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의 파피오페딜룸
둘째 딸 결혼식을 위해 서울에 갔더니
꽃샘추위인지 바람이 너무 차다.
그러나 영상의 추위여서 견딜 만하다.
오늘은 피로연을 위해
여기 호텔에서 친족과 지인들을 위해
잔치를 벌인다.
나이는 두 살 터울이지만
10여 년 만에 가지는 잔치라서
지인들이 많이 찾아와 축하를 해줄 것 같다.
꽃샘바람이 너무 차지만
한라수목원 온실에 있는 이 꽃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 되듯이
남편을 온실로 하여
따뜻한 삶이 되기를 빈다.
♧ 꽃샘추위 - 장수남
천만근이나 넘는 지구가
내 머리통 위에 얹혀있구나
하체가 후들후들 뼈마디가 으스러진다.
고놈 꽃샘추위 칼 가는 소리에
콧구멍에 콧물이 시도 때도 없이 줄줄
이마는 뜨거운 열기로 빈 방 가득 달군다.
내가 그리 좋은지 비좁은 방구석엔
엊그제 밤부터 꽃샘들이
문틈사이로 사랑한번 하고 싶어
살짝살짝 엿보고 이젠 체통도 없이
바짓가랑이 가운데 멱살 잡으면 애무하고
꽃샘추위 숨소리 찢어지는구나.
♧ 꽃샘추위 - 권오범
겨우내 초목들 기절시켜놓고
끗발 날리던 동장군이
떡고물 구경도 못한 채
공연히 감투 벗으려니 억울했나보다
그러잖아도 미련이 남아 무르춤하는 사이
목련이 정분나 허튼 수작 부리지요
봄에게 물벼락까지 맞고 나니 성질나
돌아서 칼바람 콧김으로 발악하는 3월 한복판
세세연년 오지게 당했으면서
작년보다 여남은 날 앞당겨 깬 걸 보면
조명 발 잘 받는 꽃나무들은 시건방져
건망증이 심한 걸까,
밤새 말달리며 족대기는 바람에게
나무아미타불 될 건 뻔한 일
철없이 서두른 것이 죄겠지만
겔러터져 미적미적한 봄, 네 책임이 더 크다
♧ 꽃샘추위 - 손병흥
빛과 어둠 변증법 만으로도
아주 서서히 전개되는
진정한 영혼속 매화나무
꽃망울 되어 맺혀나
어느새 기나긴 겨울
물리쳐버린 때 이른 봄날
더러는 채 해동이 되지 못해
산비탈 응달 선채로
점차 간간이 다가서는
맑고 푸른하늘 바라보며
한 모금 커피처럼
진한 향 음미하다
아직 후줄근한 꽃샘추위
마구 떨리는 음표되어
겨우내 살아서도 갇혔던
메말라 가슴시린 하늘처럼
또다시 너덜너덜해진
생생한 바람소릴 듣는다.
♧ 꽃샘추위 - 김경숙
지나 온 날들
다 고백하지 못해
접어 둔 사연 남았는지
시샘 찬 눈빛으로
조심스레 걸어가는
여린 목덜미를 붙잡는다
얼어붙은 꽃신 속에
살포시 드러낸 고운 실루엣
매서운 늦바람 유혹에
단단히 여며보지만
울컥 쏟아 낸 눈물
가지마다 숨어들어
밤새 홍매화를 피운다
♧ 꽃샘추위 - 구재기
꽃밭에 얼굴을 부비며
빈 꽃가지를 흔들며
또 그렇게 지나야 하는 겨울,
그 비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조금씩 조금씩
뒤안길을
보듬어 스스럼 열며
꽃철을 맞아 사위어져 가는
――최후의 만찬.
♧ 꽃샘추위 - 박창기
겨울 꼬리를 잡고 봄 언덕을 넘던 바람이
먹구름 풀어 하얀 눈 데불고 와선
토라진 입술로 뺨을 때린다
시간은 앞다투어 봄으로 가고 있는데
애꿎은 처녀의 시샘인 양
눈흘기고 앙탈을 부린다
오오 온몸으로 감싸안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너의 저항
파래진 입술로 입맞춤하기엔 아직은 두렵고
오돌오돌 돋아난 살갗으로
그대를 안기엔 차마 안쓰럽다
단 한 번의 시샘으로
저만치 가는 봄의 뒤통수를
진달래꽃보다 붉게 멍들게 하는
그 까닭을 살며시 묻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