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흰철쭉과 3월의 신부

김창집 2012. 3. 26. 10:02

 

온실에서 고이 자란

흰철쭉이 활짝 피었다.

 

어제 종일 축하객을 맞느라

조금 피곤했지만

지금쯤 신혼여행을 즐기기 위해

부지런히 태국 푸켓으로 날아가고 있을

신랑신부가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적응해서 모진 세파 속에서

잘 견딜 수 있는 면역역을 기르고

돌아오길 바란다.

 

하긴 대학 졸업이후 숱한 세월 동안

직장생활을 해왔기에

큰 걱정은 안하지만--.

 

 

♧ 신부에게 - 천상병

 

온실에서 갖나온 꽃인양

첫걸음을 내디딘 신부여

처음 바라보는 빛에 눈이 부실 테지요.

세상은

눈부시게 밝은 빛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빛도 있답니다.

또한 기쁜 일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쓴맞이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은 괴로움만도

또한 아닙니다.

 

 

신부님 곁에는 함께 살아갈

용감하고 튼튼한 신랑이 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고 양보하며는

더 큰 복을 받을 테지요.

신부여,

 

성실과 진실함이 함께 한다면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용기와 힘을 합쳐 보세요.

그러면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이며

튼튼한 열매가 맻어질 것입니다.   

    

 

♧ 신부 - 한분순

 

희게 여밀수록

더 흰 듯

흔들리는 것

 

목련인가

순한 짐승인가

이슬들이 그물에 걸린다

 

품으로 쌓이는 아침

빛보다

새로운

넋.   

 

 

♧ 아름다운 신부 - 이향아

신부여,

봄 햇살로 짜 올린 비단길을 걸어서

오늘은 한 마리 백공작으로 깃을 펴도 좋다

 

어느 궁성의 장미원인가

향기로운 예감

풍금 켜며 네 곁에 천천히 다가오고

먼 강물 위를 흘러가던 구름도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를 하는

오늘 그대는 신부

 

바람이 지난밤의

파도 높은 뉴스를 몰고 올지라도

지금 땅 위에서 가장 영롱한 소식은

그대

하늘 아래 가장 충만한 꽃은 그대다

그대가 있어

오늘은 세상이 이리도 눈부시다

    

 

 

♧ 신부(新婦) - 김동호

 

본래 꽃은 예쁜 만큼 약했다.

곱긴 했지만 어딘가 차가웠다.

화려한 만큼 외로운 속을 누가 알랴

눈동자는 늘 안에 있지 않았고

향도 무지개도 밖으로만 치달았다.

지난 열흘 동안 바람에 매달린 꽃이었으니

 

그러나 오늘은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이 되는 날

오만 색 다 죽지만 푸른 색 죽는 일 보았는가

푸름은 땅의 또 다른 原色

한겨울 백설 위에서도

푸른 속은 더워만 있으니.

 

여자가 죽어서 나무가 된다는 것은

東西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음각이리라

 

어떤 여자가 죽어서

호두가 되었을까 생각하며

호두를 가만히 깨물어보면

호두가 먼저 내 늙은이를 꽉! 깨물어버린다

 

 

♧ 나의 신부에게 1 - 조완호

 

그것은 바람이고

어둠이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찢기운

달빛이라고 하더라도,

아내야

 

너의 긴 치마자락에서 어둠이 멸망하고

달빛이 하나 하나의 아침이 되어

잠을 깬다고 해도, 아내야

 

우린 여전히 강물에 몸 담그고

바다의 내면으로

내면 깊숙이로 떨어져 내리는

돌멩이처럼 살자. 아내야

 

 

영혼의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청동의 빛깔로 울고 있는

저, 새를 보아라

갈대가 키보다 높게 자란 숲 속에서

가뭄의 열기를 쪼아대다가도

문득 먼 하늘을 바라보며

촉촉한 목소리로 지저귀는,

 

그것이 바람이고 어둠이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찢기운 달빛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너와 영영 남이 될 수는 없다.

 

나뉘고 나뉘어도

영영남이 될 수는 없다. 아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