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자두꽃 환한 아침에

김창집 2012. 4. 10. 00:19

 

마침 옛 직장이 있는 월평동 쪽에 다녀오는 중에

이 꽃이 생각나 차를 세우고 다가가 보니,

시기가 조금 이르지만 이렇게 꽃이 피기 시작했다.

열매는 큰데 꽃은 벚꽃보다 적고 촘촘하게 달린다.

 

옛날에는 ‘오얏나무’라 불렀으나, 오얏이 자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남에게 오해 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두나무는 장미과에 속한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10미터 정도로 자라며, 잎은 어긋나고

긴 달걀 모양이고 가장자리는 둔한 톱니 모양이다.

4월에 흰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열매는

7월에 황색 또는 적자색으로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학명은 Prunus salicina이다.

       

 

♧ 자두꽃 - 강수정

 

보름달에 이끌려 자두꽃밭 언저리에 닿았다

바람은 산기슭 어디에 잠들었는지 따라나서지 않고

시냇물 자주 몸 뒤척이며 흐른다

희멀건 달빛아래 부채춤 추는

흰나비 떼 꽃잎,

 

알몸에서 향내가 난다 손안에서 물커덩거린다

 

지난 꽃샘추위 붉은 울음, 푸른 울음,

꼭꼭 감춘 하얀 꽃잎

우레처럼 들끓던 꽃물 밀어 망울망울 꽃피운

 

먼 산 검은 이마 드러내고 눕자

견고한 길들 일제히 일어나

지금 막 허물 벗는 달빛 속으로 무수히 뛰어든다

산기슭 어디선가 잠자던 바람 푸르르 달려든다

놀란 자두꽃 깨어나 눈비비고

산 밑 마을 개 짖는 소리

후두둑 떨어져 날리는 꽃잎, 꽃잎, 꽃잎들.

       

 

♧ 흰자두꽃 - 문태준

 

손아귀에 힘이 차서 그 기운을 하얀 꽃으로 풀어놓은 자두나무 아래

못을 벗어나 서늘한 못을 되돌아보는 이름 모를 새의 가는 목처럼

몸을 벗어나 관으로 들어가는 몸을 들여다보는 식은 영혼처럼

자두나무의 하얀 자두꽃을 처량하게 바라보는 그 서글픈 나무 아래

곧 가고 없어 머무르는 것조차 없는 이 무정한 한낮에

나는 이 생애에서 딱 하번 굵은 손벼마디 같은 가족과

나의 손톱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 자두나무 숲에 싸여 - 강현옥

 

머언 길 스쳐 온

상큼한 바람은

새콤한 자두 사이에서

군침 흘리며

머물러 있었지

빨갛게 익어 가는

볼을 만지며

머물러 있고 싶었지

그렇게 싱싱한

바람을 안고 마냥

서 있고 싶었어

오뉴월의 풋풋한 맛을

혀끝으로 느끼며

푸른 잎을 보태어 가던

자두나무에 기대고 싶었어

긴 여정을 지나 온

바람처럼 왔다 사라질 육신을

푸른 바람에 말리고 싶었어

자두 향기처럼 살고 싶었어   

 

 

♧ 자두꽃빛에 대하여 - 나희덕

 

자두꽃빛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꽃은 열매의 외연일 뿐일까

열매가 맺힐 때까지만 유효한

그 후로는 잊혀지는

 

흰 꽃을 빌어

태어나는 붉은 열매

스스로를 찢고 나온 피투성이

 

자두꽃빛을 희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고요한 자궁 속 양수의 빛깔

젖빛 같기도 하고 흰빛 같기도 한,

자궁이 터지는 순간 붉게 물드는 강물과도 같은

 

비 내리는 봄날

자두꽃 만발한 산길을 따라 적천사에 오른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없다, 이미 구름처럼 흩어져버린 자두꽃

     

 

♧ 흉터, 어느 작부로부터의 편지 - 김신용

 

--엉망으로 취해, 뱃놈 인생은 말짱 개털이라고 내 남루한

치마폭에 오물을 게워놓고, 폐선속의 쥐새끼처럼 하룻밤 내

썩은 몸뚱이를 다녀가신 선생님께--

 

바다 위에 노을이 타오르면 온몸 석유 끼얹고 분신하던 그

이의 모습이 보여요. 와락 그 불덩이를 껴안았다가 얻은 왼쪽

얼굴과 귀밑 목덜미에 번져 있는 그 火傷(화상), 제 섬이에요.

낡은 통발배가 버려진 고무신짝처럼 떠있는 남해의 작은 落

島(낙도), 밤이면 선창의 붉은 불빛 객혈처럼 흐르는 좁은 술

집 골목, 술자리에서 번번이 쫓겨나던 작부----,그래요.제 흉

터의 섬,견고한 바다의 물결로 첩첩이 쌓은 제 감옥이에요.철

조망 번뜩이는 탐조등은 없지만 스스로 벽을쌓아 유폐된 감

옥, 절해 고도----

 

그이가 살아 있었다면---- 온몸 멍처럼 시퍼렇게 물들이는

바다의 저 푸른 쪽빛, 마치 농익은 오얏을 깨물 때의 그 상큼

한 맛으로 내 오관을 저리게 했을지도---- 철마다 흐드러지게

피는저 핏빛 동백, 내 목에 화환으로 타올라 세상의 가슴에

내 꽃무늬 화사한 문신으로 새겨졌을지도----

 

그러나 저는 알아요. 스스로 갇힌 이 감옥,세상을 향한 집

념,인간을 위한 모든 욕망을 버렸을 때 다가오는 포근한 고절

감, 또 이것이 얼마나 끔찍스런 감옥인가를.그 안온함이 얼마

나 뼈저린 자기 방기인가를. 저는 알아요. 자기 위안의 내 견

고한 섬, 허망 위에 허망을 쌓아 물거품만 허벅지게 피웠다가

덧없이 스러지는 포말의 집이란 것을.   

 

 

흉터--, 그이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섬.이제 정분

난 남정네가 주고 간 정표 같아요.죽어서 비로소 잉태된 그이

의 흔적이에요. 온통 그믐밤처럼 꺼멓던 탄광촌,제 몸 곡괭이

가 되어야 살아남던 삶들,그들의 구멍 숭숭 뚫린 가슴의 空洞

(공동) 같던 갱 앞에서, 스스로 온몸 불꽃 피워 어두운삶을

밝히려 했던 그이, 몸 안주 삼아 들고 다니던 내 들병이 같던

세월, 썩은 몸둥이 무엇이 좋다고 밤마다 파고들어, 몸던져

껴안아야 할 날들을 몸으로 말해 주던 그이.

 

그 흉터,술맛 떨어진다고 흘러 흘러온 갯촌의 시린 술주정

을 피해,얼굴이 밑천인 이 화류의 세계에서 내치는 손길 손톱

세워들고 돼지 얼굴 보고 잡아먹냐고, 악머구리몸부림 대신

홀로 어둠 속의 방파제로 나와 일렁이는 밤물결 앞에 서면,마

치 최면이듯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 영원한 잠에의 유혹--, 그

허망이 지어놓은 집으로 돌아가서그이와 함께 잠들이불만

펴면 되는 것을.

 

그러나 선생님, 병도 오래 앓으면 수족 같은 정이 든다 했

던가요?

얼굴에 술을 끼얹으며 썩은 내 품을 파고드는비린생선

내음, 절이고 절여진 퇴락한 어촌의 그 한서린 세월, 그것 또

한 내가 껴안아야 할 흉터가 아니던가요? 이 땅, 암호처럼 그

이가 내게 주고 간 흉터, 그 살아 있는 날들의 의미가 아니던

가요?

잡풀도 새들의 둥지를 짓는데----.

   

 

♧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3 - 김인육

    --春香춘향에게

 

  1.

 

한양의 밤은 적적하다

폭설이 지나가는 삼경의 하늘엔

웃자란 그리움의 모가지들이

삭풍에 머리를 부딪고 울고 있다

예사롭지 않구나 무슨 변고라도 있는 게냐

어젯밤 꿈엔

부용당에 두고 온 내 발자국들이 우두두 진흙발로 달려오더니

밤이 새도록 부르르 울어대던 문풍지는

손톱이 아리도록 어둠을 긁어대었다

이곳으로 떠나올 때 하염없던 네 눈물인 양

오늘은 펑펑 함박눈이 저리 내리고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게 퍼붓는 저 눈보라는

너의 시련이냐 눈물이냐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燈心등심을 돋우어

시경 삼 편을 외는 동안, 어느새 눈발도 그치고

달빛 고운 그리움만이 문지방을 넘어

남원 벌로 천방지방 흩날리는 꿈으로 새벽이 밝는다

춘향아, 내 사랑아

산이라도 뽑아낼 것 같던 장부의 기개, 속절없는

칠백 리 길게 흩뿌려진 그리움아

 

  

  2.

 

꽃이 필 날을 기다린다

네 생각 하나로

겨우내 여위어간 삼각산 봉우리마다

어느덧 파릇파릇한 잎들이 돋고

하염없던 네 눈물 광한루 오얏꽃 되어 흐드러지게 피어날 날을

기다린다

지난날, 네 진솔 속곳이 목련화처럼 비밀스레 살랑거려

몇 번이고 나를 자진케 하던 추천을

포르르 새처럼 날아오르던 너를

기어이 다시 보려는 것이다

섬섬옥수 광한루의 수양버들이

첫날밤 네 옷고름처럼 수줍게 간들대고

그믐달같이 하얗게 삭아간 그리움의 뼈마디

아지랑이 투명한 불꽃으로 피어나는 봄이 오면

옥색치마 눈물 진 네게로 달려가

까무러치도록 부둥켜안고 싶은 것이다

어화둥둥 어사화 휘날리며

봄꽃처럼 활짝 너를 꽃피우고 싶은 것이다

춘향아, 아픈 내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