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핀 흰송엽국
5월인가 했더니 벌써 6월이다.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도 모르게
뛰어가 버리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세월이
빨라진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송엽국은 쌍떡잎식물 중심자목 석류풀과의 다년생초로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다. 4~6월에 자주색, 붉은색, 흰색의 꽃이
무리지어 피는데 낮에는 피어있다가 해가지면 오므라든다.
추위에 강하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 유월이여 - 박종영
유월,
그 적막한 한낮 오후
외로움 달래려 풀물 같은 그리움에라도
젖고 싶을 때,
산과 들은
무위(無爲)의 소리로 손짓하며
엎드려 풀꽃의 울음을
들어보라 한다
이토록 짙게 깔리는 장미향기와
높게 갠 하늘
푸른 그늘에 홀로서면,
창망했던 젊음의 강을 건너
이제, 세상 바라보는 능숙함이 절정인데
한없이 식어가는 열정을
탓하지 않는다 해도,
저, 이름 없는 들꽃 향기같이
풋풋한 바람으로나 흘러가고 싶은 것을,
유월이여!
♧ 유월의 빗길 - (宵火)고은영
가게 문을 활짝 열어 젖힌 채
도심의 어둠 속 아스팔트에
격정적 의문으로 꽂히는 빗물을 바라본다
서글픈 자동차 경적이 빗물에 아스라이 묻혀 간다
구멍 난 가슴으로 뭉클 차오르는 그리운 것들의 부재
피와 주검을 부르는 광폭한 정사(政事)여
원망과 조롱, 희망없는 시대를 부르짖는 울음이
유월의 섬세한 가슴을 핏빛 혼돈으로 물들이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며 그리고 너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나의 이력이 비루한 가난이라 너의 기쁨이 될 수 없다면
세상이 무슨 소용이냐
저 초록의 살랑거리는 실루엣
넓이와 깊이를 헤아려 걷는 사랑의 보폭마다
믿음과 신뢰로 안부 하는 유월의 중심에
푸른 녹음을 어우르는 비가 내린다
초저녁부터 내리는 비는 해갈의 긴 울음처럼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치닫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을 되돌리고 싶다
저 굽이치는 빗물이 흐르는 소리에
내 영혼을 씻을 수 있다면
지금에 와서 나는 못 견디는 슬픔을 묻지 않으리
좌초된 현실에 삭아 지분거리는 기억들
이미 부식해 간 청춘의 후회스럽더라도
치근대는 눈물을 묻지 않으리
♧ 유월 - 양전형
한동안 침묵하던 내 뼈 속에서
사랑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반란이다
그대가 던져버리고 내가 잊었던 뜨거움이
얄궂은 신경통처럼 창궐하기 시작한다
내 심장 빨간 수은주가 길어지는 계절
어영마을 해안도로의 노을은 서글프다
지난 한낮이 서럽다고 눈시울 붉은 하루를 보면
다 핀 꽃이면서 질긴 내 청춘 참 서글프다
해거름 차차 졸고 초승달 실눈을 뜬다
그대 문득 바다 위로 부표처럼 떠오른다
어디론가 떠나려는 치열한 눈짓 몸짓
그 자리만 맴돌아야 하는 부표는 늘 아프다
그토록 짙은 향기를 내던 감귤꽃들은
눈 맑은 열매를 조랑조랑 매달았는데
그토록 짙은 향기를 내던 우리들의 꽃은
없다
♧ 유월엔 보리바람 슬프다 - 이영균
노곤한 유월의 긴 햇살
봄꽃을 분주히 다 보내고
밭보리 익어가는 소리 평온하다
바람 누런 보리밭 가는 길
논두렁 뚝 찍어 끝나는 곳엔
찔레꽃 소담한 소솔길이 있다
뻐꾸기 푸르도록 울음 길고
아카시아 향기 자옥한
길게 쏟아진 햇빛의 비명 깊은 숲
찔레가시 찔린 손으로 꽃 쥐어주던
그날이후 햇살이 긴 유월엔
누렇게 불어오는 보리바람이 슬프다.
♧ 유월의 한낮 - 김영천
유월 하순의 오후는 새벽보다 하얗고
더 가볍다
공기는 모두 부풀어 하늘까지 오르고
텅 빈 길로는 한것 작아진 그림자들이
도시의 그늘에 제 가벼운 몸을 눕힌다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날아와
햇살처럼 가볍게 앉으면
마침내 노곤한 잠이 내 콧등을 건드리고
나는 어느덧 동그랗게 부푼 한낮의 공기를 따라
한없이 가벼워진다
지금쯤 하나님도 점심을 드시고 의자에 기대어
꾸뻑 조실까
난데 없은 자동차의 굉음에 깜짝 놀라 일어나면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빈말처럼 귓속에서 웅웅거린다
♧ 유월 - 권경업
잿빛 구름 드리운 하늘
막 검푸른 중봉을 낳고 있다
작달비 양수(羊水)로 뿌려지고
조개골은 오후 내내
산고(産苦)의 천둥 울어댔다
덕담을 품은 산사람들 한 둘
산장으로 돌아올 때 쯤
푸들푸들 젖몸살을 앓은 상수리숲
노을은 산후의 피빛이었고
천지간에 가득한 건 축복과 사랑뿐
♧ 유월이 오면 - 김낙필
푸른 강으로 흐르는
유월이 오면
깊은 잠에서 깨어
하늘 오르는 기지개를 켜고
몸에는 물이 거슬러 오른다.
사랑을 하자며 꼬득이는
초록이 유혹을 해대고
솜털같이 훈훈한 바람이
겨드랑이를 간지르며
마른 입술에 입마춤을 한다.
발끝으로 다시
충만한 생명이 살아나
유월의 손자락을 잡고
들길로 나서면
생이 미루나무 잎처럼 푸르르다.
자갈 바닥이 보이던
혈맥이 다시 살아나 박동을 하고
이쯤엔..
다시 사랑을 시작해도 좋겠다.
오지 않을 사람을
찾아나서도 좋고
떠나간 사람을
소리쳐 불러도 상관없을
은혜로운 유월이여..
살아있는 모든 것들
손을 잡고 들판으로 나서자.
그리고 푸른 유혹을
모르는 척 기꺼이 맞이하자...
♧ 유월의 숲 - 강진규
흙빛 산마루 위로
무성한 푸른 깃발을 흔든다
골짝마다 메우는
새 생명의 끝없는 함성
푸르른 눈부심으로
파도처럼 밀려와
헐벗은 가슴 씻어내는
유월.
풀내음 청청한
기억의 옷을 입히고
한없는 짙은 강이 되어 흐른다.
산등성 골짜기마다
푸른 파도 일렁이는
찬란한 넋들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