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산행기
* 아침에 본 송호리 앞바다
△ 2012년 4월 29일 일요일 흐림
전날 산행에서 얻은 기쁨은 장흥에서 정남진 한우 삼합(三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원고 때문에 주말 산행도 제대로 못하고, 감기 기운인지 몸이 찌뿌둥해서 술을 덜 먹고 올랐는데, 첫 봉을 오를 때부터 컨디션이 좋아져 산행이 즐거웠다. 정남진 삼합은 한우고기에 표고버섯, 키조개의 살을 함께 먹는 것, 기분에 좀 많이 먹었는지 잠잘 곳인 땅끝 송호해변에 이르러서는 졸리고 적당히 피곤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땅끝탑이라도 다녀온다는 것이,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하다가 시간이 부족하여 끝까지 다 못 가고 돌아왔다. 중간에 군부대가 있어 조금은 저어하기도 했다. 오면서 초피를 뜯어다 아침에 먹었다. 술 마실 곳이 없어 어젯밤 길에서 마신 이야기를 들으며,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는 술집이건 식당이건 모두 빨리 문을 닫는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다.
△ 오소재로 오르다
7시40분. 우리를 태운 버스는 오소재로 가기 위해 땅끝전망대 입구를 거쳐 해안가로 난 길을 돌아 다시 완도 입구 남창리를 거쳐 어제 갔던 길을 따라 가다가 북일면에서 산길로 들어서서 오소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데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한두 방울 떨어져 우의를 챙기고 약수를 마신다. 설명에 따르면 기포 및 광촉매를 이용한 자외선(UV) 소독기를 설치해놓았다고 되어 있다.
마침 제주도 자유총연맹 산악회에서 왔다는 분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는다. 산은 그리 가파르지는 않으나 어제 밤에 기동했던 분들은 조금 버거워 하는 것 같다. 산길은 물길이 되어 많이 파여 있지만 그리 가파르지 않아 걸을만하다. 날씨가 흐리고 꽃이 별로 없어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막대를 주워 짚었더니 그리 편안할 수가 없다. 오심재까지는 약 1.5km, 오를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 명찰 대흥사를 품은 산
두륜산(頭輪山)은 해남군 삼산면 남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703m이다. 소백산맥의 남단 해남반도에 우뚝 솟아, 정상에 오르면 멀리 완도와 진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바라 볼 수 있다. 식생은 난대성 상록 활엽수와 온대성 낙엽 활엽수가 주종이며, 수령 수백 년이나 되는 동백나무 숲과 계곡이 장관이다. 가을에는 두륜봉과 가련봉 사이에 넓은 억새밭이 유명하다. 대둔산 자락의 왕벚나무자생지는 천연기념물 173호이다.
우리가 흔히 두륜산과 나란히 대둔산을 말하기도 하나, 사실 대둔산은 가련봉 - 고계봉 - 노승봉 - 도솔봉 - 연화봉 등 두륜산의 여덟 봉우리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그래서 대흥사도 현판에 두륜산 대흥사로 되어 있다. 원래 대둔사이던 절 이름이 일제 때 대흥사로 쓰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다가 원 이름을 찾는다고 다시 ‘대둔사’로 돌렸지만 늘 부르던 대흥사로 그냥 쓰고 있다. 서산대사의 표충사와 많은 암자를 거느린 천년 고찰 대흥사. 신라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수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초의(草衣) 선사가 40년 동안 수도 생활을 하며 다도를 완성했던 일지암(一枝庵)이 있다.
△ 오심재 헬기장에서
안개 때문에 오심재는 안 보이고, 헬기장 한쪽에 마련된 등산 안내도를 보며 갈 길을 가늠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 40분이 소요되었는데, 여기서 바로 북쪽으로 내리면 20분 정도 걸어 고계봉(노성봉), 거기서 북쪽으로 다시 20분만 가면 솔개바위를 거쳐 케이블카가 올라오는 상부역사에 이르는 것이다. 자유총연맹 팀에서는 잘 못 걷는 사람들이 케이블카로 오른다고 했다. 재작년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와서 어둡고 안개 때문에 타느냐 마느냐 하며 타고 올라 아무것도 못보고 내린 곳이다.
우리는 노승봉을 거쳐 가련봉, 만일재로 두륜봉에 오르기로 하고, 안개 속으로 떠났다. 사실 어제 그 좋은 하늘 아래 보던 기암절벽과 기봉(奇峰)을 기대하던 우리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용빼는 재주가 없는 한 어쩔 수 없는 일. 그저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허여(許與)한 부처님의 마지막 자비라 생각하고, 비가 안 오는 것도 감지덕지 하며 걷는다.
△ 들꽃 보며 오른 노승봉과 가련봉
북풍을 피한 양지녘에 들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흰제비, 털제비, 남산제비 등이 보이더니, 드디어 얼레지가 나타난다. 쌍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얼레지는 한자로는 차전엽산자고(車前葉山慈姑)라고 쓴다. 비늘줄기는 바소꼴로 땅속 깊이 들고 2개의 잎이 나와 옆으로 퍼지며, 잎은 타원형으로 녹색 바탕에 자주색 무늬가 있다. 진한 자색의 꽃이 피나 흰꽃도 있다. 시기가 좀 지났지만 너무 곱다.
윤곽이라도 볼 수 있다면 너무 멋진 봉우리고 위험스러운 느낌이 들겠지만, 차라리 안 보여서 편안하게 오르내린다는 느낌이다. 너무 정체되기에 일행에게 말하고, 먼저 가서 올 때 못 찍은 얼레지를 찍으려 했으나 아무래도 인연이 안 닿는지, 다시는 나타나질 않는다.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사람 사는 동안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산을 사랑하면서도 오늘 여기에 끼지 못한 3기생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려본다. 얼마나 오고 싶었으랴!
* 얼레지
△ 구름다리 지나 두륜봉
남미륵암으로 내려가는 세거리, 헬기장에 이르러 물을 마시고 앉아 쉬고 있으려니까 얼마 없어 일행들이 내려온다. 두륜봉에 올랐다가 진불암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길을 걸어 올라간다. 300m 정도만 오르면 된다고 하여 10분 정도 걸으니, 구름다리다. 바위에 걸린 돌보다 구름으로 이루어진 바위라 할 만치 안개가 자욱하여 진짜 구름다리라 우스개를 하며 올라, 얼마 안 떨어진 암봉 두륜봉에 도착했다.
사실 두륜산에 있는 두륜봉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그렇지 가련봉의 높이 703m보다 73m 낮은 630m이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했던 지점이라 가지고 간 제주(祭酒)를 부어 올려 제를 지낸다. 표지석 바로 앞에는 조그만 상석 같은 너럭바위, 앞에 절을 할 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그만이다. 이제 편안하게 앉아 가지고 간 자신의 간식 보따리를 풀고 막걸리와 함께 힘을 보충했다.
* 구름다리와 듀륜봉 표지석
△ 진불암을 거쳐 대웅보전으로
설거지가 끝나고 기념 촬영을 한 다음 천천히 내려간다. 돌길은 거칠고 가파르나 내려가는 숲길이라 즐거운 얘기들을 나누며 잘도 내려간다. 남미륵암 삼거리에서 일지암을 거치는 길이 있으나, 그냥 진불암으로 내린다. 길이 좋아지고 근 1시간 만에 진불암에 도착하여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멀리 두륜봉이 안개 속에 벗어나려 하고 있다. 두릅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있으나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승용차들이 올라와 있었으나 그림의 떡이고, 우리는 일지암 코스를 타지 않고 물텅거리골을 택한다. 포장도로를 피하려는 걸로 생각하여 냇물 소리를 들으며 45분 동안 계속 내려간다. 드디어 표충사와 서산대사상이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생각 같아서는 아름다운 풍광과 글씨, 보물을 볼 수 있는 대흥사를 잠깐이라도 둘러보고 가면 좋겠지만, 차가 들어올 수 없어 일주문 바깥에 있으니, 갈 길이 멀어 포기했다.
* 진불암
△ 대흥사에서 일주문까지
이곳 대흥사부터 바깥 일주문까지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숲길이다. 다리를 건너 넓고 큰 부도밭을 지나가다 석간수를 한 모금 마셨다.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를 안치한 곳이다. 이곳 부도전에는 대흥사의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비롯한 스님들을 모신 다양한 모양의 부도 50여 기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대흥사 중흥을 가져온 서산대사의 부도가 보물 제1347호로 지정되었다.
다리에 이르러 기념품 상점이 있고 여기저기 동동주가 보였으나, ‘시간’이라는 것에 얽매이면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리를 지나 유선여관에 잠시 들어가 사진만 찍고 나온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온 뒤로부터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이제부터는 길고 아름다운 숲길만 길게 남아 있다. 잠시 차밭으로 들어가 자운영을 찍고서 다시 부지런히 걷는다. 워낙 긴 아스콘 포장은 좋은 숲길을 지루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실은 둘레길도 있었는데….
* 서산대사상
* 대흥사 입구 쪽
△ 해물탕으로 시작, 회로 마무리
일주문을 넘어 차를 탔을 때 모두가 지쳐 있었다. 모두가 시간 때문이었고, 입장료를 안낸 탓이리라. 그러나 조금 앉아 완도로 가는 동안 회복도 빨랐다. 시장가에 자리 잡은 횟집 ‘청해나루’는 배고픈 우리들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었다. 서비스로 한 마리씩 얹어준 낙지와 뜨거운 육수는 이제까지 완도에서 먹음 음식 중 최상이었다. 먹다보니 시간이 다 되어 옆에 건어물시장에 들를 시간도 없다.
부두에 내리자마자 추렴한 돈을 쓰기 위해 바삐 서둘러야 했다. 돈을 들고 뛰어가 2kg짜리 참돔과 농어 5만원, 개불 10마리 1만원, 멍게 가리비 붙여 10개에 1만원, 낙지 2만원, 상추와 된장, 초장, 젓가락 4천원, 소주 8병, 컵 1천원…. 구매를 마치고 뛰어온 즉, 승객은 거의 타버리고, 등꽃 찍을 시간이 없다.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두고 못 가는 법. 대충 찍고 기다리는 일행에게 뛰어가 배를 탔다. 그리고 배가 출발하자마자 배 뒷전에 자리를 잡았다. 옆 자리는 갈 때 같이 갔던 J고교 22회 졸업생들. 함께 얼려 도착할 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번 원정 답사를 위해 힘쓴 홍안기 회장과 송형근 전회장, 정봉숙 선생, 그리고 즐거운 여행을 함께해준 오름해설사 3기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 두륜산 대둔사(대흥사) 바깥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