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윤판나물아재비와 정드리

김창집 2012. 6. 5. 09:57

 

정드리문학회에서 낸 동인지 제3집

‘붉은발말똥개’에서 지난번 올렸던 다음 순서로

한 분 당 하나씩 시를 뽑아 윤판나물아재비와 같이 올린다.  

 

윤판나물아재비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50cm까지 자란다. 근경은 짧고 포복지를 내는데,

잎은 긴 타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이다. 꽃은 4~6월에 피고

줄기 끝에 1~3송이가 달리며 밑으로 쳐진다.

윤판나물의 꽃은 노란색인데 비해

이 윤판나물아재비 꽃은 녹색을 띤 흰색 꽃이 핀다.

지난 5월 한라수목원에서 찍었다.

 

 

♧ 알게 하소서 - 신은재

 

도란도란

흘러가는 물처럼

 

하루의 순간순간

낮은 골짜기를 지나

 

더 이상 갈 수 없는

수평선도 좌악 찢고

가자, 가자, 가자

하루가 마감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 같이 여겼던

그 마음 알게 하소서 

 

 

♧ 사려니 - 안창흡

 

곤파스, 말로*

밀쳐낸

사려니

 

파릇한

햇살 한 올

잎사귀

간질이면

 

꺄르르,

울음 문 웃음

손 흔들며

새살 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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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파스, 말로 : 2010년 제7호, 제9호 태풍 이름.

 

 

♧ 시월 - 오승철

 

그냥

넙죽넙죽

받기만 하느냐고?

 

천만에,

나도 가끔은 ‘이쁘네’ 말공양 했다

 

잘 여문

모감주 열매

받아든

이 가을날  

 

 

♧ 멀거니 - 윤행순

 

아침에는 햇살 몇 점 저녁에는 함박눈

버스도 택시도 다 보내놓고 혼자다

제주시 버스터미널 앉아 있는 할머니

 

바리바리 저 보따리 아들 집 가는 걸까

창 자국 확인해야 부활을 안 도마처럼

슬며시 차를 돌려서 그 앞에 세워본다

 

남편 따라 무수히 마을마을 떠돌던

오늘은 서귀포시 솔동산 어디쯤에

어머니, 속울음 참고 불러보고 싶다  

 

 

♧ 증거 - 이경숙

 

부엌 한켠

 

아슬아슬

 

지켜낸 화분들은

 

겨우내 가족 몰래 입술 몇 번 훔쳤는지

 

이듬해 장마가 들자

 

뾰족뾰족 고백한다  

 

 

♧ 자귀나무 - 이윤희

 

가지를 접어 다오

 

환장할 이 장마에

 

들녘에도 지붕에도

 

무수한 무지개가

 

다시는 못오는 자리

 

흥건히 적셔댄다  

 

 

♧ 서귀포 - 이창선

 

한 세월 품앗이로

깻단을 털다보면

어느새 내 얼굴에도

죽은깨가 박혀 있다

어쩌면

그리운 이름

촘촘히 박혀 있다

 

범섬과 새섬 사이

문섬과 섶섬 사이

벌초 끝낸 산소처럼

마른 풀냄새 흐른다

서귀포

바닷길 붓 들고

늘어선 고추잠자리  

 

 

♧ 곤을동 - 임태진

 

제주도 지도상에

사라진 마을이 있다

별도봉 기슭 아래 쑥부쟁이 터 잡은 땅

역사는 왜 ‘잃어버린 마을’이라 하는가

 

한 마을이 토째로

누명 썼던 1박2일

60여년 지났어도 불에 탄 집터는 남아

그 흙에 손바닥 대면 불씨 하마 살아날까

 

용서란 말 화해란 말

그리 쉽게 하지 마라

스물네 개 놋숟가락 그 뒤에 또 연좌제

울음도 마른 바다가 제사상에 뒤척인다.