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도 저렇게 웃는데
제주와 남부지방에
새벽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 어정쩡한 채 그대로다.
지금 전국은 총선으로
불이 붙어 다른 것엔
영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상대방을 헐뜯고
표를 얻을 수 있는 이슈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세태.
그렇게 해서 얻은 정권
제대로 돌아갈까
저 개나리가 웃고 있다.
♧ 개나리 - 김승기
꺾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놓아두세요.
욕하지 마세요.
봄은 누드의 초상
부드러운 속살 드러내며 알몸으로 피우는 꽃
어디 한둘인가요.
진달래 산수유 목련 생강나무 복사꽃 살구꽃 매화 벚꽃 앵두꽃 자두꽃 명자꽃 박태기나무 미선나무 히어리
저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부끄러운 나목으로 서서
당신을 향해 환한 웃음을 보내고 있네요.
야산 중턱, 산허리, 언덕배기, 길모퉁이, 담장 아래, 울타리, 철조망 아래에서 툭툭 불거진 대로 쭉쭉 벋은 가지로 꽃 피우고 싶어요, 비록 정원에 심었을지라도 전정은 하지 마세요. 더구나 화분 위에 분재로 앉혀지는 것이 가장 싫어요. 낙엽성 활엽 관목이지만 덩굴성, 생긴 대로 꽃 피워도 아름답잖아요.
꺾지 마세요.
벌 나비 유혹하겠다고
사랑을 얻고 싶어 하는 관능의 몸짓
저절로 자연을 닮아 가네요.
흐느적거리는 그대로 놓아두세요.
♧ 담 밑에 개나리 - 정세일
당신은 양지 바른쪽에 가셔서
벌써 개나리로 오는 봄을 맞이하시려
당신이 개나리처럼 봄을 노랗게 피우시고
계시더군요.
꽃샘추위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봄 시샘 바람에도
무거운 겨울외투를 거뜬히 벗으시고
햇빛이 제일 잘 비치는 그곳에서
당신이 언제나 가시고 싶어 하시던 그곳에서
그렇게도 행복하시게 꽃을 피우고 있으시더군요.
그러나 사랑하는 당신이여!
나는 이곳에서 꽃샘추위가 불어주는
바람에 손발이 얼고 있습니다
입이 얼마나 추운지 꽃망울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담 밑에 그림자는 왜 그리도 긴지
꽃가슴이 온통 다 떨리고 있습니다
해도 왜 그다지 이곳에선 짧은지
미처 하늘에 다 떠오르지도 못하고
서편으로 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
나를 이곳에서 그곳에 제발 데려다 주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오실 수 없으시면 차라리
당신이 입었던 겨울외투를 꽃샘추위 바람에게라도 보내주십시오
당신은 그곳에서 봄을 맞고 계시지만
나는 이곳에서 아직도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 개나리 - 우공 이문조
무채색의
겨울 끝자락
산언덕을 점령한
노오란 점령군
노오란 제복에
노오란 풍선 다발
마구 흔들어 대던
남녘
어느 마을의 풍경 같구나
봄이 깊어지면
노오란 물결도
초록의 발아래
무릎 꿇으리---
♧ 개나리 필 때 - 김정호
하 하
깔 깔
봄 햇살보다 가벼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비인가 싶더니
꽃잎 되어 파르르 떨고
꽃인가 싶어 다가서니
나비되어 훨훨 날아가네
봄 햇살을 한 곳으로 모아
일제히 등불 켜고 달려드는
저 병아리 떼
노랗게 물든 하늘
젊은 날, 한 때
내 생도 저렇게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꿈을 꾸었지
♧ 개나리꽃 - 이정록
개나리 활대로 아쟁을 켠다
아쟁은 아버지 같다, 맨 앞에 앉아 노를 젓지만
물결소리는 가라앉고 거품만 부푼다
황달에서 흑달로 넘어간 아버지
백약이 무효인 개나리 울 아버지
해묵은 참외꼭지를 빻아서 콧구멍에 쏟아 붓고는
숨넘어가도록 재채기를 한다, 절대 안 되여
사약이여 사약, 한약방에서 절레절레 고갤 흔든
극약처방이 노란 콧물을 뿜어 올린다
오십 년 묵은 아버지 콧구멍, 개나리꽃사태다
이렇게 살어 뭐혀, 두두두 무너지는 북소리
몸 뒤집은 아쟁이 마룻장을 두드린다
이제는, 배도 노도 갈앉은 지 십수 년
속 빈 개나리 활대로 아쟁을 켠다
개나리나무는 내공 깊은 속울음이 있다
마디도 없는 게 악공이 되는 까닭이다
개나리 꽃그늘에 앉으면 자꾸만 터지는 재채기
아쟁소리 위로 노란 기러기발 끝없이 날아오른다
다시 황달로 돌아온 아버지처럼, 봄은
극약처방 없이는 꼼짝도 않는다
♧ 개나리 - 나태주
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들가들 턱 떨려라,
따슨 봄인가 빠끔히 창문 열고 나왔다가
된서리에 얼어 짓무른 손톱끝 발톱끝.
여덟 식구 밥시중 옷시중 설거지까지 마치고
손에 묻은 물기조차 씻을 새 없이
종종걸음 쳐 가던 등교길의 언 손 아이 내 누이야.
그렇지만 매양 지각하여
얼음 백힌 손을 쳐들고 벌을 서야만 했던 내 누이야.
너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세두세 가슴 저려라,
밥짓기 설거지 빨래하기 싫다고
서울 와서 뒷골목 두터운 그늘에 깔려
어리배기 천치의 눈을 치뜨고 섰는 무우다리.
내 고향의 숫배기 누이들의 무다리.
너희들의 상업은 또 오늘밤
한 묶음에 얼마씩 팔려가야만 한다는 거냐!
♧ 개나리 - 손정모
언 땅에 물기가 돈다
몇 달을 고행(苦行)했다.
너는 먹먹한 설움을 털어 내며
햇살이 적요로이 조는 양달에서
앙상한 몸뚱이로 기를 뿜어낸다
솔잎이 드러눕고 달빛이 일어선다
솔잎에 매달려 며칠 동안을
하얗게 떨며
들려주던 바람의 목소리
이제 넌
두렵더라도
몸을 열 때가 되었어
목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푸른 바람결에 떠밀려
아뜩한 현기증에 몸을 떨던 너
어느새 아랫도리의 힘이 풀리면서
펑펑펑
하늘을 향해 기포들처럼 터지는
샛노란 바람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