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튤립 꽃 만발한 공원

김창집 2012. 4. 3. 09:47

 

꽃을 시샘하듯 바람이 제법 세게 불던

어제 오후 한림공원.

 

곳곳에 놓아진 튤립 화분에 꽃들이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세 청년의 청혼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청년들은 멋도 모르고 가버리자,

그를 아쉬워하며 죽어간 소녀가

꽃으로 환생했다 한다.

 

세 청년 중

왕관을 씌워 주겠다던 왕자의 말처럼 꽃은 왕관 같고

대대로 내려오던 보검을 주겠다던 기사의 칼과 같은 잎

돈 많은 청년이 주겠다던 금덩이와 같은 뿌리를 가진 꽃….

 

 

♧ 튤립 - 최영숙

 

하룻밤 동거를 간절히 원하던 그대 얼굴을

닮은 꽃 누물 한 방울 흘리는데 십 년이 걸

렸다는 그 눈과 눈빛 사이 고인 미소에 어린

날의 상처가 사마귀처럼 남아 있고 낮에도

별을 헤이며 죽음을 손님처럼 기다린다는 그

고독이 점약질에 쌓여 누구와도 닿을 수 없는

향기보다 색에 민감한 사춘기

조르즈 상드 애인이여!

하룻밤 불면을 지켜주는 머리맡 튤립은

몸내 익은 그대 체온이었네   

 

 

♧ 튤립 - 오세영

 

세상이 왜 이다지도

갑자기 밝고 아름다워지더냐.

봄날 아침

새소리에 문득 깨서 커텐을 걷자

찬란하게 쏟아지는 아, 햇살

햇살. 어젯밤의 믿을 수 없는 그

황홀함으로

그대 항상 내 곁에 있음을

내 이제 확인하거니

눈부시게 하얀 시트 위에

선연히 남겨준

그대 한 방울의 그 순결한

핏자국.   

 

 

♧ 튤립 - 김낙필

 

잊지말 아라

네 여린 잎파리를 먹고

내 가슴속 깊이

너를 심는다.

 

나는 네가 좋아

속으로 너를 키우고

은혜의 물을 주며

사랑하며 산다.

 

움직이지 않는 고요.

티끌 하나 없는 매끄러움.

소녀 같은 몸매.

이슬도 두려워

머물지 못하고 내려 앉는다.

 

천상의 빛을

내려 받아

흉내낼 수 없는 황홀함

나는 넋을 잃는다.

 

잊지 않으마.

내안에 너를 키우고

사랑하며 사는일이

내 사는 일이란 것을.....

 

  

 

♧ 튤립의 애원 - 槿岩 유응교

 

왕관과 검과 금괴를 선물한

씩씩하고 늠름한 세 기사의

추파를 뿌리치고 떠나온 사랑이

이리도 서러워서

그대들이 준 붉은 왕관을 쓰고

검을 들고 서서

금괴를 뿌리로 하였나니

그대여

내 사랑 이제라도 다시 받아주오.

 

그러나 오로지 한 사람만

택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가혹한 시험입니다.

제 앞에서 피나는 결투를

하신다 해도

차마 저는 볼 수가 없습니다.

영예도 용기도 부귀도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저 하나만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그대의 붉은 마음 하나만

제게 보여 주세요.

그러면 저는 그대의 품에 안기어

아름다운 미소로 답하겠어요.

 

  

 

♧ 튤립 - 素養 김길자

 

햇살 가슴에 부딪치면

풀잎 사이로 기쁨을 쫓아

들로 향한다

 

허공에 불 밝혀

진실한 마음 눈 뜨게 하고

 

여린 풀보다

긴 슬픔

한 자락 떨어진다

 

날이 샐 무렵

내 놓은 고백은

짧은 그리움으로 더하며

 

까맣게 타들어가는

당신의 향기

하늘 쪼아 빛을 모은다.   

 

 

♧ 꽃밭 - 김희경(color)

 

튤립 만발한 꽃밭

세 살배기 꼬마가 꽃송이같이

숨었다, 피었다

분수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꽃내음이 딩동댕

아침 종소리처럼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이 꽃을 보고

꼬마를 보고

웃는다

진작의 표정들이 시들고 있는

햇살 아주 바른 곳엔

나무껍질 닮은 한 노인

앉아 있다

잎 다 져 홀홀한

꽃대궁처럼

해탈한 스님처럼

열반 뒤의 사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