 애들이 세상을 알아가며 힘겨운 날에도 물러서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하며 오직 축복이 가득 하길 일월성신께 축원하고 기원 할 뿐입니다
집안엔 저뿐, 에미는 그날 찾아준 벗들과 함께 하느라 종일 외출중입니다. 비워둔 집안은 어둑 저녁 현관을 들어서자 온몸에 가득 냉기가 낯설게 다가옵니다 불을 밝히자 환하게 막내의 모습이 곳곳에서 다가섭니다 벗어놓은 신발을 보니 금방이라도 ‘늦었습니다!’ 하며 그녀석이 현관을 들어서는 것만 같습니다 녀석은 떠나갔지만 그녀석이 온 집안에 가득 합니다 차마 그 아이 방문을 열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2.
머지않아 들녘엔 눈 내리고 벌거벗은 가로수 저 혼자 새봄을 꿈꾸겠지요 차가운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저 가로수 같이 가진 것이 넉넉잖아 무엇 하나 갖춰주지 못한 체 제금을 내야하니 천둥벌거숭이를 차가운 겨울바닥으로 내모는 것만 같아 제 에미는 몇 날 며칠 눈물을 찍어내니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잠이 들었는지 잠든 척 하는 것인지 에미는 기척 없고 세상이 적막강산입니다 어둑 곳곳에선 여전히 막내가 휘젓고 다니지만 모른 체 이만 불을 끄렵니다, 아버님
* 마라도 등대
♧ 소리를 위한 겨울 랩소디(rahpsody)
-- 바람의 칸타타 ․ 49
쿵쿵쿵 발자국 소리 오늘도 어김없이 막일 나가는 옆집 김씨 굽은 어깨, 서둘러 골목을 내려가는 둔탁한 발자국소리, 덜커덩덜커덩 바람에 머리채를 흔들며 달려가는 기차소리, 멀리 끊일 듯 이어지는 자동차 경적소리, 두부장수 왜장치는 소리, 이따금 녹슨 철대문을 흔들어대는 바람의 외마디소리
하야니 낡은
창유리에 서리꽃 화안하니 피어나는 어둑 신새벽
* 가파도에서 본 마라도
♧ 넋의 유배지 마라도
-- 바람의 칸타타 ․ 52
어느 장벽이 이보다 높고 완고하랴
종일 사나운 이빨 가는 파도를 거느린 채
마라도 앞바다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눈앞에 번히 황금색 놀이 타는 이어도를 두고도
뱃머리를 제자리에서 맴돌게 한다
출렁일수록 제 안에 갇혀 버리는 제주바다
바다는 먼 신기루에 몸 다는 나그네를 거두어
어둡고 가파른 제 안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이어도는 멀리 있지 않다고
흐린 눈이 버리고 간
내 안에 꿈틀거리는 땅으로 살아 있다고)
작은 암초에 매인 검붉은 욕망들 벗어던지고
작고 가여운 것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어야 한다고
내 곁에 쓰러진 것들을 일으켜 세우며
길고 먼 밤을 벗어나 새벽 바다에 닿아야 한다고
등 뒤에 마파람 불어 수만 섬을 풀어 놓는다
마라도 파도의 완강한 팔뚝에 갇힌 밤
비로소 내 안으로 트여오는
오랜 바람의 길 하나를 건진다
내 안에 오래 버려두었던 넋의 유배지 마라도
또 다른 이어도에 먼 심해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 마라도 가는 배에서에서 본 산방산과 한라산
♬ Svetlana - Ja Vais Seul Sur Ia R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