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온실의 파피오페딜룸

김창집 2012. 3. 25. 07:41

 

둘째 딸 결혼식을 위해 서울에 갔더니

꽃샘추위인지 바람이 너무 차다.

그러나 영상의 추위여서 견딜 만하다.

 

오늘은 피로연을 위해

여기 호텔에서 친족과 지인들을 위해

잔치를 벌인다.

 

나이는 두 살 터울이지만

10여 년 만에 가지는 잔치라서

지인들이 많이 찾아와 축하를 해줄 것 같다.

 

꽃샘바람이 너무 차지만

한라수목원 온실에 있는 이 꽃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 되듯이

남편을 온실로 하여

따뜻한 삶이 되기를 빈다.  

 

 

♧ 꽃샘추위 - 장수남

 

천만근이나 넘는 지구가

내 머리통 위에 얹혀있구나

하체가 후들후들 뼈마디가 으스러진다.

고놈 꽃샘추위 칼 가는 소리에

콧구멍에 콧물이 시도 때도 없이 줄줄

이마는 뜨거운 열기로 빈 방 가득 달군다.

 

내가 그리 좋은지 비좁은 방구석엔

엊그제 밤부터 꽃샘들이

문틈사이로 사랑한번 하고 싶어

살짝살짝 엿보고 이젠 체통도 없이

바짓가랑이 가운데 멱살 잡으면 애무하고

꽃샘추위 숨소리 찢어지는구나. 

 

 

♧ 꽃샘추위 - 권오범

 

겨우내 초목들 기절시켜놓고

끗발 날리던 동장군이

떡고물 구경도 못한 채

공연히 감투 벗으려니 억울했나보다

 

그러잖아도 미련이 남아 무르춤하는 사이

목련이 정분나 허튼 수작 부리지요

봄에게 물벼락까지 맞고 나니 성질나

돌아서 칼바람 콧김으로 발악하는 3월 한복판

 

 

세세연년 오지게 당했으면서

작년보다 여남은 날 앞당겨 깬 걸 보면

조명 발 잘 받는 꽃나무들은 시건방져

건망증이 심한 걸까,

 

밤새 말달리며 족대기는 바람에게

나무아미타불 될 건 뻔한 일

철없이 서두른 것이 죄겠지만

겔러터져 미적미적한 봄, 네 책임이 더 크다   

 

 

♧ 꽃샘추위 - 손병흥

 

빛과 어둠 변증법 만으로도

아주 서서히 전개되는

진정한 영혼속 매화나무

꽃망울 되어 맺혀나

어느새 기나긴 겨울

물리쳐버린 때 이른 봄날

더러는 채 해동이 되지 못해

산비탈 응달 선채로

점차 간간이 다가서는

맑고 푸른하늘 바라보며

한 모금 커피처럼

진한 향 음미하다

아직 후줄근한 꽃샘추위

마구 떨리는 음표되어

겨우내 살아서도 갇혔던

메말라 가슴시린 하늘처럼

또다시 너덜너덜해진

생생한 바람소릴 듣는다.

 

 

♧ 꽃샘추위 - 김경숙

 

지나 온 날들

다 고백하지 못해

접어 둔 사연 남았는지

 

시샘 찬 눈빛으로

조심스레 걸어가는

여린 목덜미를 붙잡는다

 

얼어붙은 꽃신 속에

살포시 드러낸 고운 실루엣

매서운 늦바람 유혹에

단단히 여며보지만

 

울컥 쏟아 낸 눈물

가지마다 숨어들어

밤새 홍매화를 피운다   

 

 

♧ 꽃샘추위 - 구재기

 

꽃밭에 얼굴을 부비며

빈 꽃가지를 흔들며

또 그렇게 지나야 하는 겨울,

그 비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조금씩 조금씩

뒤안길을

보듬어 스스럼 열며

꽃철을 맞아 사위어져 가는

 

――최후의 만찬.   

 

 

♧ 꽃샘추위 - 박창기

 

겨울 꼬리를 잡고 봄 언덕을 넘던 바람이

먹구름 풀어 하얀 눈 데불고 와선

토라진 입술로 뺨을 때린다

 

시간은 앞다투어 봄으로 가고 있는데

애꿎은 처녀의 시샘인 양

눈흘기고 앙탈을 부린다

 

오오 온몸으로 감싸안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너의 저항

파래진 입술로 입맞춤하기엔 아직은 두렵고

오돌오돌 돋아난 살갗으로

그대를 안기엔 차마 안쓰럽다

 

단 한 번의 시샘으로

저만치 가는 봄의 뒤통수를

진달래꽃보다 붉게 멍들게 하는

그 까닭을 살며시 묻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