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변산바람꽃 기지개

김창집 2012. 2. 27. 11:46

 

한 달에 한 번씩 찾아 보살피는 왕이메

우리 오름오름회가 담당 관리하는 오름이다.

모처럼 남쪽 봉우리에 올랐다가 남쪽으로 올랐다.

분화구에 흩어진 돌들을 대충 치우고 달려간

남쪽 숲에서 이 변산바람꽃을 찾아냈다.

시간이 조금 일러서 덜 벌어진 것들이 많았으나

쌀쌀한 날씨 속에서 봄이 왔음을 각인시킨다.

 

변산바람꽃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서는 전북 진안군 마이산, 내변산

전석지에서 자생했으나 지금은 제주에도 널리 퍼져 있다.

3-4월에 개화하며 멸종위기 식물로 보호받고 있다.

 

 

♧ 꽃샘추위 - 이종욱

 

살아서 갚을 빚이 아직 많다

새벽 공기를 돌려야 할 집이 아직 많다

죽어서도 물음을 묻는 무덤이 아직 많다

 

우리 발에 올가미가 걸릴 때

우리 목을 억센 손이 내리 누를 때

마주보는 적의 얼굴

가거라

한치도 탐하지 말라

몇점 남은 우리 몸의 기름기

겨울의 마지막에 아낌없이 불을 당겨

겹겹이 쌓인 추위 녹일 기름

한치도 탐하지 말라

 

 

우리의 머슴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가져가거라

마주잡는 손과 손을 갈라놓는 찬바람

꿈에까지 흉측한 이빨자국 찌고 가는 찬바람을

씨 뿌린 자가 열매 거둘 날이 가까왔다

 

번개가 번쩍이는 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안다

갚을 빚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안다

식중독으로 뜬눈으로 새우는 밤

우리는 하늘의 뜻을 버렸음을 깨닫는다

무덤 속에서 살아 있는 불꽃과 만난다

 

바람이 셀수록 허리는 곧아진다

뿌리는 언 땅속에서 남몰래 자란다

 

햇볕과 함께 그림자를 겨울과 함께 봄을

하늘은 주셨으니

 

 

♧ 2월에서 3월로 - 반기룡

 

다소곳하게 머물렀던 지난 날이여

 

목화솜 같은 눈송이

온몸 싸르르 휘감고

겨우내 부름켜 살찌우며

긴 시간 기다리고 있었지

 

이젠 춘풍이 몰아치고

황사바람이 옷깃에 더께처럼 눌어붙어

태연한 척 사색에 잠기고

물관 터지는 아우성이

골목 골목 서성대고 배딴 피라미처럼

수도관은 툭툭 파열음을 내겠지

 

 

2살에서 3살로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성장과 성숙의 전주곡이지

그리고 3월(March)은

행진(March)의 내음이 콕콕 찌르는 달이며

그동안 숨죽여 지냈던 뿌리는 신명이 나고

둥치마다 쏴아쏴아 진액이

홍수처럼 흐르는 전환의 여울목이지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엔

소생과 푸르름의 사연이 알토란처럼 널려 있지

 

 

♧ 깊은 잠 - 장수남

 

칼을 가는 꽃샘추위도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너는

깊은 가슴에 푸른 꿈을 던져 버렸다

 

인간이기에 바다보다 깊은

사랑이 잠재하고

하늘보다 높은 존경심으로 이웃을

사랑한다

 

우리는 작은 둥지에서

텃밭 일구어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얻고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비로서 자신이 결박당했응 때

허탈 좌절 몸부림 최악의 분신으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한 영혼

 

그 것은 만남의 슬픈 인연일까

캄캄한 밤 하늘에

촛불 하나 받쳐 들고

동해에 등불이 피어 오를 때 까지

꿋꿋하게 달리는 기상

네가 나를 잊어만 준다면

너는 깊은 잠에서 다시 태어나리라

 

 

♧ 봄을 여는 강가 - (宵火)고은영

 

잡초가 우거졌던 싱그러움을 벗어

허물처럼 빈 몸으로선 얼어 있는 강기슭

헤드라이트 불빛에

나목의 벗은 몸이 을씨년스럽다

 

그들의 생존도 한 때

물푸레나무처럼 푸름이 무성했고

희고 작은 꽃도 피워 내고

물총새 고운 부리로

물빛 사랑을 실어 나르면

온통 초록이 춤추는 여린 결로

청춘을 노래하였다

 

 

칠흑 같은 어둠에

간간이 상점 선간판을 비추는

초라한 불빛만이 쓸쓸한 거리를 비추고

하늘마저도 달과 별의 은총을 불식시킨 두물머리

 

이미 식어버린 대지

축축한 감촉으로 맴도는

온기 없이 푸르러 깊은 밤

강은, 속울음을 삼킨 채

얼굴에 온통 흰 분으로 분탕질하고

혹독한 추위에 봄을 여는

깊고 깊은 겨울의 잔등에

마지막 내레이션을 펼치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느니

땅속은, 봄의 사랑을 위하여

작은 밀어로 소곤대는

분주한 치장에 빠져

보아라! 들어 보아라!

밤잠을 잊고 들릴 듯 말 듯

봄의 세레나데를 읊조리는 중이다

 

 

♧ 녹토비전 18 - 강 영 환

 

리을 자로 구부린 삼촌의 몸에서 한기가 배여 푸른빛이 비쳤다

오래도록 하늘의 순수한 별빛으로 밤을 이루어 새벽과 아침식탁을 준비하고

숲의 뛰어난 발성연습을 기다린 삼촌

삼촌은 살갗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와 무서움으로 소름이 솟아올랐다

산정에까지 이르러 울부짖음 소리는 메아리 쳤고

하늘에 가 닿은 인간의 울음소리

삼촌은 한 마리 사나운 짐승이 되어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수신호를 띄어 보내며 발작을 일으켰다

산 속에서의 하룻밤이 비워져 갈 때

나는 커다란 별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