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꽃 피운 날은
천남성 꽃이 피었는가 하고
목장을 돌아가는데
바로 이 엉겅퀴 녀석들을 만났다.
어렸을 적 아무 것도 못 먹고
소를 몰고 들판으로 나갔는데
이 꽃이 피어 있길래
가운데 고갱이 부분을 뽑아
질겅질겅 씹어 먹었던 생각에
얼른 카메라를 들이대고
멋없이 마구 눌러댔다.
♧ 엉겅퀴를 그리는 여자 - 김종제
금호동 산 1번지
계단 많은 동네 꼭대기에 누워
달을 품고 살았다는 그 여자
소녀의 목에 보자기 두르고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저 지하 바닥 아래까지
비행하는 꿈 즐겨 꾸었다는
그 여자 가슴에
가시가 셀 수 없이 박혀 있어
엉겅퀴를 그린다
삶의 뿌리로부터 치밀고 올라온
잎이 칼날이다
스치기만 해도 선혈이 낭자하겠다
게다가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터질듯한 눈빛이라니
들판에 지천으로 흔한 꽃에서
독생자 구세주 낳은
성모를 찾고 있을 줄이야
자궁속 가득
자주색 생명을 잉태하고 싶다는
그 여자 집으로 가는 길목에
그늘로 막아선 담벼락에도
환하게 몸 열어준 대문에도
바람 부르는 유리창에도
엉겅퀴를 그린다
어쩌면 자물쇠 채워놓은 그녀의
살갗 어딘가에
지울 수 없는 엉겅퀴
문신이 새겨 있을 것 같아
꽃무늬 읽으러 가야겠다
♧ 세 병을 마시면 엉겅퀴꽃이 핀다 - 김영남
내가 마시는 두 병의 술,
그 속에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두 병을 들이키면
그 섬에서 해가 뜨고, 한 여자가 옷을 벗는다.
그러나 내가 세 병을 뒤집으면, 없다.
섬도, 옷 벗은 여인도.
내가 넘어뜨리는 술병들....
그 볼링핀 같은 말들 사이에
세계가 있거나 없거나 한다. 그 세계는
잔에 부어 다양하게 건네보면 안다. 따라서
세계가 없는 것은 죄다 콜라병이거나, 빈 좌석이다.
나는 어제 두 병과 세 병 사이의 세계에서
한 여인을 섬으로 유인했고, 그리고 그녀의
봉곳한 가슴을 만졌다. 거칠게 만지다가 가끔
두들겨맞기도 하였지만....
아름다운 섬에선 늘 황제로 군림해 왔던 나,
어제의 나를 위로하러 오늘도 나는
다시 또 두 병과 세 병 사이의 세계를 서성인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하게 한 병, 두 병을 뒤집어도
어제의 나를 만날 수가 없다. 다만 아침 해장국 끓여주던
한 여자의 엉겅퀴 같은 얼굴을 별안간.....
♧ 엉겅퀴 - 하순희
온몸 가득
가시 세워
낭자하게 피 흘리며
사는 일 까마득하여
소리내어 울고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세상 한편 언덕에.
♧ 엉겅퀴 - 한상경
지난 일은 잊자 했지만
가시 돋친 잎사귀로 살아간다
슬픈 세월은 잊자 했지만
가시 돋친 봉오리 꽃 피운다
어떻게 아픔 없이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눈물 없이 사랑할 수 있겠는가?
멍든 가슴에 피어나서 보라색 꽃인가
붙잡기엔 아픈 존재여
♧ 엉겅퀴 - 고정국
쉽사리 야생의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빗물만 마시며 키운
그대 깡마른 反骨의 뼈
식민지 풀죽은 토양에
혼자 죽창을 깎고 있다.
♧ 엉겅퀴꽃 - 목필균
너를 만나면 향기 따라 날아드는 나비를 본다. 걷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세상살이. 무성한 잎새 사이로 내민 붉
은 얼굴에 퍼붓는 가슴앓이의 입맞춤을 본다.
너를 만나면 바람 따라 길들여지는 들풀을 본다. 일어서고
일어서도 언제나 헝클어지는 인생살이. 갈래갈래 찢겨진 푸
른 잎새에 실린 치열한 삶의 흔적을 본다.
♧ 엉겅퀴 - 김순금
송화가루 흩날리는
습기 찬 해안 기슭
창 열고 지천으로
등 켜는 자운영
저만큼 날 세운 비수인 양
버티고 선 엉겅퀴.
모질게 울어대는 어둠 속 비바람에
끝내 뿌리 뽑혀 쓰러지지 않으리라
움켜쥔 손아귀 골마다 피멍들어 고였네.
저 먼 섬 돌아앉아
숨죽인 자태 앞에
그늘진 낮달 속
한 줄기 혼 피워 물고
격랑 끝 앙다문 침묵으로
혼절하는 목마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