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과 곱게 피던 날
이제는 더운 날씨 때문에 꽃들이 앞을 다투어 핀다.
이 꽃도 2주쯤 전 너무도 하얗게 빛나는 나무를 보고
긴가민가하면서 가 본 결과 확인된 것이다.
검색해보면 꽃사과, 애기능금, 애기사과 등으로 표기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분재로 인기가 있어
꽃과 열매를 오랫동안 볼 수 있는 매혹적인 소재였는데
화분에서 관리를 잘못해 너무 자라버린 것을 화단에
옮겨 심어 놓아 아주 커다란 나무가 된 것이 많다.
거름을 주지 않더라도 조금만 기름진 땅이면
꽃도 많이 피고 열매도 주렁주렁 열린다.
국어사전에는 ‘꽃사과’로 아래와 같이 소개 되어 있다.
꽃사과는 장미과 사과나무속에 속하는 소교목인 산사나무의 열매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일반적인 사과나무보다는 딱딱하다.
맛은 시큼하지만 색깔이 선명하고 적당한 단맛도 있어
젤리, 통조림, 술, 차를 만들어 먹으며, 한방에서는 위장약으로 이용한다.
♧ 꽃사과 - 안경희
하루를 더 못견디고 잎들이
하르륵、하르륵、 바람에 져 내렸다.
지상의 목숨들 하나 둘 꺼져가는 소리도
이와 짐짓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들은 울음을 남기지 않고서도 사뿐사뿐 잘도 지는데
떠나가는 사람들은 눈물을 남겼다.
꽃들이야 햇살 만나 그나무에 다시 피면 그만이지만
우리 한번도 그리운 사람의 환생을 목격한 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품안으로 은밀히 싹을 내리나 보다.
꽃을 만나 잎처럼、
잎을 만나 꽃처럼、
오늘 나의 뜨락에 올망졸망 과실들이 열고
잠든 아기 손 어느샌가 꼭 쥐고 놓지 않는
꽃사과 한 알. 언제주웠을까
자박 자박 걸음마 하며 꿈결엔듯 다녀왔을까
너무 쪼끔해서 구슬인양 아롱 아롱
잠결에도 놓지 못하는 내 아기 손안에 꼭 잡힌
바알갛게 태열앓는
애기꽃사과.
♧ 안분(安分) - 오세영
무더운 여름날
한 입에 덥썩 깨무는 수밀도의
물오른 과육은
얼마나 상큼하고 맛이 있는가.
발라먹은 씨앗을 무심코
휴지통에 던지며
산의 이름 없는 열매들을 생각한다.
개복숭아, 꽃사과, 돌배, 까치밥…
네 씨앗들은 결코 사과나 배처럼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비운을
맞지 않으리라.
다만 지나치게 맛이 있는 까닭에
다만 지나치게 달고 부드러운 까닭에
한 곳에 갇혀서
잘리고 매맞고 씹혀야만 하는 …
철조망 울타리 안에서
전지의 칼날로 자라는 수밀도가 되기 보다
야산의 저 개복숭아가 되리라.
도원의 복숭아는 분명
이처럼 달지는 않을 것이다.
♧ 꽃사과가 익을 무렵 - 김영자
해마다 꽃사과가 익을 무렵
아파트 경비원들은 잔디를 깎았다.
작은 사과 알 사이
빠알간 빛 사이사이
한 움큼씩 바람을 집어넣으며
잔디를 깎았다.
깊은 그리움을 깎아내고
몇 개의 산을 내려오면
봄날 잔디에 새순이 돋듯
그리움 그 자리
환한 꽃사과 꽃 피면서
침묵의 바람 불겠다.
♧ 늙은 라일락을 위하여 - 김정희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한 스물 두어 해 전이다
나도 그녀도 파랗던 시절이었다
꽃사과나무 곁에 늘 수줍은 듯 서 있어 온 그녀
이제는 등도 굽고 다리도 휘어져 어느 땐 내가
나의 등으로 그녀의 등을
가만히 받쳐보기도 하는데
그녀가 엽서 같은 푸른 잎들을 매달고 보란 듯이
꽃향기 뿜어낼 때면
그녀의 봄밤은
여전히 황홀하기만 하여
그 밑에서 취하고 또 취하고
그러면
그녀는 달보다 더 환한 얼굴로 걸어와
내 목덜미를 쓸어 내리는 것이다
숨이 하얘지도록
하얘지도록
♧ 슬픔의 무게 - 서연정
비 오는 날 꽃밭에 선다
석달열흘하고 또 하루 내리는 비
피할 수 없는 그 빗물을 나무들이 맞고 있다
동백 모란 맥문동 애기능금 철쭉 칸나
이미 꽃철 지난 어떤 것은
흔적을 오롯이 핏줄 속에 갈무리하고
또 어떤 것은 몇 날 뒤 피어날 설렘으로
탱탱하게 볼이 부어오르는 중이다
아무 상관 않겠다는 듯 비는 계속 내리고
나무는 그 날비를 마냥 맞는데
유난히 비의 날은 칸나에게 날카로운가
곧 찢어질 듯 아프다고 잎새가 운다
동백도 비를 맞지만 또 다른 나무도 비를 맞지만
칸나처럼 쉬지 않고 울지는 않는다
더러는 동백처럼 어쩌면 칸나처럼
비를 맞는 너와 나
♧ 애기능금 - 문복주
백 번 꽃 피우고
백 번 잎 떨구니
백년의 세월 꿈같이 흘렀다
겨우 한 번 피었다 지는 풀잎처럼
나는 왜 그리 슬픔도 많이 눈물도 많이
흘렸는지
그러나 우리의 사랑 위하여
天空의 日月 따다 꽃등 밝여 놓았으니
사랑아, 어둔 밤길 더듬어 달려오라
천 번 더 꽃잎 떨구어 우리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빛을 따서 씨에 감추고
온몸에 꽃등,
꽃등 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