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안스리움의 자세에서

김창집 2012. 3. 13. 08:45

 

 꽃 중에는 아주 특이한 것들이 있다. 꽃잎인지 잎인지 모를 형태로 꽃이 없는 겨울 내내 방안을 장식하는 이방인 꽃,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아서 머리속에 각인된 남아메리카산 안스리움. 안테나처럼 귀를 열어놓고 하소연을 들어줌직한 그 소박한 자세를 사랑한다. 공기정화식물이라는데….

 

안스리움은 천남성과에 속하는 600여 종(種)의 아메리카 열대산 풀로 이루어진 속이다. 관엽식물로 몇 종은 꽃이 화려하고 오랫동안 피기 때문에 널리 재배된다. 꽃은 화려하고 가죽질이며 광택이 나는 불염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많은 작은 양성화가 달린 원추 모양의 육수꽃차례가 불염포의 한가운데 둘러싸여 있거나 끼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1957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홍학꽃을 비롯하여 플라밍고안투리움, 크리스탈안투리움, 와로쿠에아눔안투리움 등과 여러 품종들을 실내의 화분이나 온실에 널리 심고 있다. 플라밍고안투리움은 코스타리카가 원산지이나, 나머지 종류들은 콜롬비아가 원산지이다. 반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겨울이나 봄가을에는 햇빛을 쬐어도 좋으나 여름에는 피해야 한다.(브리테니커 백과사전)

 

 

♧ 그러나 인생은 아름답다 - (宵火)고은영

 

스스로 밝아 오는 아침과

고질병에 더불어 잠깬 신새벽

멍하니 내 방에서 하늘을 본다

건너편 지붕에 걸린 무표정한 안테나가

자꾸만 눈에 가시처럼 꽂혀 아프다

재채기와 콧물이 흐른다

 

가장 절실하고 진실되게

내가 살아 있음을 의식하는 순간

시간에서 확실한 목표를 깨닫고

질병과의 획을 긋는 사투가 시작된다

 

아, 살아간다는 것은

절망하는 순간마저 얼마나 끈질기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인가

죽고 싶다던 심연에서조차

얼마나 살기를 희망하는 이율배반인가

 

어둠에 잠긴 구획을 가늠하며

주방으로 휘적휘적 걸어가

블루마운틴 원두커피 한 숟갈을 뜨고

물을 붓고 전원을 켜면

주르르 쏟아지는 맑은 커피

 

알레르기가 시작되면서

그 향긋한 커피 냄새를 감지하는

더듬이를 잃어 버렸어도

사소한 것에조차 습관처럼 몸에 밴

뻔뻔한 애착과 애증의 끊임없는 행각

 

이미 허물어진 중심의 절망에서도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히 최상의 기분을 욕심 하는

수없는 자기 애와 연민으로 이어지는

얼마나 지독하게 아름다워 슬픈 노래인가

 

 

♧ 안테나를 달다 - 김경숙

 

높은 곳이면 어디든 솟아 있어

송수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말에

내 머리 위에도

높다란 안테나를 서둘러 달았다

사르륵 사르륵 눈 내리는 밤에

흩날리는 고요 속으로

이리 저리 사이클을 맞춘다

잡히지 않아 애태우던

들끓던 잡음들이

눈 속에 녹아내려

어둠을 집어 삼키며

허공에 닿아 울려 퍼지는

한 밤의 세레나데,

안테나에 꽃이 핀다

고정시켜 두어야 할 채널

 

 

♧ 시작詩作 - 정경해

 

드디어

장작개비 패듯 마지막 종이 울렸다

세상을 향해 열었던 촉수를 거둬들인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던

큰 입으로 악을 쓰던

촉수를 늘였다 줄였다 귀기울였던

모두가 둥글다던 세상

세상의 등 너머가 궁금해서

핏발을 세운 채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나날들

밤마다 퍼즐처럼 시간을 기워가며

나팔소리를 꿈꾸었지만

부지런한 마라토너가 끊어버린 테이프 뒤로

이 빠진 안테나 툭 떨어지고

붉은 해보다 일찍 잠이 깬 조간신문 위에서

문학공모 당선자 배턴을 치켜들고 하얀 이를 반짝였다

기다림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온몸은 절망이라는 화농으로 깊게 패였지만

나는 다시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 안테나 1 - 전병철

 

한군데로 모여든다

보이지 않는 손을 뻗으면서

흩어져 있던 언어와 화소(畵素)들이

떼를 지어 뭉쳐진다

 

그리고는 갖가지 낱말과 주사(走査)되어

순서대로 줄을 서서

고막을 진동 시키고 눈알을 모으면서

한 줄의 글로서 탄생된다

한 장의 화면으로서 펼쳐진다

 

이 모든 것이 만들어 내는 향연

누군가에 의해서 이끌어 내는

이곳은 눈과 귀의 보금자리.

 

 

♧ 안테나 - 박송죽

    

    - 생각 -

 

그대는 보이지 않는다.

내 생의 한가운데 서서

떠도는 구름이였다가

한 여름 퍼붙는 소나기였다가

하늘 끝 맞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였다가

슬픔으로 노닐다

미로에 방황하다 가는 타관살이에

고압선에 감전된

분해 할 수 없는 추억수첩.

이완되지 않는

통혼의 뇌출혈

 

 

♧ 내 삶의 작은 뜰에도 봄은 왔다 - 한문석

 

해풍이 밀려온다

봄 향기 가득 담은 해풍이

동백꽃 그늘 사이로 해풍이 밀려온다.

 

잔잔한 파도의 포옹처럼

봄은 그렇게 포근하게 찾아왔다.

 

피고 지는 세월의 향기 속에

내 삶의 작은 뜰에도 봄이 찾아왔다.

 

 

수줍은 꽃망울 하나둘 솟아오르고

마침내 한 맺힌 송이송이 예쁜 꽃망울

꽃으로 환생한다.

 

그리운 우리 임의 고운 향기처럼

봄은 사랑을 노래하고

봄은 그렇게 또 새로운 생명을 탄생한다.

 

매화꽃 향기 가득한 내 작은 삶의 정원에도

봄 향기 가득 넘쳐 흐르고

봄은 아름다운 영혼의 고운 미소로

우리들 가슴에 밝고 고운 꽃망울을 활짝 피운다.

 

 

♧ 배반의 계절 - 권오범

 

고질인 파벌 때문에

난기류 흘러

아주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회오리친 피의 역사

 

보릿고개 넘다 치명적인 걸신 바이러스에 감염 된 듯

먹고 살만할수록 더 못 먹어 환장하고

남이 감투 쓰면 멍첨지도 배탈 나 안달하다

명의도 손 쓸 수 없게 끗발에 빌붙어 비나리쳐온 단군의 자손

 

그래도 봄은 청렴결백하리니

끓는 물에 씀바귀나 살짝 목욕시켜

조물조물 무쳐 혀라도 달래다 보면

공천 낙천이 낳은 악취 따라 나간 입맛 돌아올까

 

왜 하필 선거는

그 많은 날들 비켜

꽃 잔치 한창일 때 골라

경쟁적으로 뜨물 먹고 주정해 재를 뿌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